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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춤과 노래로 평화를 지킬 거예요”
“우리는 춤과 노래로 평화를 지킬 거예요”
  • 김은애 기자
  • 승인 2018.05.15 10: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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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를 위한 여성 협력자들 국제위원회’의 필리핀 여성 3인을 만나다
필리핀 사례를 통해 미군기지의 폐해, 그로 인한 주민들의 고통 살펴보기

[미디어제주 김은애 기자] “폭력은 어떤 식이든 정당화될 수 없다”는 말에 대부분 사람은 고개를 끄덕일 것 같다.

그렇다면 그 범위를 군대로 한정해도 마찬가지일까? 평화를 지키기 위해 폭력을 사용해야 한다면 그것은 정당화될 수 있는 걸까?

제주도 서귀포시 강정마을 해군기지 반대주민회(이하 강정주민회.)는 제주와 강정의 평화를 외치며, 해군기지를 철수시킬 것을 주장한다. 폭력으로는 결코 평화를 지킬 수 없다는 입장이다.

반대로 해군기지를 찬성하는 측은 한국의 안보를 위해 기지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각자의 처지에 따라 다른 답이 나올 수도 있을 이 문제를 ‘여성 인권과 평화’라는 시각에서 바라본 이들이 있다. '평화를 위한 여성 협력자들 국제 위원회(International Council of the Peace Women Partners, 이하 여성국제위.)’의 세 여성이 말하는 필리핀의 사례를 통해 군사기지의 폐해와 그로 인해 주민들이 겪은 고통을 살펴보자. [편집자주]

수비크만의 미군이 성조기를 내리는 모습. 자료제공: 코라

1947년 미-필리핀 군사기지협정이 1991년 만료됨에 따라 다음 해인 1992년, 미군은 필리핀에서 완전히 철수하게 된다. 특히 필리핀 수비크만 해군기지와 클라크 공군기지는 당시 미군의 해외 주둔 기지 중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고 있었고, 몇십 년 동안 필리핀에 주둔하던 이 군사기지가 폐쇄된다는 사실은 전 세계적으로도 큰 이슈였다.

그렇다면 미군이 주둔했을 당시, 필리핀 여성들은 무슨 일을 겪었을까?

강정주민회의 최성희 씨의 통역 및 지원을 받아 여성국제위 세 여성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장소 제공과 사진 협조는 강정주민회 엄문희 씨의 도움을 받았다.

 

# 미군기지로 인한 필리핀 여성의 피해

1. 미군에 의한 성폭력

여성국제위 이사이자 국제평화국 부회장이기도 한 코라존 파브로스(Corazon Valdez Fabros, 이하 코라.)의 말에 따르면 “수비크만 미국해군기지는 폐쇄 이후 민간시설로 전환되어 자유항구가 되었단다. 하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현재까지 미국인들이 사용하고 있으며, 미군들은 이곳을 꾸준히 방문하고 있다.

코라는 “미군기지 철수 후 16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미군에 의한 성폭력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고 전했다.

여성국제위 이사직을 맡은 코라존 파브로스(Corazon Valdez Fabros).

코라는 “2000년대 초, 대형 승합차 안에서 한 명의 필리핀 여성이 네 명의 남성에 의해 강간을 당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강간이 일어난 장소는 해군기지가 있었던 수비크였고, 네 명의 남성 모두 미국 군인이었다”고 말했다.

성폭력 범죄에 따른 네 명의 미군 남성들은 어떤 처벌을 받았을까?

코라는 “한 명만 기소되고, 나머지 세 명은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풀려났다”고 말하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4년 전에는 여성으로 성전환 수술을 한 트랜스우먼이 미군에 의해 강간당하는 일도 있었다. 해당 군인은 유죄판결을 받고 구금되었지만, 일반 감옥이 아닌 생활이 편한 특별실에 수용되었다고 한다.

코라는 “제가 이 문제를 이야기하는 이유는 타국에서 범죄를 저지른 미군을 처벌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말하고자 함이다”라며 “미 정부가 미군을 보호하고 있고, 미군은 주둔지에서 특별 대우를 받고 있기 때문에 미군이 범죄를 저지르더라도 처벌이 쉽지 않은 상황”임을 지적했다.

 

# 미군기지로 인한 필리핀 여성의 피해

2. 성매매 활성화로 인한 각종 사회 문제

한편, 필리핀대학(University of the Philippines)의 젠더와 개발부에서 일하고 있는 프리실라 털리팻(Prescilla Tulipat, 이하 프리실라.)은 “군사기지가 생기면 자연스럽게 성매매 업소가 늘어나게 된다”면서 “필리핀에 미군이 주둔할 당시, 성매매 여성이 사는 곳을 ‘레드하우스’라고 불렀다. 이들은 하루 30명의 남성을 상대해야 했다”고 말했다.

여성국제위 회원인 프리실라 털리팻(Prescilla Tulipat).

