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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신년음악회
어떤 신년음악회
  • 고영림
  • 승인 2019.02.18 17: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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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이에 드 제주 Cahier de Jeju <2>

한 해가 시작되면 곳곳에서 신년음악회가 열린다. 필자는 지난 2월 초 전문연주자와 아마추어연주자가 한 무대에 올라 함께 호흡을 고르는 이색적인 신년음악회에 다녀왔다. 시작할 때 다른 연주회에서 쉽게 만날 수 없는 뜻밖의 장면을 보면서 이 음악회에 대한 기대가 불쑥 솟았다. 1부와 2부에 걸쳐 짧지 않게 진행된 이 음악회의 마지막 장면은 필자의 동공을 확장시켰다. 이런 음악회를 만날 수 있게 해준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나씩 풀어내보고자 한다.

이 신년음악회는 ‘오현음악부동문회 제21회 정기공연 – 신년음악회’로 오현고등학교음악부동문회가 해마다 개최하고 있는 고교동문음악회다. 같은 고등학교에서 음악부 소속으로 활동했던 동문들이 쉬지 않고 정기공연을 기획하고 개최한다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다. 그런데 무려 21회까지 이끌어오고 있으니 제주 음악계뿐만 아니라 한국 음악계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사례라 하겠다.

1984년에 제1회 동문음악회로 시작한 이 연주회는 동문음악회라는 용어가 고루하다는 지적이 있어서 2000년대 초에 신년음악회로 바꾸었다고 한다. 처음에는 예산이 부족해서 격년제 즉 2년에 한 번 열었는데 몇 년 전부터는 음악부 동문들이 각자 기부금을 내기 시작했고 후원자 없이도 자체 기금으로 연례 신년음악회를 열고 있다고 하니 자부심이 대단할 것 같다.

공연을 시작하기 전에 사회자가 이 음악회의 역사와 함께 단원구성의 특징을 소개했다. 오현고등학교 졸업생 17회부터 67회까지 같은 무대에 올랐다고 한다. 금년에 고등학교를 졸업한 최연소 단원들 그리고 그들과 50살 차이나는 최고령 단원들을 일으켜 세워 소개하는 것을 보면서 이런 음악회가 가능할 수 있다는 사실에 전율했다. 손자뻘 동문과 할아버지뻘 동문이 함께 같은 무대에 오른 것을 그것도 제주에서 볼 수 있으리라 예상치 못했기 때문이다. 앳된 최연소 단원들은 이 연주회가 그들 인생에서 어떤 의미를 갖게 될지 아직은 실감하지 못할 것이다. 최고령 단원들에게는 그들 인생을 지탱해온 아름다운 매개 즉 음악과 더불어 손자뻘 동문들과 함께 같은 무대에 올랐다는 흐뭇함이 있지 않았을까 짐작한다. 김승택(오현고 2회) 한라윈드앙상블 지휘자 역시 팔순의 나이에 까마득한 손자뻘 후배들과 함께 이 연주회 무대에 오른 적이 있다하니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이 공연에 호른주자로 참여한 김태관(오현고 39회) 제주아트센터 공연기획자에게 정보를 요청했다. 70명 단원 중 몇 명이 전문연주자이며 몇 명이 아마추어연주자인지 너무나 궁금했기 때문이다. 20여명이 전문연주자로 활동하고 있고 나머지 50여명은 고등학교 졸업 후 각자 대학에서 다른 전공으로 공부한 후 생업에 종사하고 있는 순수 아마추어 연주자다. 단원의 2/3가 아마추어인데 이런 소리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은 경이로운 일이다. 전문연주자건 아마추어연주자건 다 생업에 바쁜 사람들이지만 악보를 미리 지급받아서 개인연습을 한다. 연주회를 한 달 반 앞두고 1주일에 한 번씩 함께 연습하다가 연주회 열흘 전부터는 제주도를 떠나 타지에서 전문연주자로 활동하는 동문들까지 귀향해서 매일 연습에 매진한다. 전국에 흩어져 있는 동문들이 오로지 이 연주회를 위해서 고향 제주로 돌아와서 서로의 호흡을 들으면서 공연을 준비한다. 아름다운 전통, 아름다운 역사를 써내려가고 있는 이야기의 현장이라 하겠다.

