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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 전 아무 죄없이 붙잡혀 고문…오늘에야 억울함 풀어”
“70년 전 아무 죄없이 붙잡혀 고문…오늘에야 억울함 풀어”
  • 이정민 기자
  • 승인 2019.01.17 16: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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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지법 4.3생존수형인 재심재판 ‘공소기각’…사실상 무죄 선고
공소사실 불특정‧군법회의 회부 등에 관한 규정 미준수 등 이유
4.3생존수형인을 비롯한 가족 및 관계자들이 17일 제주지방법원으로부터 '공소기각' 판결을 받은 뒤 가진 기자회견에서 만세를 외치고 있다. ⓒ 미디어제주
4.3생존수형인을 비롯한 가족 및 관계자들이 17일 제주지방법원으로부터 '공소기각' 판결을 받은 뒤 가진 기자회견에서 만세를 외치고 있다. ⓒ 미디어제주

[미디어제주 이정민 기자] "망사리 속에 가뒀다가 망사리가 없어지니 날아갈 것 같다. '빨간줄'도 없어지고 집에 가서도 손자들을 볼 때 할머니 옥살이 흔적이 없어지게 돼 후련하고 기쁘다."(김평국 할머니, 89세)

"70년 전 아무 죄도 없이 잡혀서 경찰한테 갖은 고문을 받고 재판도 없이 수형생활을 했다. 오늘 무죄 판결을 받았다. 정말 반갑다. 새로운 인생을 찾았다. 제2의 인생이다."(박동수 할아버지, 86세)

70년만에 정식 재판을 받은 4.3생존수형인들에게 사실상 무죄 판결이 내려졌다.

제주지방법원 제2형사부(재판장 제갈창 부장판사)는 17일 오후 201호 법정에서 정기성(97) 할아버지 외 17명의 4.3생존수형인들이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재심 청구 재판에서 전원 공소기각을 선고했다.

이날 재판에는 18명 중 정기성 할아버지와 현창용(87) 할아버지가 건상상의 이유로 참석하지 못했고 대신 가족이 참석했다.

재판부는 지난해 9월 3일 이들이 제기한 4.3재심청구에 대해 '재심 개시' 결정을 내리고 네 차례의 공판기일을 거쳐 이날 선고했다.

제주지방법원. ⓒ 미디어제주
제주지방법원. ⓒ 미디어제주

제갈창 부장판사는 이날 선고에 앞서 "이 사건의 핵심은 유죄 판결이 있는지였고 재심 대상 판결로부터 70년이 지나 자료가 남아있지 않다. 소송 관계인들도 결과를 예상했을 것이고 검찰도 공소기각을 구형해 결론을 예상하고 있을 것"이라며 "다만 법원은 해석 법규 적용 때문에 오늘 선고하게 됐다"고 밝혔다.

또 이들에 대한 공소사실의 불특정, 1948년과 1949년 군법회의 심판 회부 등에 관한 규정 미준수 등의 사항을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수형인명부, 군집행지휘서나 감형장 등 수형 관련 문서 등에는 피고인들에 대한 죄명과 적용 법조만 기재됐을 뿐 공소장이나 판결문 등 피고인들이 당시 구체적으로 어떤 공소사실로 군법회의에 이르게 됐는지 확인할 자료가 없다는 것이다.

재심사건을 진행하며 검찰이 공소장변경 허가신청을 했지만 재판부는 검사가 복원한 공소사실에 대해 제주4.3사건에 관한 각종 자료를 바탕으로 사후에 이를 추단, 재구성한 정도에 불과하고 재심절차의 피고인 신문 과정에서 이뤄진 진술 내용 등을 공소사실의 일부로 삽입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판단해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와 함께 절차적으로도 피고인들의 재심대상 판결을 한 고등군법회의의 경우 구 국방경비법이 절차법으로 적용된다고 볼 때 피고인들 개개인에 대해 예심조사관에 의한 예심조사 및 기소장 등본 송달 절차가 제대로 이뤄졌을 것이라 추정하기 어렵다는 점도 지적했다.

