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3-29 00:04 (금)
반성문
반성문
  • 홍기확
  • 승인 2018.12.24 11: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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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조각모음]<7>

학창(學窓)시절. 꽤나 많은 반성문을 썼다. 학창시절이란 말처럼 창문 안에 그토록 좁은 공간에서 무수한 잘못을 저질렀고, 무수한 반성을 했다. 반성문은 이렇게 말한다.

“학창같이 빼곡히 56명이 들어선 20평의 공간에서도 너희들은 많은 잘못을 할 것이다. 이 창문을 부수고 사회에 나가면? 상상은 너희에게 맡긴다.”

20평의 교실은 66㎡이며, 지구의 면적은 5.1억㎢이다. 지구에만 단순히 77억 개의 교실이 존재한다는 이야기다. 20평 교실에서도 실수하는데, 사회나 인생에서는 어떠할까?

자, 이렇다. 사회라는 것은, 나아가 인생이라는 것도 예측불가능하다. 하나의 교실에서 쓰는 반성문이 일 년에 몇 개라면 성인이 되어 지구에 살면서 반성문은 도대체 몇 개를 써야 할까?

현대를 ‘분노사회’ 혹은 ‘피로사회’라고 한다. 희한하게 많은 스마트 기계들과 노동을 감소시키는 장치들이 탄생했는데 사람들은 더 분노하고 피로해 한다.

하지만 역으로 반성은 적어지고, 앞만 보며 뒤는 돌아보지 않고 있다.

급작스레 반성문을 쓰고 싶어졌다.

하얀 종이에 반성문이라 적고, 반생문(半生文)이라 읽었다.

올해는 ‘만39세’라고 할 수 있었지만, 내년에는 에누리 없는 40살이기 때문이다.

순간 토이의 노래 《스케치북》이 떠오른다. 어찌 보면 내 글은 거룩하게 쓰는 것이 아니라, 생각을 옮기는 작업처럼 담백한가 보다.

“붓을 들 땐 난 고민을 하지

조그만 파레트 위에 놓인

몇 되지도 않는 물감들은 서로

날 유혹해

화려한 색칠로 멋을 냈지만

들여다보면 어색할 뿐”

생각이 춤춘다. 과거에서 현재로, 미래에서 추억으로 옮는다. 좋은 일과 나쁜 일, 칭찬할 일들과 반성할 일들이 서로를 격려하고, 또 질타한다.

반성한다고 격려해 줄 이도, 반성문을 쓴다고 해서 이제 누군가에게 제출할 일도, 읽어줄 이도 없다. 그래도 반성을 하지 않는다면 거만이요, 반성문을 쓰지 않는다면 자만이다.

다시 전영록의 노래가 떠오른다.

“사랑을 쓰려거든 연필로 쓰세요

사랑을 쓰다가 쓰다가 틀리면 지우개로 깨끗이 지워야 하니까

처음부터 너무 진한 잉크로 사랑을 쓴다면

지우기가 너무너무 어렵잖아요”

반성문을 써본다. 안에 있는 올 한 해 많은 실수와 잘못들을 지우개로 지워본다. 팔이 아프긴 하지만 하얀 백지가 다시 나왔다.

40번째 해에는 지난 39번의 경험으로 조금은 낫겠지.

 




 

일상의 조각모음

홍기확 칼럼니스트

2004~2010 : (주)빙그레, 파주시, 고양시, 국방부 근무
2010~현재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근무
수필가(현대문예 등단, 2013년)
박물관 및 미술관 준학예사, 관광통역안내사(영어)
현 서귀포시 감귤박물관운영담당
현 서귀포시 공무원노동조합 사무국장
현 현대문예 제주작가회 사무국장
현 서귀포시청 공무원 밴드 『메아리』회장 (악기 : 드럼)
저서 : 『평범한 아빠의 특별한 감동』, 2015년, 지식과감성#
         『느리게 걷는 사람』, 2016년, 지식과감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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