프리실라는 “성매매 업소에서는 성매매 여성이 있는 방문을 자물쇠로 잠근다. 그런 상태에서 끊임없이 미군을 상대하게 되면 괴로움 때문에 마약을 하게 된다”면서 “성매매 여성은 쥐꼬리만한 돈을 받으며 미군의 성노예가 될 수밖에 없다”고 당시의 참담한 실정을 전했다.

여성국제위 회장인 메르시 L. 앙헬레스(이하 메르시.)는 “이것이 바로 여성국제위가 군사기지를 반대하는 이유 중 하나다”라며 “2차 대전부터 있었던 군인에 의한 성폭력 문제는 지금도 여전히 존재한다”고 말했다. 또한 “군사기지가 있는 한 여성 성매매는 사라지지 않을 것”임을 경고했다.

여성국제위 회장인 메르시 L. 앙헬레스(Merci L. Angeles).

 

# 미군기지로 인한 필리핀 여성의 피해

3. 환경 오염으로 인한 유산 및 기형아 출산

코라는 “미군이 주둔함으로써 발생하는 환경 오염 문제도 엄청나다”면서 “아마 지구상에 군사기지만큼 오염된 땅은 없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오랜 시간 동안 오염된 땅에서 살아온 필리핀 미군기지 인근의 여성들은 높은 비율로 유산 문제를 겪고 있다. 코라는 “태아는 구순구개열, 심장판막장애 등으로 고통받고 있으며 주민들의 암 발생률도 늘었다”면서 문제의 심각성을 강조했다.

메르시는 “군사기지는 임신한 여성들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친다. 강정마을의 여성, 그리고 전 세계 모든 여성이 군사기지문제를 종식시키기 위해 같이 힘을 모아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메르시는 “필리핀의 일반 여성들에게 강정의 미국해군기지 반대 투쟁 사진을 보여줬을 때, 대부분 즉각적으로 지지 의사를 표시한다. 이는 해군기지로 인해 겪는 주민들과 여성들의 고통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부연했다.

메르시가 강정 해군기지 앞에서 '해군기지 반대' 문구가 적힌 종이를 들고 있다. 자료제공: 메르시

메르시는 “전 세계 각지에 주둔한 군사기지를 몰아내기 위해 멈추지 않을 것이다. 미국도 우리를 멈출 수 없다”라며 “더 많은 이들이 우리와 함께하고, 계속해서 나아가길 바란다. 이는 전 세계 모든 여성에게 전하는 호소이자 부르짖음이다”라고 호소했다.

한 나라의 막강한 군대를 상대로 하는 민단 여성의 싸움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어쩌면 달걀로 바위 치기 격인 문제일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단한 바위를 깨뜨리는 바다의 파도처럼, 고인 물이 아니라 흐르는 물처럼 세계 곳곳에서 투쟁하는 이들이 있다.

2016년, 필리핀 민다나오의 여성들이 제주해군기지 반대 투쟁을 지지하는 모임을 가졌다. 자료제공: 메르시
필리핀 민다나오 미드사얍 대학생들이 제주 평화를 위해 포럼을 열었다. 자료제공: 메르시

메르시는 “강정주민회 사람들이 매일 인간띠를 통해 춤과 노래로 투쟁하는 것을 알고 있다”면서 “길고 어려운 싸움을 지속하기 위해 우리도 함께 춤출 것이다”라고 다짐했다.

평화를 지키기 위해, 칼과 총이 아닌 춤과 노래의 방법을 택한 이들의 투쟁이 진정 평화로 자리잡기를 바라본다.

(왼쪽부터) 메르시, 프리실라, 코라존

<평화를 위한 여성 협력자들 국제 위원회 3인 소개>

필리핀 국적의 메르시 L. 앙헬레스, 코라존 파브로스, 프리실라 털리팻 세 여성은 여성국제위 회원이다. 정의롭고 지속 가능한 평화를 위해 전 세계 여성들과 세계 각국을 누비며 활동하고 있으며, 지난 4월 말부터 5월 10일까지 한국을 방문해 각종 강연을 펼치기도 했다.

메르시 L. 앙헬레스는 여성국제위 회장이다. 개발∙가난 완화∙평화∙갈등 해결에 있어 여성의 역할과 권리, 여성에 대한 폭력, 여성 폭력 생존자들에 대한 윤리적 대우의 필요성 등을 주제로 필리핀 및 호주, 인도, 일본, 싱가포르, 태국, 한국(제주), 중국(베이징) 등에서 열린 국제회의에서 여러 차례 강연을 진행했다.

코라존 파브로스는 여성국제위 이사 겸 국제평화국 부회장을 맡고 있다. 국제평화국은 2015년 강정에 션 맥브라이드 평화상을 구성했던 곳이기도 하다. 그녀는 필리핀에서 인권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으며, 국제 반핵 및 반전 운동 지도자로 익히 알려져 있다.

프리실라 털리팻은 필리핀대학(University of the Philippines)의 젠더와 개발부 소속이다. 사회복지사로 여성에 대한 폭력, 여성 건강 및 성생활 등 광범위한 범위에서 연구를 하고 있다. 여성 폭력 생존자를 위한 전문 상담도 진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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