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3-29 21:06 (금)
“해야 할 말이 있는데도 말하지 않으면 숨기는 것”
“해야 할 말이 있는데도 말하지 않으면 숨기는 것”
  • 김형훈 기자
  • 승인 2018.12.12 11: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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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70주년 맞아 사료집 발간…1947년부터 1995년까지
당시 제주도내 유학자들이 이승만 성토하는 글도 수록
1949년 도내 유학자 김경종이 이승만에게 보낸 글.
1949년 도내 유학자 김경종이 이승만에게 보낸 글.

[미디어제주 김형훈 기자] 제주4·3 70주년. 올해 전국적으로 4·3 알리기 운동을 해왔다. 적잖은 소득을 봤다. 국민들의 가슴에 4·3을 새길 수 있는 한해였다. 하지만 여전히 4·3과 관련해서는 할 일이 많다.

어쩌면 4·3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기록을 살피는 것만큼 중요한 건 없다. 사단법인 제주4·3 70주년 기념사업위원회와 사단법인 제주민주화운동사료연구소가 공동으로 <제주민주화운동 사료집 3>을 발간했다. 특히 이번 사료집은 1947년부터 1995년까지 제주4·3진상규명운동을 담고 있어 눈길을 끈다.

이 사료집은 제주 유학자들의 생각을 읽을 수 있는 글도 포함돼 있다. 제주도를 ‘빨갱이 섬’으로 규정했던 당시 군경. 그 군경을 지휘하던 이승만 정부에 항의를 나타내는 서한문과 성토문 등이 이번 사료집을 채우고 있다.

유학자 김경종은 지난 1949년 이승만 대통령에게 ‘여이승만서(與李承晩書)’라는 글을 통해 제주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과 관련, 서북청년단 등을 처벌해줄 것을 호소하고 있다. 일개 유생이 대통령에게 “글을 준다”라고 쓴 것 자체만 대단한 용기임을 볼 수 있다.

김경종은 노형동 출신이다. 그가 이승만에게 쓴 서한문은 자신의 유고집은 <백수여음>에 실려 있다.

김경종의 글을 보면 “해야 할 말이 있는데도 말하지 않으면 숨기는 것이요, 하지 말아야 할 말을 말하는 것 또한 망령된 것이다(有可言而不言 隱也 不可言而言之 亦妄也).”라며 운을 떼고 있다.

그을 말을 더 옮겨 본다.

“서북청년단의 불학무식한 자들로 특수부대를 만들어 종일 수색하고, 체포하여 가두게 합니다. 고문하고 두들겨 기절하면, 기절할 사람의 턱을 움직여 ‘저놈이 자수했다’라고 청취서를 작성해 보냅니다. 사찰단과 경찰국서장, 부설 군재판 또한 청취서에 의거해 재판을 하면서 1년, 2년, 3년, 4년, 5년을 선고합니다. 대법원 또한 이 서류에 의거해 그렇다면서 다시는 고려하지 않습니다.”

김경종은 자신 주변에서 발생하고 있는 일을 세세하게 글로 표현했고, 이를 ‘이승만에게’ 보낸 뒤에 답을 구하고 있다. 그러면서 자신의 말은 사실이라는 점을 글도 더욱 강조하면서 그게 사실이 아니면 자신을 먼저 처벌해줄 것을 요청할 정도였다.

그는 1년 뒤에는 ‘이승만성토문’까지 작성했다. 성토문은 이승만을 진나라의 항적에 비교했다. 성토문을 잠시 보자.

“옛날 항적은 진나라의 항복한 병사 사십만을 살해했다. 만세에 모두 무도하다고 일컫는다. 지금 이승만이 나라 안 죄수 수십만을 죽였으니 그 포학무도함이 항적과 더불어 과연 어떠한가. 항적은 힘이 산을 뽑을만했고, 기개는 세상을 덮을만했다. 승만이라는 위인은 항적에 미치지 못함에도 그 포학무도함은 항적과 더불어 나란하다.”

성토문은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곳곳의 형무소에서 자행된 예비검속 학살에 대한 문제점을 쓰고 있다. 아울러 이승만을 직접 겨냥, 포학무도한 사람임을 지목하고 있다는 점에서 당시 유학자들의 생각을 읽게 된다.

그러나 4·3은 잊혀진 역사가 돼버렸다. 4·3의 참혹함을 누구도 꺼낼 수 없게 됐다. 그럼에도 지속적인 움직임이 일어난다. 사료집은 1960년 발족한 ‘4·3사건 진상규명동지회’의 호소문, 1987년 민주화항쟁 이후 꿈틀거리던 4·3 진상규명 운동을 세세하게 기록하고 있다.

관련 사료는 무척 많기에 이번 사료집은 1995년 제주4·3 제47주기 위령제까지만 담고 있다. 나머지 기록은 다시 정리를 해서 사료집으로 발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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