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3-29 17:52 (금)
비와 당신
비와 당신
  • 홍기확
  • 승인 2019.01.07 14: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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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조각모음]<10>

우리는 불확실성이 있어도 별 문제 없이 살아간다. 언제나 확실한 것을 찾는 사람은 반대로 언제나 불확실성에서 살아가는 힘겨운 사람이다. 완벽을 추구하는 사람이 완벽하지 못한 상황에서 언제나 스트레스를 받는 것이랑 비슷하다.

하지만 불확실하더라도 세상 모든 일이 다 제멋대로 가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적절한 예측과 적당한 노력이 필요하다. 물론 정도의 차이는 있을 것이다.

가령 조너스 소크가 개발한 소아마비 백신은 1954년 엄격한 통제 하에 약 40만 명의 어린이를 대상으로 임상실험을 거쳐 개발된 것이다. 그 덕분에 오늘날 소아마비는 거의 자취를 감추었다. 적절한 예측과 적당한 노력이 뭐 이정도인가?

과도하다면 다른 예로 들어보겠다. 아기가 걷기까지 평균적으로 2,000번을 넘어진다. 정도에 따라 3,000번도 넘어진다는 것이다. 뭐 이정도일까?

현대인은 급하다. 하룻밤이면 한국사를 읽는다고 하고, 영어는 3달 만에 회화가 가능하다고 광고한다. 하지만 현실은 어떤가? 밤에 책을 읽다가는 피곤해서 곯아떨어지기 일쑤고, 3달은커녕 작심삼일도 어렵다. 100일 동안 자기 전에 짬을 내 책을 읽거나, 작심삼일을 30번 하면 모두 가능하다. 하지만 어디 이게 쉬운가?

현대인은 이처럼 급하게 무언가를 하면서 급기야(及其也), 마지막에 가서는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다.

불확실성을 극복하는 것은 앞서 말한 소아마비 치료제 개발이나 아이가 걷기에 성공하기까지와 같은 과도한 예측과 노력보다는 적절한 예측과 적당한 노력이면 된다. 완벽이 아닌, 완벽의 ‘추구’라고 볼 수 있겠다. 물론 여기에 속담 하나를 더하고 싶다.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

‘진인사’는 노력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대천명’은 뭘까?

바로 기다리기다. 어느 정도 적당한 노력을 한 후에는 그냥 기다리는 것이다. 조급해해도 바뀌는 건 없고, 끊임없는 완벽주의에도 세상은 내 맘 같지 않다. 당장 내일 비가 올지 무수한 기상전문가들이 예측을 해도 틀리는 게 인생살이 아닌가?

대충 ‘하룻밤에 한국사 읽기’보다, 틈틈이 한국사를 읽어 1년 만에 완독하는 쾌거가 낫다.

내 경험이다. 대학생 시절. 10권짜리 중국사를 화장실에서 응가할 때마다 읽었는데 2년 만에 끝장을 넘겼다. 3,000페이지를 읽는데 3,000분, 응가 600번, 한 번에 5분, 매번 응가 때마다 5페이지를 읽어서 마친 것이다.

불가능한 ‘3개월만에 영어회화 정복’보다, 10년 동안 깨작깨작 공부해서 회화가 아닌 대화를 가능케 하는 게 더 낫다.

내 경험이다. 2001년부터 18년간 영자신문, 이코노미스트 같은 영어잡지를 꾸준히 읽고 있다. 결국 몇 해 전 영어 관광통역안내원 자격증을 취득했고, 외국인이랑 몇 시간동안 대화를 나눌 수 있다. 대화소재도 그간 신문 및 잡지 구독을 통해 끊이지 않는다.

생각해보면 진인사대천명에서 진인사(사람이 할 것을 다하면)를 하면, 대천명(하늘의 운명을 기다린다)은 좋은 쪽으로 왔던 것 같다. 물론 안 좋을 때도 있었다. 하지만 최근 30년 평균으로 일년 365일 중에 비가 왔던 날은 90일이다. 뒤집어보면 일년의 75%인 275일은 꽤나 괜찮은 날들이었다는 것!

며칠 전 비가 왔다.

금세 그칠 비로 보여(적절한 예측) 그냥 비를 맞으며 걸었다.

하지만 빗방울은 점점 굵어져 우산을 쓰며(적당한 노력) 걸었다.

이내 우산 들기가 귀찮아 멈춰 서서 비를 구경하며(기다리기) 딴생각을 했다.

하지만 한참 후에도 비는 그치지 않았다.(세상일이란!)

비가 온다. 거리는 다양한 사람으로 북적인다.

우산을 쓰는 사람은 준비된 사람이다.

비를 맞으며 가는 사람은 준비가 되지 않고도, 조급하기까지 한 사람이다.

나로 말씀드릴 것 같으면 준비를 충분히 했지만, 기다릴 줄도 아는 사람이다.

조급할 것 없다. 비는 그칠 것이다.

비와 당신.

무성영화의 빗금 같은 빗줄기 속에서 당신은 어떤 풍경으로 자리 잡고 있는지?

 




 

일상의 조각모음

홍기확 칼럼니스트

2004~2010 : (주)빙그레, 파주시, 고양시, 국방부 근무
2010~현재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근무
수필가(현대문예 등단, 2013년)
박물관 및 미술관 준학예사, 관광통역안내사(영어)
현 서귀포시 감귤박물관운영담당
현 서귀포시 공무원노동조합 사무국장
현 현대문예 제주작가회 사무국장
현 서귀포시청 공무원 밴드 『메아리』회장 (악기 : 드럼)
저서 : 『평범한 아빠의 특별한 감동』, 2015년, 지식과감성#
         『느리게 걷는 사람』, 2016년, 지식과감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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