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4-19 03:47 (금)
“섹스모텔이 보기엔 불편하겠지만 그것도 우리의 삶”
“섹스모텔이 보기엔 불편하겠지만 그것도 우리의 삶”
  • 김형훈 기자
  • 승인 2018.10.14 22: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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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태국 건축의 ‘사생아’로 불리는 챠퐁 츄엔루티모루

대한민국 건축문화제 참석해 건축의 지역성 주제로 강연
일반적이지 않은 작품 활동 몰두…하부구조에 관심 기울여
​​​​​​​섹스 모텔이나 건설 노동자 주택 등을 차용하며 건축 활동

[미디어제주 김형훈 기자] 건축에서의 지역성이란 무엇일까. 솔직히 답을 구하기는 쉽지 않다. 물론 지역을 어떤 개념으로 바라보느냐에 따라 건축에서 말하는 지역성도 달라지게 마련이다. 지역을 중앙의 상대개념으로 볼 것인지의 여부도 매우 중요하다. 중앙의 종속 개념으로 얘기할 때는 ‘지역’이 아닌 ‘지방’으로 부르기도 한다. 만일 건축을 그런 식으로 바라본다면 제대로 된 지역성을 논하기는 어려워진다. 그래서 ‘지방’이 아닌, ‘지역’이 중요하다. 지역은 나름의 독자성을 확보하고, 중앙과 대등한 위치로 바라볼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10일부터 제주도립미술관 등지에서 열리고 있는 2018 대한민국 건축문화제는 그런 의미에서 중요성이 크다. 지역의 건축을 논하고, 어떻게 하면 지역 건축을 키울 수 있는지에 대한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

태국 건축가 챠퐁 츄엔루티모루. 그는 일반적이지 않은 건축활동을 하고 있다. 김형훈
태국 건축가 챠퐁 츄엔루티모루. 그는 일반적이지 않은 건축활동을 하고 있다. ⓒ김형훈

그래서일까. 이번에 초대된 인물 가운데 태국 건축가인 챠퐁 츄엔루티모루가 눈에 띈다. 그의 건축은 일반적이지 않다. 여기서 말하는 ‘일반적’이라는 건 서양 중심의 건축을 말한다. 츄엔루티모루는 무척 활기가 넘치는 인물이다. 40대 중반의 젊음 때문인지, 원래가 활달한지는 모르겠으나 개성이 넘친다. 왜 초대된 것 같으냐고 물었더니 대답도 특이하다.

“잘 모르겠어요. 페이스북으로 제 작업을 잘 올리긴 하지만요”

기대했던 대답은 아니다. 나름의 작업을 하기 때문에 불러준 게 아닐까라는 그런 답변이 돌아올 줄 알았지만 그렇지 않다. 그런데 그와 대화를 나누면 나눌수록 푹 빠져든다. 이유는 있다. 진정 지역성이 담보된 건축을 하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건축을 ‘방콕 바스타드’라고 부른다. ‘방콕의 사생아’ 쯤으로 해석이 될 수 있다. 그는 왜 그런 말을 쓸까. 8살 때 미국으로 이민을 간 그는 하버드 건축대학원을 졸업한 후 2000년대 초에 태국 방콕으로 돌아온다. 그는 방콕에 와서 미국에서 배운 건축을 그대로 옮겼으나 그게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미국의 건축과 태국의 건축이 같을 수는 없다. 몇 년을 허비했다. 그러다 답을 찾은 건 이른바 ‘하부구조’였다.

“방콕 하부구조에서 아이디어를 얻었어요. 일반적인 건축활동은 아니지요. 제가 하는 건축활동이 일반적이지 않아서 ‘사생아’라고 불기기도 하고, ‘잡종’이라고 불리기도 해요. 알고 보면 버려진 것들이지만 그건 토착 건축이죠.”

츄엔루티모루가 기자에게 모텔 사진을 보여준다. 우리나라에서도 종종 보이는 모텔이다. 차량이 진입하는 쪽엔 커튼이 드리워진 그런 모텔이다. 일반적으로 ‘커튼 섹스 모텔’로 불린다. 그런데 기자에게 보여준 모텔은 ‘섹스 모텔’이 아니라, 그걸 바탕으로 재구성한 호스텔이었다. 그러면서 그는 “모든 호텔은 섹스호텔이지 않느냐”고 한다. 듣고 보니 맞는 말이다. 우리가 시선을 엉뚱한 곳에 두고 있을 뿐이다. 고급호텔이나, 섹스호텔이나 알고 보면 다들 인간의 원초적인 행위가 일어나고 있다.

도시의 '하부구조'에 관심을 가지고 건축활동을 하는 츄엔루티모루. 그게 바로 지역성이다. 김형훈
도시의 '하부구조'에 관심을 가지고 건축활동을 하는 츄엔루티모루. 그게 바로 지역성이다. ⓒ김형훈

이렇듯 츄엔루티모루는 낮은 곳에 관심을 두고 있다. 방콕에서 자주 마주하는 ‘커튼 섹스 모텔’은 물론 건설 노동자의 주택이나 불법시장 등이 그의 작업거리가 된다.

츄엔루티모루와 같은 작업은 일반적이지 않다. 대개는 하부구조를 완전 해체해서 뜯어내는 건축을 하려 하겠지만, 츄엔루티모루는 스스로를 거기에 녹여 들게 만든다. 운하 위에 떠 있는 건축물을 보여주면서도 이렇게 말한다.

“판자와 다리로 구성된 네트워크는 친구와 사회를 연결하죠. 그들은 스스로 건축활동을 합니다. 거기서 저도 배우고요.”

우리 같으면 거리를 둘 법도 하지만 츄엔루티모루는 그런 건축을 이해하려 하고, 그 속에 들어가서 도시의 일부가 되는 법을 알려주고 있다.

그는 지난 13일엔 ‘다채도시와 지역성’이라는 주제의 국제 컨퍼런스에 얼굴을 비추며 강연을 하기도 했다. 그 자리에서 그는 ‘사생아’로 불리는 그의 건축이 거리의 시민들과 소통하고, 우범지대 환경을 개선하는 노력을 하고 있다는 점도 덧붙였다. 그게 바로 지역성이라고 그는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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