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3-29 00:04 (금)
제주국제관악제를 위하여
제주국제관악제를 위하여
  • 고영림
  • 승인 2018.09.03 13: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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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이에 드 제주 Cahier de Jeju <1>

까이에 드 제주 Cahier de Jeju   까이에는 프랑스어로 공책 이라는 뜻이다. 제주를 공부하면서 쓰는 글이라는 의미로 칼럼 제목을 삼았다.』

바람결이 다르다. 어느새 가을이 다가왔음을 알리는 바람을 느끼면서 지난 여름 태풍 ‘솔릭’을 맞이하고 보냈던 제주도민들의 안도감을 상상해본다. 태풍을 온몸으로 받아내는 제주는 바람의 섬이고 바람의 울림이 늘 함께 하는 곳이다. 이런 바람의 의미를 예술적으로 승화시킨 축제가 있는데 ‘제주국제관악제’가 그 축제다. 1995년에 시작하여 23년 동안 계속되어온 제주의 대표 축제라 할 수 있다. 음악을 애호하고 즐기는 필자에게 제주국제관악제는 여름의 더위를 식혀주는 훌륭한 매개이자 새로운 감동을 얻어가는 시간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축제가 해를 거듭하면서 양적으로 성장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으나 과연 질적으로도 그에 비례한 성장을 하고 있는지 질문을 던져왔다. 필자는 이 질문에 답을 찾아가는 과정으로 현장에서 목격하고 경험한 것들을 정리해보았다.

#제주국제관악제는 누구를 위한 축제인가

어떤 축제든 누구를 위해 치러지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게 된다. 제주국제관악제는 참여하는 음악인을 위한 축제인가 아니면 제주도민을 위한 축제인가. 10여 년 전 부터 관객으로 참여하면서 관찰해온 필자가 내린 결론은 음악인을 위한 축제라는 사실이다. 개막행사와 광복절경축음악회를 겸한 폐막행사에는 제주도민들이 관객으로서 많이 참여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프로그램, 특히 실내공연장에서 진행되는 프로그램에는 초대된 연주자들과 관악밴드들이 좌석을 채운 것이 자주 목격된다. 물론 그들이 이 축제를 즐길 자격이 있음은 당연하다. 다른 나라에서 온 연주자들의 공연을 즐기면서 그들 간 교류를 한다면 이 축제의 의의에 충분히 부합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23년의 역사를 쌓아온 국제적 축제를 자부하는 위상을 본다면 연주자 아닌 일반 관객의 참여도가 낮은 것은 분명하다. 앞으로 이 점을 제주국제관악제는 진지하게 고민해야할 것이다.

#불편한 순서

늘 불편한 순서가 있는데 다름 아닌 제주특별자치도의 고위공직자들의 무대 인사말이다. 제주국제관악제는 분명히 예술 축제인데 왜 그들이 주인공이 되어야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개막행사에서 조직위원장의 환영인사는 초대된 연주자들과 일반 관객을 위한 프로토콜로 인정한다. 그러나 제주특별자치도의 고위공직자가 무대에 올라와서 마이크를 잡고 인사말을 하는 것을 당연시 하는 관청 중심 현상은 매해 반복되고 있다. 제주국제관악제의 위상을 생각한다면 이런 불편한 문화는 시정되어야한다. ‘관은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는다’라는 명제를 제주특별자치도 행정은 이제라도 학습해야할 필요가 있다. 특히 광복절경축음악회를 겸한 폐막식에서 제주특별자치도지사와 제주특별자치도의회의장이 마이크를 잡는 것은 제주국제관악제의 진정한 주인공인 연주자들과 제주도민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폐막식에서 마이크를 잡아야할 사람은 제주국제관악제 예술감독이어야 한다. 당해의 제주국제관악제의 성과와 앞으로의 비전을 예술감독이 제주도민에게 보고하는 자리가 마련된 적이 없다. 이 점 역시 제주국제관악제 조직위원회의 진지한 반성과 성찰이 필요하다고 본다.

