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3-29 17:52 (금)
“경찰에 잡혀가 죽도록 맞기만…무슨 말 할 수 있었겠나”
“경찰에 잡혀가 죽도록 맞기만…무슨 말 할 수 있었겠나”
  • 이정민 기자
  • 승인 2018.11.26 17: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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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지법 26일 4.3생존수형인 재심 두 번째 공판
1948년 12월 1차 군법회의 피고인 등 출석‧증언
검찰 재판 때까지 상황과 '무장대 연루' 여부 질의

[미디어제주 이정민 기자] 4.3생존수형인에 대한 70년만의 재심 재판 두 번째 공판이 열렸다.

제주지방법원 제2형사부(재판장 제갈창 부장판사)는 김평국(88) 할머니 등 4.3생존수형인 18명이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재심 청구사건에 대한 공판을 26일 오후 201호 법정에서 열었다.

4.3생존수형인들이 26일 오후 제주지방법원 앞에서 재심 재판 두 번째 공판에 앞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미디어제주
4.3생존수형인들이 26일 오후 제주지방법원 앞에서 재심 재판 두 번째 공판에 앞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미디어제주

이날 공판은 지난 달 29일에 이어 두 번째이며 1948년 12월 열린 제1차 군사재판에 연루된 10명이 주요 심문 대상이다.

검찰 측은 주로 당시 재판에 이르게 되기까지의 경찰 조사 등 상황과 '산사람'으로 불렸던 무장대와의 연루 여부 등을 물었다.

또 남로당 제주도당 관련자로 지목된 강기찬, 김달삼, 이덕구 등 여러 명의 이름을 거명하며 이들을 알고 있는 지를 질의했다.

피고인들은 이 자리에서 당시의 상황을 전하며 부당하게 당한 폭력과 고문 등을 토로했다.

김평국 할머니는 검사가 "1948년 가을께 경찰로 보이는 사람들에게 체포됐다고 했는데 맞느냐. 잡을 때 상황이 어땠느냐"고 하자 "제대로 기억이 나지 않는다. 발로 차면서 나가라고만 했다"고 답했다.

김 할머니는 검사가 '매질을 하면서도 물어보던 것이 무엇이었는지', '남로당이나 무장대를 위해 망을 본 적이 있는지' 등을 묻자 "뭔가 물어본 것이 있지만 내가 한 것이 없어서 답을 못 했다"고 했다.

이어 "그런 적이 있다고 답을 했느냐"는 물음에 "그렇다. 그 사람들이 때기기만 하는데 뭐라고 말을 하겠느냐"고 이야기했다.

김평국 할머니 “석방증 받고 배표 끊는데 너무 억울해 죽고 싶어”

박내은 할머니 “손을 뒤로 묶여 천장에 매달린 채 몽둥이로 맞아”

헌창용 할아버지 건강 악화 불구 “무조건 때리기만 했다” 증언도

김 할머니는 "19살 때인데 죽을 것 같다는 정도로 맞았다"며 "이후 전주형무소에서 석방되며 석방증을 받고 배표를 끊는데 너무 억울해서 죽고 싶었다. 젊은 여자가 무슨 죄를 지어서 형무소에 갔겠느냐. 그 전과 때문에 사람들이 모여 있으면 '내 전과를 이야기하나 싶었다'고 회고했다.

박내은(87) 할머니는 법정에서 자신이 무서움을 느껴 쌀 한 되, 돈 5원, 장 한 종지를 준 것이 죄라면 죄라고 말했다.

박 할머니는 검사가 "(무장대에) 쌀 한 되, 돈 5원, 장 한 종지를 누구에게 줬느냐"고 묻자 "산사람(무장대)들이 이승만 대통령 선거 당시 마을위원장을 했던 삼촌을 죽였고 이장도 죽였다. 쌀 한 되 등은 산사람 심부름하는 사람에게 무서워서 줬다. 나에게 죄는 그것 밖에 없다"고 피력했다.

'무섭다'는 이유에 대해서는 "밤에 습격해서 해코지를 할까 무서워서 안 줄 수가 없었다"고 설명했다.

4.3생존수형인들이 26일 오후 휠체어에 의지해 제주지방법원에 들어서고 있다. ⓒ 미디어제주
4.3생존수형인들이 26일 오후 휠체어에 의지해 제주지방법원에 들어서고 있다. ⓒ 미디어제주

박 할머니는 경찰에 잡혀가 고문당한 상황에 대해 "손을 뒤로 묶이고 천장에 매달린 채 몽둥이로 두들겨 맞았다. 정신을 잃어서 늘어지면 한겨울에 냉수를 부어 정신을 차리게 한 뒤 또 때렸다"고 증언했다.

김 할머니는 1948년 11월 경찰에 연행돼 그해 12월 제1차 군사재판에서 내란죄로 1년 형을 선고받아 전주형무소에서 복역, 만기 출옥했고 박 할머니는 1948년 서귀포에서 경찰에 끌려갔다가 같은 해 12월 28일 군사재판에서 내란죄로 징역 1년을 선고받아 전주형무소에서 10개월 형기를 마치고 출옥했다.

재판에 나선 피고인들은 80~90대 고령이라 귀가 잘 안 들려 검사가 피고인석에 가까이가 질의했고 피고인들이 '제주어'로 답을 하면 옆에 있던 사람이 말을 전하는 형태로 진행됐다.

피고인 중 현창용(86) 할아버지의 경우 심문을 위해 자리했지만 자신의 생년월일 정도 겨우 말을 하는 등 말을 거의 못하는 상태여서 도중에 심문을 중단하고 재판정을 빠져나갔다.

현 할아버지는 그 와중에도 검사의 물음에 "경찰들이 물어보지도 않고 때렸다. 무조건 때리기만 했다"고 대답했다.

재판부는 이날 재판을 진행하며 가급적 많은 진술 확보를 위해 피고인들이 검사의 질문과 다른 이야기를 하더라도 충분히 말을 할 수 있도록 했다.

26일 오후 4.3생존수형인 재심 재판 두 번째 공판에 앞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임재성 변호인이 재판부에 제출될 사진 자료를 들어보이고 있다. ⓒ 미디어제주
26일 오후 4.3생존수형인 재심 재판 두 번째 공판에 앞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임재성 변호인이 재판부에 제출될 사진 자료를 들어보이고 있다. ⓒ 미디어제주

재판에 앞서 임재성 변호인은 제주지방법원 앞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지난 2월 보도된 사진자료를 제시하며 피고인 진술의 신빙성을 높이기 위한 참고자료로 재판부에 제출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재판부는 27일에도 같은 법정에서 재판을 속행할 예정으로 2차 군사재판에 연루됐던 이들이 이날 재판에 임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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