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는 건물 그대로 살려서 도서관 지어주세요”
“있는 건물 그대로 살려서 도서관 지어주세요”
  • 김형훈 기자
  • 승인 2019.01.22 14: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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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재생, 생각이 중요하다] <7> 이상한 은평구 구산동 사람들

지역 주민들 스스로 “도서관 지어달라” 구청에 제안
건물 8동 매입해 5개동은 그대로 살려서 건축 작업
2015년 주택 밀집 지역에 ‘구산동마을도서관’ 건립
도의원이 나서서 시민회관 없애려는 제주도와 달라

[미디어제주 김형훈 기자] 앞서 경남도교육청이 만든 도서관 ‘지혜의바다’(미디어제주 2019년 1월 17일 보도)를 소개했다. 지혜의바다는 체육관을 그대로 활용한 도서관이다. 그래서일까. 지혜의바다를 보는 순간 제주시민회관이 떠올랐다. 이유는 있다.

제주시민회관은 갈림길에 놓인 건축물이다. 그 갈림길이란 생사의 갈림길이다. 살거나 혹은 죽어야 하는,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하는 갈림길이다.

지금까지는 죽기를 기다리고 있다. 죽어야 할 이유는 하나도 없는데 죽을 처지에 놓여 있다. 멀쩡한 건축물임에도 지역의 이기심, 행정과 도의원이 합작해서 죽이려 든다. 이해할 수 없다. 멀쩡한 건축물을 싹 밀어버리려는 의도를 모르겠다. 다행히도 제주시청이 잠시 그걸 막아서고 있다. 언제까지 막아설지 모르겠지만 그 답을 도서관에서 찾았으면 좋겠다.

지혜의바다는 인적이 뜸한 원도심에 있음에도, 도서관으로 탈바꿈한 뒤 하루 평균 5000명 이상의 사람이 오간다고 한다. 제주시민회관이 그러지 말라는 법도 없다. 하루 4만명이 넘는 관광객이 오가고, 관광객을 합치면 하루에도 80만명을 넘는 인구가 제주도라는 땅을 밟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시 은평구청이 구산동에 세운 '구산동마을도서관'. 미디어제주
서울시 은평구청이 구산동에 세운 '구산동마을도서관'. ⓒ미디어제주

제주시민회관을 죽이려 드는 이들은 넘치는데 이번에 소개할 도서관은 서울시 은평구에 있는 ‘구립 구산동마을도서관’이다. 이상하게도 은평구에 있는 사람들은 기존 건축물을 활용해서 도서관을 만들어달라는 제안을 하게 된다. 우린 있는 건축물을 없애고 대형 상가건물을 지어달라는데, 이걸 어떻게 해석을 해야 할까.

은평구 구산동엔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11개 학교가 있다. 하지만 도서관 등 문화시설은 찾을 수 없다. 주민들은 지난 2006년 도서관을 설립하자는 제안을 하게 된다. 그해 5월이다. 단 11일만에 2008명의 주민들이 도서관을 지어달라는 서명을 한다. 그렇다고 도서관이 금세 지어진 건 아니다. 도서관이 들어설 곳을 찾아야 했다. 돈도 필요했다. 은평구청이 부지와 예산을 확보하고, 2013년에 실시설계에 들어갔다. 제 모습을 드러낸 건 2015년이다.

시간은 꽤 오래 걸렸다. 이 과정이 무척 중요하다. 은평구청은 구산동 일대 건물을 하나 둘 사들이기 시작했다. 주택 8동(기와집 5동, 빌라 3동)과 막다른 골목 등 모두 11필지를 사들였다.

주택 8동. 구산동 마을 사람들은 어떻게 했을까. 가장 쉬운 방법은 8동을 허물면 그만이다. 다 없애고 그 위에 번듯한 건물을 지으면 된다. 머리를 굴리며 “8동의 건물을 어떻게 해야지?”라는 고민을 할 필요가 없다. 제주시민회관을 깡그리 없앤다는 발상을 가지면 되듯이 말이다. 하지만 구산동 사람들은 그러지 않았다. 주민들은 기존 건물을 그대로 활용해서 리모델링해 줄 것을 은평구에 제안한다. 예산 절감 차원이라고는 하지만 역시 쉽게 이해가 되질 않는다.

구산동마을도서관. 기존 건물을 그대로 살려서 만들었다는 걸 단박에 알 수 있다. 미디어제주
구산동마을도서관. 기존 건물을 그대로 살려서 만들었다는 걸 단박에 알 수 있다. ⓒ미디어제주

주택 8동 가운데 빌라 3동을 남긴다. 5동의 기와집이 사라진 공간에 건물을 올리고, 빌라 3동을 하나로 잇는 작업을 한다. 기존에 있는 건물은 나이가 모두 다르다. 70년대 지어진 건축물도 있고, 2000년대에 지어진 건축물도 있다. 저마다 나이는 다르지만 건축물만 가진 게 있다. 그건 바로 기억이다. 계단을 오르던 수많은 사람들의 기억이 들어 있고, 문을 열고 사람을 맞았던 기억이 건축물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거리를 걸으며 만남과 만남이 이뤄지는 장면을 보면서 지나간 사람들의 기억도 가지고 있다. 그 모든 기억을 ‘구산동마을도서관’은 담아냈다.

어쩌면 공공건축물이 지니려는 의도를 읽게 된다. 구산동마을도서관은 개인의 소유물이 아니다. 주민들의 요구로 만들어졌고, 기존 건축물을 살려서 도서관을 만들어 달라는 의견을 받아들였다. 공공건축물은 대게 주민들의 의견보다는 행정의 의견이 많이 개입되기 마련이다. 주민들의 의견을 받는다고 하지만 껍데기인 경우가 허다하다. 어쩌면 주민의견 수렴 절차는 요식행위에 그치곤 한다. 구산동마을도서관은 다르다. 주민 의견을 수합한 뒤 10년만에 그 지역에 들어선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요식행위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구산동마을도서관에 대해서는 할 이야기가 많기에 다음에 한차례 더 이어가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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