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3-29 17:52 (금)
주전입니다만
주전입니다만
  • 홍기확
  • 승인 2018.11.16 10: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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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조각모음]<5>

한미일 3개 나라에서 이른바 정규시즌이 끝나고 진정한 승자를 가리는 ‘가을야구’가 끝났다.

야구장, 그 중에서도 그라운드 안에는 3시간이 넘는 동안 한 팀당 9명씩만 주인공이 될 수 있다. 이 자리에 못서는 후보선수는 덕아웃에 16명이 있고, 2군이나 3군, 육성군에 150명가량이 있다. 한 팀당 선수단은 200여명, 즉 선수단의 95%, 190여명은 모두 후보선수다.

흔히 야구를 인생에 자주 비유한다. 물론 비슷한 점이 많다. 사실 야구는 차가운 세상이고, 비정(非情)한 인생의 축소판이다. 하지만 야구는 인생과 크나 큰 다른 점이 있다.

야구는 한 판의 게임에 불과하지만, 인생은 긴 호흡의 거룩한 이야기다. 게임은 승패의 결과가 분명한 ‘승부’지만, 인생은 승패의 결과가 불분명한 ‘판단’이다. 야구는 주전과 후보선수로 나뉘지만, 인생은 항상 주전선수다. 물론 남들과 비교하면 후보선수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비교하지 않는 한, 무조건 인생은 자기가 주전선수다.

그럼 이 차가운 세상, 어떻게 뜨거운 주전선수로 살아야 할까?

그리고 어떻게 후보선수로 살라고 외쳐대는 세상에 돌직구를 날릴 수 있을까?

먼저, 대표적 자기계발서의 입장을 보자.

『시크릿』이란 책은 ‘간절히 바라면 이루어진다’고 했다. 『꿈꾸는 다락방』은 몇 년 후 나온 책 답게 조금 업그레이드되었다. ‘생생하게 꿈꾸면 이루어진다’고 한다. 그래서 이루어졌는가? 너무 편하게 생각하는 것 아닌가? 온 우주의 기운이 자기에게 와서 세상의 주인이 되었는가?

사실 자기계발은 고통스럽다. 『공부가 가장 쉬웠어요』처럼 공부해야 하고, 『마시멜로 이야기』처럼 참아야 하고, 『습관의 힘』처럼 습관을 바꿔야 한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보자. 사실 당신은 아무런 문제가 없진 않지만, 큰 문제도 없다. 단점이 있긴 하지만, 장점이 훨씬 더 많다. 사소한 단점은 있지만, 치명적인 단점은 없다.

현재, 당신은 주전선수다. 위로를 주려는 것이 아니다. 자기계발을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다. 당신이 주전선수라는 것을 일깨워주려는 것이다. 자기계발할 시간보다는, 자기인생을 사는 시간이 더 소중하다는 것을 상기시키려는 것이다.

『공부가 가장 쉬웠어요』

나는 공부를 하지, 공부 잘하는 사람을 보고 배우지 않는다. 10시간 집중해서 하기 보다는 15분 동안 이것저것을 하며 공부한다. 집중력 제로. 어머니도 항상 어렸을 적부터 왜 이렇게 너는 산만하냐고 했다. 하지만 사십 줄에 접어든 지금도 산만하게 공부만 잘한다. 별 탈없이 잘 살고 있다.

