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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女 보육교사 피살 사건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제주 女 보육교사 피살 사건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 이정민 기자
  • 승인 2018.05.21 11: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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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경찰 “수사 종료할 때까지 박모씨 피의자 신분 유지”
구속영장 기각 사유 검토 ‘증명력 있는’ 증거 확보 주력

[미디어제주 이정민 기자] 2009년 2월 제주서 발생한 어린이집 여 보육교사 이모(당시 27세)씨의 피살 사건을 재수사하고 있는 경찰이 구속영장 기각과 관계없이 피의자의 범행을 입증할 ‘증명력 있는’ 증거 확보에 주력하기로 했다.

21일 제주지방경찰청에 따르면 제주지방법원이 지난 18일 오후 11시 30분께 구속영장을 기각했으나 지난 16일 오전 8시 20분께 경북 영주에서 이씨 강간살인 혐의로 체포한 박모(49)씨는 여전히 피의자 신분을 유지하고 있다.

제주지방경찰청사 전경. ⓒ미디어제주
제주지방경찰청사 전경. ⓒ미디어제주

제주경찰은 법원의 구속영장 기각 사유를 면밀히 검토하며 범행을 입증할 수 있는 증거 보강에 주력한다는 방침이다.

앞서 법원은 제주지방검찰청이 청구한 박씨에 대한 구속영장실질심사에서 “피의자의 주장이나 변명에 모순되거나 석연치 않은 점이 일부 있기는 하나, 제출된 자료들을 종합할 때 범죄사실(피해자가 범행 당일 피의자가 운행하는 택시에 탑승한 사실)에 대한 소명이 부족하다고 판단되고 현 단계에서 피의자를 구속해야 할 사유와 상당성을 인정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기각했다.

법원은 구속영장 청구 기각 사유에서 경찰이 이씨의 사망시간이 2009년 2월 1일께라는 추론을 얻어낸 동물사체 실험 결과에 대해서는 ‘새로운 증거’로 평가하기 어렵고 범행에 대한 직접적인 증거로도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또 피의자(박씨)의 택시에서 피해자(이씨)가 입었던 점퍼(무스탕)의 동물털과 유사한 섬유가 발견된 것과 피해자의 우측 무릎과 어깨 등에서 피의자가 입고 있던 남방의 섬유와 유사한 면 섬유가 발견된 것에 대해서도 ‘유사하다’는 의미일 뿐 양자가 일치하지 않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와 함께 2009년 2월 1일 무렵 차량(택시) 운행경로에 대한 피의자 진술이 일부 부정확하거나 불명확한 점이 있지만 초동수사 과정에서 용의선상에 오른 다른 차량의 운전자 역시 자신의 차량운행 경로를 구체적으로 진술하지 못한 점에 비춰 볼 때 피의자가 당시를 정확하게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 자체를 범행에 대한 유력한 근거로 삼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 외에도 2009년 2월 1일 새벽 무렵 범행현장 부근인 애월농협유통센터 앞 CCTV와 애월읍 장전리 산빛마당펜션 앞 CCTV에 NF 소나타로 추정되는 차량의 옆 부분이 촬영됐지만 피의자가 당시 운행하던 택시와 동일한 것으로 단정하기 어렵고 거짓말탐지기 검사, 긴장정점(POT)검사, 뇌파검사 등의 결과도 형사소송법상 증거능력을 인정하기 어려운 점을 들었다.

경찰 “법원 판단은 증명력 있는 증거를 보강해 달라는 시각”

불구속 상태 피의자 신분 유지 증거 확보 시 재차 소환키로

“박씨 특정해 놓고 증거를 맞춰 나가는 수사 아니냐” 지적도

경찰은 이 같은 법원의 판단에 대해 ‘증명력 있는’ 증거를 보강해 달라는 시각으로 받아들이고, 증거를 보완하는 방향으로 수사를 진행할 예정이다.

특히 법원이 ‘유사하다’라고 해석한 섬유 증거에 대해서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상의해 증거 능력을 보강하는 작업을 더 거치도록 할 계획이다.

박씨의 신분도 ‘불구속 상태의 피의자’를 유지하면서 증거 보강 수사를 진행하고 ‘증명력 있는 증거’를 확보하는 등 준비가 되면 재차 소환 조사하기로 했다.

동물사체 실험을 통해 얻어낸 이씨의 사망 추정 시간에 대해서는 법원이 새로운 증거나 범행에 대한 직접적인 증거로 보지 않았으나, 2009년 2월 1일께라는 점은 달라지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20일 “박씨를 용의자에서 피의자 신분으로 전환하는데 9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며 “살인사건은 공소시효가 없다. 우리가 사건을 종결할 때까지 박씨는 이씨를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는 피의자다”고 말했다.

이어 “이씨와 박씨가 서로 만났다, 혹은 접촉했다는 증거가 있어야 판사도 만남을 인정하게 되고, 그렇게 되면 종전에 했던 각종 검사 및 조사 자료가 (증거로써) 살아난다”며 “법원이 인정할 수 있는 증명력 있는 증거를 제출하는 것이 앞으로 경찰의 임무”라고 부연했다.

이 관계자는 “범죄 증명이 ‘이 사람이다’라는 것도 있지만, ‘이 사람일 수 밖에 없다’라는 것도 있다”며 “법원의 구속영장 기각은 경찰 수사의 ‘잠시 숨고르기’다. 향후 9년이 더 걸리더라도 우리는 사건을 접지(종료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지난 18일 오후 자신에 대한 구속영장이 기각된 박모(49)씨가 19일 새벽 제주동부경찰서를 나서고 있다. © 미디어제주
지난 18일 오후 자신에 대한 구속영장이 기각된 박모(49)씨가 19일 새벽 제주동부경찰서를 나서고 있다. © 미디어제주

그러나 이번 재수사를 두고 ‘박씨를 특정해 놓고 증거를 맞춰나가는 수사를 하는 게 아니냐’는 시각도 있어 앞으로 경찰이 얼마나 증명력 있는 증거를 확보할 것이냐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한편 피의자 박씨는 지난 18일 영장실질심사를 마친 뒤 유치장 입감 전 ‘혐의를 인정하느냐’는 물음에 “아니요”라고 답하며 자신의 억울함을 피력했고 구속영장 기각 후 19일 오전 유치장을 나서면서 현장에 있던 취재진에게 “너무 힘들다”는 말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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