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4-25 17:37 (목)
“기후를 제대로 들여다보면 제주민들의 지혜 읽혀”
“기후를 제대로 들여다보면 제주민들의 지혜 읽혀”
  • 김형훈 기자
  • 승인 2018.06.21 13:51
  • 댓글 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인터뷰] ‘조선시대 제주도의 이상기후와 문화’ 펴낸 김오진씨
​​​​​​​“세종 때 ‘과잉인구론’에 따라 강제 이주 당하는 아픔 겪어”

[미디어제주 김형훈 기자] 역사를 살펴보면 기후가 인간에 미치는 영향이 적지 않다. 때문에 역사를 제대로 풀어쓰려면 기후와의 상관관계를 잘 따지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최근 발간된 <조선시대 제주도의 이상기후와 문화>(푸른길, 2만5000원)라는 저술은 무척 관심을 끌게 한다. 책을 좀 더 세밀하게 들여다보기 위해 저자를 직접 만났다.

책을 쓴 저자는 현직 교사이다. 지리를 전공했으며 이학박사이기도 한 세화고 교감인 김오진씨다. 그는 왜 기후에 꽂혔을까.

기후가 역사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한 '조선시대 제주도의 이상기후와 문화'를 펴낸 세화고 김오진 교감. 미디어제주
기후가 역사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한 '조선시대 제주도의 이상기후와 문화'를 펴낸 세화고 김오진 교감. ⓒ미디어제주

“지리를 공부하면서 제주지역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된 겁니다. 기후를 주제로 삼아 공부를 하는데 과거 기후를 종합적으로 연구한 건 없더라고요. 옛 기후를 분석하다보니 역사에 드러난 피해사실 그 자체가 이상기후였음을 확인할 수 있었어요. 제주도 재해의 대부분은 기후 때문입니다. 그러면 곧바로 기근으로 이어지죠. 일종의 방정식이었어요.”

그는 2004년부터 관련 자료를 수집했다고 한다. 대한지리학회 등에 논문도 발표했다. 2009년 박사학위를 취득했으나 그에 그치지 않았다. 보완에 보완을 거듭했다. 그런 노력 때문인지 출판사에서 책으로 내자는 제안을 받았다. 연구물이 일반인을 대상으로 읽히는 책으로 되는 순간이었다.

“작년 7월부터 책으로 내려고 작업을 했어요. 육지도 다니고, 외국도 다니면서 그야말로 발로 뛰었답니다.”

발품을 팔았다. 태풍이 지나간 전후의 흔적을 살피기 위해 같은 자리에서 수차례 카메라 셔터를 누르기도 했다. 어려운 점은 빈약한 자료였다. 기후에 대한 옛 기록은 단편적이어서 그걸 연결하는 게 쉽지 않았다고 한다. 옛 기록을 보며 슬픔에 젖기도 했단다.

“옛 기록을 보면 슈퍼태풍이 왔다는 기록을 발견할 수 있는데, 그걸 보면 눈물이 날 정도입니다. 정의현은 해일이 일어나서 침수가 되기도 했어요. 특히 가을 태풍이 무섭다는 걸 기록으로도 확인할 수 있어요.”

영등달이라고 부르는 음력 2월은 조상들의 지혜가 담겨 있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대게 양력을 기준으로 3월이면 폭풍이 잦다. 옛 사람들은 그걸 제대로 이해했고, 신앙으로 풀어냈다.

“철이 바뀌면 바람도 교체됩니다. 12월은 북서풍만 불지만 이후 차츰 잠잠해지다가 3월은 달라집니다. 3월 바람은 북서풍이 불기도 하도 동풍도 부는 등 바람이 심하죠. 옛 사람들은 그런 걸 알았기에 영등달엔 행해도 금지를 한 것이죠.”

그는 기후를 통해 제주사람들의 지혜를 볼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역사를 보면서 제주사람들의 수많은 고통을 감지했다. 특히 ‘대왕’으로 일컫는 세종 때는 제주사람들의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는 평가를 내렸다.

김진오 교감은 조선 세종 때 목마장을 체계적으로 구축하면서 제주도민들의 삶이 많이 달라졌다고 분석했다. 미디어제주
김진오 교감은 조선 세종 때 목마장을 체계적으로 구축하면서 제주도민들의 삶이 많이 달라졌다고 분석했다. ⓒ미디어제주

“세종 때 목마산업을 적극 육성하면서 제주의 자생적인 전통이 무너지게 됩니다. 목마산업이 국가독점화된 것이죠. 다양하던 생업구조도 단순하게 바뀌게 됩니다.”

세종 때 제주에 목마장을 체계적으로 구축하지만 오히려 그게 제주도민들의 삶을 옥죄게 됐다는 분석이다. 당시엔 굶주림을 발생시키는 기근도 많았다. 그가 분석한 자료엔 세종 때만도 모두 6차례 이상기후가 발생했다고 한다. 그걸 해소하려면 먹거리를 찾아야 하고, 농지를 확보해야 하지만 조선정부는 그러지 않았다.

“제주도는 토지 이익은 적은데 인구가 지나치게 많아 기근이 발생하고 있다고 세종은 판단했어요. 사람은 많고 땅은 좁은 인다지착(人多地窄)의 섬으로 봤던 겁니다. 근대 인구지리학자인 멜서스의 과잉인구론과 흡사해요. 그래서 세종은 인구 줄이기 정책을 쓰죠.”

세종은 목마장은 늘렸으나 제주의 인구를 줄이기 위해 이주정책을 펼쳤다. 강제 이주를 시켜 인구압을 낮춤으로써 식량부족 문제도 해소하려고 했다.

“자원해서 육지로 가는 사람이 나와야 하는데 그러지 않으니까 말산업에 딴지를 거는 세력을 우마적(牛馬賊)으로 판단했고, 그들을 북방 변경지대로 강제로 이주시키는 정책을 쓴 겁니다.”

김진오 교감이 책을 보며 조선시대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미디어제주
김진오 교감이 책을 보며 조선시대 제주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미디어제주

그에 따르면 제주사람들은 조선의 중앙정치에 편입되기 이전엔 말을 팔아서 먹거리를 구하기도 했으나 조선의 이런 정책으로 진취적이면서 개척적인 사람들이 미움을 받았다고 한다. 우마적은 중범죄자로 취급받았고, 연좌제까지 적용됐다. 그런 정책으로 사료만 기준으로 하더라도 1450명을 넘는 제주도민들이 강제 이주를 해야 했다. 없는 기록을 포함하면 그런 도민은 더 많았을 것으로 추산된다.

책은 기후가 역사에 미치는 중요성을 간과해서는 안된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제주도 사람들이 ‘우마의 적’이 되어야 했다는 사실은 조선정부의 과도한 간섭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책은 이밖에도 기근에 대처하는 제주도 사람들의 다양한 삶의 방식을 엿볼 수 있다. 바령이라는 농법도 있고, 메밀을 간 이유도 책을 들여다보면 나온다. 제주의 조냥정신도 기근에 대처하는 하나의 방법이기도 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딥페이크등(영상‧음향‧이미지)을 이용한 선거운동 및 후보자 등에 대한 허위사실공표‧비방은 공직선거법에 위반되므로 유의하시기 바랍니다.(삭제 또는 고발될 수 있음)
댓글 1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이영자 2018-06-24 16:08:39
선조들의 지혜를 담으셨다니
꼭 읽어보고 싶습니다
축하드리며 ᆢ건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