『마시멜로 이야기』

참지 못한다. 맛있는 것 있으면 먼저 먹는다. 아이에게도 배부를 경우를 대비해서 음식의 가장 맛있는 것부터 먹으라고 한다. 콜라를 좋아해도 첫 번째 캔은 맛있지만, 두 번째 캔은 고역이다. 경제학적으로 ‘효용’이 떨어진다. 이렇게 맛있는 것 먼저 먹고, 하고 싶은 것을 먼저 하면서 살아도 성공하지 못했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마시멜로 이야기』의 성공의 정의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솔직히 내 멋대로 살았는데 성공하고 있다고 ‘판단’이 든다. 혹시 다른 사람은 내가 게임이라는 ‘승부’에서 성공하지 못했다는 ‘결과’를 들이댈 수 있겠다. 부(富)의 크기나 지위의 고하가 기준이겠다. 하지만 인생은 상대방이 없는 혼자 하는 게임이다. 혼자서 왼손, 오른손으로 고스톱(정확히 말하면 맞고)을 쳤는데 왼손이 졌다. 그럼 내가 진건가? 또한 모두가 빌게이츠가, 트럼프가 될 수는 없지 않은가? 나아가 돈 없는 마더 테레사나, 평범한 우리 아버지가 뭐 잘못된 거 있는가?

『습관의 힘』

좋은 습관이 뭔지 모르겠다. 나는 왼손과 오른손을 공평하게 쓰는 양손잡이다. 세계인구의 0.1%다. 어릴 적부터 무던히 ‘바른손’을 쓰게 하려고 내 주변에 있는 지구인들이 부단히 노력했다. 맞기도 했고, 협박과 폭언도 당했다. 심지어 지금도 양손잡이는 환영받지 못한다. 미국 전미과학자협회의 한 논문은 양손잡이가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 (ADHD) 증상을 보일 가능성이 오른손잡이, 또는 왼손잡이에 비해 2배가량 높다는 연구를 내놨다.

나는 양손잡이다. 나도 안다. 집중력이 거의 0에 가깝다. 한 가지 일을 15분 이상 하지 못한다. 하지만 15분 이상 한 가지 일을 못하니 매일 15분 동안 여러 가지 일(작업)을 바꿔가며 했다. 물론 수십년간 꾸준히. 그렇게 평생의 잘못된 습관(?)을 가진 나를 지금은 다른 이들이 부러워한다.

좋은 습관(집중력 대마왕)은 없지만, 좋지 않은 습관(집중력 제로 양손잡이)으로 책을 3권 썼고, 대학의 학위는 3개를 받았고, 자격증은 20여개에, 영어와 중국어를 할 줄 안다. 게다가 왼손으로 라면을 먹으며 PC게임을 하거나, 글을 쓸 때 오른손이 아프면 왼손으로 쓴다. 여기에 더해 두 발과 두 손을 써야 가능한 드럼을 배워서(나에게는 최고의 선택이었다!) 밴드활동을 하고 있다.

이제 결론을 내 보자.

이 차가운 세상, 어떻게 뜨거운 주전선수로 살아야 할까?

앞서 말한 것을 정리하며 마친다.

첫째. 자신에게 맞는 공부방법을 찾으라고 세상은 얘기한다. 하지만 수많은 공부방법책을 읽어봐도 소용없다(내가 그랬다.) 돌고 돌아 내가 하는 방법이 제일 좋은 것이었다.

주전선수로 살기 위한 첫 번째 방법. ‘그냥 하던 대로 하면 된다.’ 공부방법을 공부할 필요가 없다. 그냥 공부를 하면 된다. 어떠한 것이든 말이다. 밥벌이를 위한 공부는 이미 끝나지 않았나? 공부 못 해도 엄마한테 혼나지 않는다. 배우고 싶은 걸 공부하면 된다.

둘째. 참으라고 세상은 얘기한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하고, 아파야 청춘이라며! 하지만 운 좋게 미국에서 태어난 사람들의 평균소득은 재수 없게 콩고에서 출생한 이들의 93배다. 잘사는 지구인 1%는 전세계 소득의 29%, 자산의 46%를 이미 차지하고 있다. 내가 왜 참아야 하는데! 왜 아파야 하는데! 사회구조가 잘못된 것일 수도 있는데, 왜 다 내 잘못인데!

태어나면서부터 아플 필요도 없고, 자기계발을 할 필요가 없는 사람들이 많다. 블룸버그의 자료에 따르면 세계 400대 부자 중 자수성가형 부자는 미국이 71%, 중국이 97%다. 한국은? 0%다. 모두 다 상속에 의해 부자가 된 것이다. 이들은 자기계발도, 참을 필요도, 아플 필요도 없다. 세상이, 구조가, 제도가 잘못된 것이지 내가 잘못된 게 아니다.