프로그램을 보니 레퍼토리가 다양하다. 클래식부터 대중음악까지 골고루 균형을 이룬 프로그램이다. 1부에는 대중적 레퍼토리로 관객에게 무겁지 않게 다가가는 곡들을 넣었다. 나훈아 Graffiti는 재미있고 훈훈한 편곡으로 돋보였다. 중장년 관객을 세심하게 배려한 나훈아 Graffiti는 다시 한 번 듣고 싶은 편안하고 즐거운 곡이다. 1부 마지막 곡은 ‘Primavera-Beautiful Mountain Winds’이다. 봄을 뜻하는 Primavera가 주제이고 부제 Beautiful Mountain Winds는 한라산에 부는 아름다운 바람을 연상하게 하는 곡이다. 아마추어연주자가 2/3나 되는 악단이 매우 훌륭하게 소화해낸 이곡은 관객의 기대를 한껏 충족시킨 레퍼토리가 아닐 수 없다.

연주회 2부는 음악적으로 의미 있는 작곡가들의 곡으로 채워졌다. 일반적으로 한국에서 유명한 서양작곡가들은 고전주의와 낭만주의 작곡가들 즉 바흐, 헨델, 모차르트, 베토벤, 슈베르트, 멘델스존, 브람스 정도이다. 그런데 이 작곡가들의 작품이 한 곡도 없이 야콥 드 한 Jacob de Haan이 작곡한 관악을 위한 작품이 두 곡이나 편성되었다. 관객들에게는 생소할 수 있지만 이 작곡가의 위상을 살펴보면 그 이유를 이해할 수 있다. 관악을 위한 작품을 만든 작곡가들은 20세기가 되어서야 나타나기 시작했고 그들이 본격적으로 조명된 것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즉 1950년대 이후다. 그 중 야콥 드 한Jacob de Hann의 작품들이 제주국제관악제에서 초연되고 연주되고 있다는 사실은 매우 중요하다.

이 대목에서 제주국제관악제의 주축이 된 오현고등학교 음악부의 역할과 위상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오현고등학교의 음악부의 뿌리는 1950년 한국전쟁의 역사로 거슬러 올라간다. 한국전쟁이 발발한 후 1951년 15만여 명에 이르는 피난민들이 제주에 몰려들었다. 당시 제주도로 피난 온 음악가들과 유엔 산하기관의 요원들 중 찰스 길버트 소령이 제주관악의 기초를 놓았다. 길버트 소령의 역할이 결정적이라고 할 수 있는데 제주에 부임한 그는 전쟁고아들이 수용된 한국보육원 밴드를 비롯하여 제주중, 제주농고, 경찰악대 등을 지도하였고 오현고등학교 관악대를 창설했다.

1953년(추정) 길버트 소령(오른쪽)이 고봉식, 이성재, 한경화 등의 교사에게 지휘법을 지도하는 모습. 고봉식 전 제주도교육감은 오른쪽에서 두 번째.
1953년(추정) 길버트 소령(오른쪽)이 고봉식, 이성재, 한경화 등의 교사에게 지휘법을 지도하는 모습. 고봉식 전 제주도교육감은 오른쪽에서 두 번째.

이후 오현고등학교 관악대는 1953년 경남 진주시에서 열린 제4회 영남예술제(개천예술제로 개명)에서 전국고교취악경연대회에서 최고상을 받았고 1973년까지 16차례 최고상을 수상하였다. 오현고등학교 관악대가 이룬 이 업적은 제주관악의 우수성을 전국에 알리게 된 계기가 되었다. 고봉식 전 제주도교육감이 당시 오현고등학교 음악교사로 관악대를 지도하면서 수많은 후학들을 양성했고 이는 제주국제관악제를 만들어낼 수 있었던 결정적인 배경이 된다.

이런 후학들 중 두 명이 이번 신년음악회 1부와 2부에서 지휘했는데 1부에서는 마상학(오현고 29회), 2부에서는 김응주(오현고 41회)가 지휘자로 나섰다. 마상학 지휘자는 경기도에서 여러 중학교의 음악교사를 맡아오고 있는데 부임한 중학교마다 오케스트라를 창설하고 대한민국관악지도상을 수상했을 정도의 실력파다. 김응주 지휘자는 연세대학교 기악과를 졸업한 후 제주도립교향악단 차석상임단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검증된 연주자다.