여기에 제주4.3사건진상조사보고서에 '군법회의를 담당한 군 당국이 예심조사없이 경찰의 의견을 수용해 판정 및 판결 내용을 미리 정리했던 것으로 추정된다'는 내용이 기재된 점도 들며 당시 피고인들에 대해 구 국방경비법 제65조의 '예심조사'와 제66조의 '기소장 등본의 송달'을 통한 기소사실의 통고 절차도 이뤄지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재판부 “피고인들 지난 세월 고생 많으셨다는 말씀 드린다”

생존수형인들 ‘공소기각’ 판결 선고에 일제히 박수치며 환영

제갈창 부장판사는 이를 토대로 "여러 사유를 비춰보면 피고인들(4.3생존수형인 18명)에 대한 군법회의는 법률이 정한 절차를 거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며 "피고인들에 대한 공소는 절차를 위반해 무효일때에 해당한다고 본다"고 피력했다.

이어 "선고하겠다. 피고인들 지난 세월 고생 많으셨고 재판부 입장에서 그 말씀을 드린다. 주문, 피고인들에 대한 공소를 모두 기각한다. 수고들 많으셨다"고 말했다.

17일 제주지방법원으로부터 '공소기각' 판결을 받은 4.3생존수형인 등이 환한 표정으로 법정을 나서고 있다. ⓒ 미디어제주
17일 제주지방법원으로부터 '공소기각' 판결을 받은 4.3생존수형인 등이 환한 표정으로 법정을 나서고 있다. ⓒ 미디어제주

재판에 참석한 4.3생존수형인들은 제갈창 부장판사의 선고가 끝나자 일제히 박수를 치며 기쁨을 감추지 않았다.

이들은 재판 뒤 제주지방법원 현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법원의 결정을 환영했다.

한신화(97) 할머니는 "기분이 너무 좋다. 이제는 밥도 잘 먹고 잠도 잘 잘 수 있을 것 같다. 고맙다"고 표현했다.

양근방(86) 할아버지도 "70년이 됐다. 우리의 과거 아픈 역사가, 말할 수 없는 고통과 아픔이 사라지고 새로운 희망을 찾았다. 영광이고 기쁨이다"고 전했다.

오계춘(94) 할머니는 "큰 짐을 가지고 있다가 놨다. 눈물이 난다. 죄를 벗은 눈물이다. 아는 것을 밝히지 못했던 서러움을 오늘 다 풀었다"고 회고했다.

양일화(90) 할아버지는 "세월이 흘러 70년이다. 오늘부터 눈을 감고, 다리를 펴고 잠을 자겠다. 법원의 공소기각 결정에 감사한다. 죽어서도 억울할 것만 같았는데 오늘은 도민의 행복이고 내 자신의 행복이다. 감사하다"고 기뻐했다.

17일 제주지방법원으로부터 '공소기각' 판결을 받은 4.3생존수형인들의 변호를 맡은 임재성 변호사가 이야기를 하고 있다. ⓒ 미디어제주
17일 제주지방법원으로부터 '공소기각' 판결을 받은 4.3생존수형인들의 변호를 맡은 임재성 변호사가 이야기를 하고 있다. ⓒ 미디어제주

이들을 지금까지 도운 양동윤 제주4.3진상규명과명예회복을위한도민연대 대표는 "애시당초 죄가 없었고 70년 동안 감옥에 갔다왔다고 해서 죄고 있다고 했는데 오늘 대한민국 법원이 죄가 없다고 했다"며 "정말 늦었지만 정의가 실현된 기쁜 날"이라고 이야기했다.

이들의 변호를 맡은 임재성 변호사는 “군법회의 문제는 유죄확정을 떠나 총체적 불법이었다”며 “무죄판결보다 더 나아가 당시 불법성을 나타낸 판결이다, 검사도 공소기각 구형을 했기 때문에 검찰이 항소하지 않을 것으로 희망한다”고 말했다.

이날 공소기각 선고를 받은 4.3생존수형인들은 18일 오전 제주4.3평화공원을 찾아 참배할 예정이다.

한편 검찰은 법원의 판결문이 도착하는대로 검토해 항소를 할 것인지, 포기할 것인지에 대해 결정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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