주전선수로 살기 위한 두 번째 방법. 굳이 자기계발하며 아파할 필요 없다. 죽도록 자기계발 해 봤자 큰 돈 못 번다. 그것 보다는 인생을 부유하게, 풍요롭게 하는 것이 현명하다.

소심하고 내성적인 내 성격의 결론은 소확행(小確幸, 작지만 확실한 행복)이다. 진부한 방법이라고? 아니다.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읽고, 두꺼운 표지를 1~2분간 붙잡으며, 눈을 감는 때의 그 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나는 누구에게도 뺏기고 싶지 않고, 공유하고 싶지도 않다. 스스로를 후보선수로 생각하며 자기계발 죽도록 해서, 남들이 알아주는 주전선수가 되려 하는 사람에게 소확행은 진부할 테지만.

셋째. 나는 아침에 일어나면 면도를 하고, 밥을 먹고, 회사에 간다. 주말에는 회사에 안간다. 코딱지는 보통 오른손으로 파며, 응가는 왼손으로 닦는다. 계획은 자주 세우지 않지만, 세우기만 하면 지키지 못한다. 결심은 자주 하지만, 결심한 만큼은 이루지 못한다.

주전선수로 살기 위한 마지막 방법. 살던 대로 사는 게 좋다. 자기의 습관은 자기의 인생이다. 인생은 습관을 포함한다. 다시 말해, 습관이 모여서 인생이 된다. 잘못된 습관 없다. 나아가 인생 잘못 산 것 없다. 습관을 바꾸라는 말은, 인생을 바꾸라는 것이다. 내가 잘못된 후보선수인가? 습관을 바꾸면 올바른 주전선수가 되는 거고?

와이프를 때리는 것은 ‘습관’이 아닌, ‘범죄’다.

늦게 일어나는 것은 ‘습관’이지만, ‘범죄’는 아니다.

범죄는 자기는 습관이라고 우겨도, 나라에서나 주변에서 질책하거나 잡아간다. 습관은 자기는 범죄라고 우겨도, ‘니 인생 니가 사는 거지’라며 나라나 주변에서 질책하거나 잡아가지 않는다. 물론 살던 대로 살다가 좀 위험하다 싶을 때가 있다. 하지만 이것은 습관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잘못을 저지르지 않는 것이 명확한 표현이다.

잘못된(?) 습관을 바꾸고 좋은(?) 습관을 새로 만들라는 진심어린 충고는 이처럼 개인의 인생을 바꾸라는 너무 나간 오지랖이다. 됐고요.

까칠한 세상에서 낭만적으로 사는 것. 시끄러운 세상에서 평화롭게 사는 것. 소소한 기쁨으로 충분하다.

평범한 일상이 특별한 감동으로 채워지는 것. 평범한 하루가 쌓여 특별한 인생이 되는 것. 그냥 그대로 나답게 사는 것이면 충분하다.

주전선수가 한 경기 못했다고 경기에서 빼지 않는다. 주전선수가 한 경기 잘 안 풀렸다고 스윙이나 투구폼을 바꾸지 않는다.

우리는 모두가 인생의 주전선수다. 잘 먹고 잘 살고 있다.

 




 

일상의 조각모음

홍기확 칼럼니스트

2004~2010 : (주)빙그레, 파주시, 고양시, 국방부 근무
2010~현재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근무
수필가(현대문예 등단, 2013년)
박물관 및 미술관 준학예사, 관광통역안내사(영어)
현 서귀포시 감귤박물관운영담당
현 서귀포시 공무원노동조합 사무국장
현 현대문예 제주작가회 사무국장
현 서귀포시청 공무원 밴드 『메아리』회장 (악기 : 드럼)
저서 : 『평범한 아빠의 특별한 감동』, 2015년, 지식과감성#
         『느리게 걷는 사람』, 2016년, 지식과감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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