오현고등학교의 밴드부는 사실상 제주시립교향악단의 뿌리나 다름없다. 1987년 초대지휘자 이선문(오현고 14회)이 주도해서 만들어진 제주시립교향악단이 제주시민회관에서 첫 공연을 올렸다. 제주시립교향악단이 제주도립교향악단으로 성장하기까지 이선문 초대 지휘자가 쏟은 열정과 소신은 상상을 초월한다. 이선문 지휘자는 안타깝게도 나이 50살을 넘기자마자 사망하였지만 그가 뿌린 씨앗은 제주도립교향악단이라는 나무로 우뚝 서 있고 그의 후배들은 오현음악부동문회 정기공연으로 제주도민에게 의미 있는 역사를 증언하고 있다.

필자가 알고 있는 이 역사를 되새기고 있는 동안 2부 공연의 마지막 곡이 끝났다. 그리고 객석에서 앵콜 요청이 빗발치듯이 그치지 않았다. 앵콜곡은 빈필하모닉의 신년음악회에서 빼놓지 않고 연주되는 라데츠키 행진곡이었다. 관객들이 함께 박수 치면서 즐긴 라데츠키 행진곡이 끝나자마자 예상치 못했던 장면이 필자의 눈앞에서 벌어졌다. 갑자기 70명의 단원들이 모두 기립해서 연주하기 시작하자 중장년의 관객들이 벌떡 일어나더니 팔을 휘두르면서 노래하는 것 아닌가. 동문이라는 사실, 같은 학교를 졸업한 동창이라는 사실이 한 사람의 인생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 목격한 순간이다. 학창시절 목이 터져라 불렀던 응원가를 언제 불러보겠는가. 팔을 휘두르면서 응원가를 부르던 중장년 관객의 모습은 오랫동안 기억될 장면이었다.

기억을 더듬어보니 1970년대 말 또는 1980년대 초 제주시민회관에서 오현고등학교 브라스밴드의 크리스마스공연을 보면서 필자가 열광했던 것이 떠오른다. 제주시립교향악단이 태동되기 전이었고 사실상 당시 제주도에서 유일하게 오케스트라 편성으로 관악과 타악이 함께 한 연주회는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40여년의 세월이 지난 후 이런 감상문을 쓰고 있는 필자의 감회는 남다를 수밖에 없다. 제주도에서 교향악단의 공연을 본다는 것이 언감생심이었던 시절에 오현고등학교 브라스밴드가 연말 콘서트에서 오빠부대를 동원했다는 것을 그들은 알고 있을까.

그 오빠부대의 한 사람이었던 필자가 오현음악부동문회에게 부탁하고 싶은 것이 있다. 고령의 음악부 동문부터 시작해서 중장년 동문에 이르기까지 하루라도 빨리 지체하지 말고 그들의 증언을 기록하고 자료를 수집해 놓을 것을 당부한다. 그리고 그 결과물을 제주도민들과 공유해줄 것을 당부한다. 제주도 20세기 음악사의 큰 줄기라 할 수 있는 오현음악부의 역사를 기록하는 것은 다음 세대들에게 귀감이 되는 유의미한 작업이 되리라 확신한다.

필자는 제주도에서 활동하고 있는 악단들의 연주회에 가서 손바닥이 아프도록 박수치면서 외치는 말이 있다. ‘오현음악부동문회 제21회 정기공연 – 신년음악회’에서도 목이 터져라 외친 말이다. 풍부한 스토리를 담은 공연으로 뜻밖의 감동을 필자에게 선물해주었기 때문이다. “브라보!”

*참고자료 : 제주문화예술60년사 (제주특별자치도)

**사진제공 : 김태관 제주아트센터 공연기획자

 





 

고영림의 <까이에 드 제주 Cahier de Jeju>

고영림 칼럼니스트

제주여고 졸업
이화여대 불어불문학과 졸업
프랑스 스트라스부르대학교 석사, 박사 (전공 언어학)
제주프랑스영화제 집행위원장
(사)제주국제문화교류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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