#해마다 반복되는 연주자와 교향곡

제주국제관악제에는 세계적 명성과 권위의 관악인들이 초대된다. 그들의 연주를 제주도에서 그것도 무료공연으로 즐길 수 있다는 사실만 놓고 본다면 제주도민들은 행복한 사람들이다. 그러나 10여년 가까이 같은 연주자의 마에스트로 공연이 반복되고 있는 것은 어떻게 해석해야할 것인가. 국제적 축제를 자부한다면 같은 연주자의 무대를 해마다 반복하는 것을 부끄럽게 여겨야한다. 게다가 제주국제관악・타악콩쿠르 입상자 음악회의 지휘자 역시 매해 같은 사람이 맡고 있다. 아무리 훌륭한 지휘자라고 하더라도 매해 같은 지휘자가 해석하는 음악을 들으라는 곤욕을 이제는 그만 치르고 싶다. 제주국제관악제의 위상에 맞는 다양한 지휘자의 다양한 해석의 음악을 듣고 싶다. 그리고 제주국제관악제의 폐막공연을 겸한 광복절경축음악회 마지막 곡이 ‘한국환상곡’이다. 제주국제관악제 조직위원회의 판단으로 8.15에 딱 맞는 곡이라고 확신하기 때문에 이 교향곡을 부동의 레퍼토리에 올려놓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축제가 성장하고 내실을 기하려면 변화할 줄도 알아야한다. 2019년 제주국제관악제 폐막공연에서도 한국환상곡을 들어야하는지 묻고 싶다.

#제주도 출신 관악인의 무대

제주국제관악제가 시작된 계기는 제주도내 브라스밴드를 비롯한 관악인이 인구비례 전국에서 가장 많기 때문이었다. 제주도내 음악교사들이 그 꿈을 꾸기 시작했고 그들의 꿈을 이뤄낸 현장이 제주국제관악제다. 그만큼 제주국제관악제는 제주관악인들의 피와 땀의 결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아쉬운 것은 제주에서 성장한 관악인들이 분명히 많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무대가 기대만큼 많지 않다는 사실이다. 제주도 출신 관악인들을 열심히 발굴하고 초청해서 제주도민의 자부심을 확인할 수 있는 무대를 최대한 많이 만들어줄 것을 기대한다.

#초청연주자들을 위한 친교의 자리

금년 2018년 제주국제관악제에 초청된 관악인은 3천여 명이다. 그들을 한 자리에 모은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그들이 만날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되지 않은 점은 매우 아쉬운 점이다. 조직위원회의 실무적 능력을 넘어서는 일일 수 있으나 기획하기 나름이라고 본다. 예를 들면 점심 또는 저녁식사를 초청된 연주자 또는 그룹끼리만 먹게 하지 않고 주 행사장인 제주문예회관 내 또는 인근에 케이터링 서비스를 제공한다면 자연스럽게 관악인들이 친교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무엇을 먹으면서 함께 이야기하는 것처럼 즐거운 일은 없다. 같은 예술을 하는 사람들이 함께 식사하면서 이야기하는 친교의 시간은 제주국제관악제가 질적 성장을 할 수 있는 디딤돌이 되리라 확신한다.

#제주관악인들의 화합을 기대하며

제주국제관악제가 표방하고 있는 테마는 ‘섬, 그 바람의 울림’이다. 이 테마를 처음 접했을 때 가슴이 뛰고 황홀해졌던 순간을 잊을 수가 없다. 제주국제관악제의 의의를 표현하는 카피로서 더 훌륭한 카피는 있을 수 없다고 확신한다. 결론을 대신하여 당부하고 싶은 것이 있다. 제주관악인들이 1995년, 23년 전의 초심으로 돌아가 줄 것을 간곡히 요청한다. 음악에 대한 열정과 사랑으로 시작했던 23년 전의 제주관악인들이 다시 뭉친 모습을 보고 싶다. 제주국제관악제가 백년, 이백년을 내다보는 굳건한 전통의 축제가 되어 다음 세대에게 자랑스럽게 물려줄 수 있는 정신적 유산이 되어줄 것을 당부한다.

<칼럼 내용은 미디어제주의 편집 방향 및 의견과 다를 수 있습니다>

 





 

고영림의 <까이에 드 제주 Cahier de Jeju>

고영림 칼럼니스트

제주여고 졸업
이화여대 불어불문학과 졸업
프랑스 스트라스부르대학교 석사, 박사 (전공 언어학)
제주프랑스영화제 집행위원장
(사)제주국제문화교류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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