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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의 전국화‧세계화, 미래세대 전승이 절실한 이유”
“4.3의 전국화‧세계화, 미래세대 전승이 절실한 이유”
  • 홍석준 기자
  • 승인 2018.05.08 07: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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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4.3 70주년, 가장 바쁜 4월 보낸 강정효 제주민예총 이사장
“기밀 해제된 미 군정 자료, 4.3평화재단이 조사 나서야” 강조하기도

[미디어제주 홍석준 기자] 제주4.3 70주년. 이제 막 4월이 지났을 뿐이다. 하지만 지난 4월까지 제주와 서울에서는 종전에는 없었던 많은 일들이 진행됐다.

사진기자로서, 작가로서 4.3 진상 규명운동의 현장을 누비다 무거운 카메라를 잠시 내려놓고 올해 4.3 70주년 기념사업을 무리없이 이끌어가고 있는 제주민예총 강정효 이사장. 연휴가 시작된 첫날, 그의 작업공방 ‘이소재(離騷齋)’를 찾아갔다.

그는 4.3의 전국화와 세계화, 그리고 미래세대 전승이라는 목표를 중심에 두고 진행되고 있는 4.3 70주년 기념사업에 대해 일단 나름대로의 성과가 있었다고 자평했다.

가장 먼저 언급한 것은 ‘4.3의 전국화’라는 목표였다. 그는 이 부분에 대해 “지금까지는 4.3의 전국화를 얘기하면서도 구호에만 그쳤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올해는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서 진행되고 있는 전시회와 광화문 문화제, 그리고 6개 대안공간에서 한 달 이상 진행된 전시회, 포럼, 4.3 관련 영화 상영과 세미나 외에도 전국 20개 도시에 분향소를 설치하는 등 말 그대로 4.3을 전국적으로 알리는 데 주력했다.

‘제주4.3은 대한민국의 역사입니다’라는 슬로건으로 유명 연예인들과 정치인들이 메시지를 전한 캠페인과 동백꽃 배지 달기도 한 몫을 했다.

강 이사장은 이 대목에서 4.3의 전국화가 왜 필요한 것인지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4.3특별법에서 4.3의 시작이 3.1절 기념대회였다고 하는데, 당시 도민들이 외친 구호는 제주도를 잘 살게 해달라고 외친 게 아니었다”면서 ‘통일조국 전취’라는 우리나라의 상황을 얘기한 것이지 제주도의 상황을 얘기한 게 아니었다는 점을 짚었다.

이처럼 71년 전 3.1절 기념대회에서 나온 외침이 당시 전국적으로 이슈가 됐던 사안이었기 때문에 4.3이야말로 대한민국의 역사라는 차원에서 ‘4.3의 전국화’라는 목표가 당위성을 얻게 된 것이라는 얘기다.

‘4.3의 세계화’라는 목표에 대해서도 그는 “결론적으로 4.3은 당시 세계사적인 냉전의 산물이었다”며 제주도만이 아니라 그 시기에 전 세계적인 냉전 상황에서 제주도에서 일어난 일이었다는 사실을 알려야 하기 때문이라는 점을 역설했다.

강정효 제주민예총 이사장이 지난 3월 31일 제주시청 앞에서 열린 4.3 민중항쟁 70주년 정신 계승 범국민대회에서 참석자들과 함께 구호를 외치고 있는 모습. ⓒ 미디어제주
강정효 제주민예총 이사장이 지난 3월 31일 제주시청 앞에서 열린 4.3 민중항쟁 70주년 정신 계승 범국민대회에서 참석자들과 함께 구호를 외치고 있는 모습. ⓒ 미디어제주

강 이사장은 이어 이번 4.3 70주년 행사를 준비하면서 ‘미래세대 계승’이라는 목표에 깊이 천착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와 함께 실무 팀이 청소년 문화예술한마당에 특별히 공을 들인 것도 이 때문이었다.

그는 “예전 같으면 4.3 행사든, 입춘굿이든 부스를 만들어도 대부분 기성세대들이 해왔는데 올해는 절반 이상을 청소년들이 맡도록 했다”면서 “우리는 판만 만들어주고 기획도 청소년들이 직접 한 거다”라고 소개했다.

특히 그는 제주도문예회관에서 4일 동안 부스 운영을 한 것으로 끝난 게 아니라 이 학생들이 서울 광화문에서 열린 범국민문화제까지 참여했다는 데 주목했다.

그는 “이 학생들에게는 이번 행사에 함께 했던 기억이 평생 이어질 거다”라며 그동안 구호에만 그쳤던 미래세대 계승의 단초를 놓을 수 있었다는 데 큰 의미를 뒀다.

이제는 우리 세대가 할 게 아니라, 아이들이 앞으로 무엇을 할 것인지가 더 중요하다는 얘기였다.

그는 “마침 4월 7일 범국민문화제가 열린 광화문 광장 일대에서 보수단체 회원들이 참여하는 ‘태극기 집회’ 현장을 학생들이 직접 보면서 느낀 게 있지 않겠느냐”면서 “바로 그런 점에서 올해는 소기의 성과를 거뒀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4.3의 역사적 자리매김과 정명(正名) 문제 공론화를 시작하게 된 것도 나름대로 의미 있는 작업이었다.

다만 그는 미 군정 당시 자료들, 특히 최근 몇 년 사이에 기밀에서 해제된 자료 조사가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 아니냐는 기자의 지적에 대해서는 “꼭 필요한 일”이라며 공감을 표시하면서도 일단 “진상조사위원회가 지금 없지 않느냐”며 4.3특별법 개정과 맞물려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는 “특별법 개정안 내용 중에 추가 진상조사 사업이 포함돼 있다”면서 “정부에서 추가 진상조사를 맡아야 하는 이유는 예산 문제도 있지만 바로 ‘공신력’이라는 부분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그는 “4.3평화재단이 만들어진지 벌써 10년이 됐는데 체계적으로 미국 정부의 자료를 조사하러 간 적이 있느냐. 이게 문제라는 거다”라고 지금까지 이 부분에 대한 조사에 손을 놓고 있었던 재단으로 화살을 돌렸다.

그는 올해부터 4.3평화재단에 연구직 직제를 신설하기로 했다는 얘기를 전하면서 “그동안 비밀에서 해제된 자료들이 엄청날 텐데 새로운 걸 찾아보지도 못했다”면서 “이 자료를 찾는 작업은 우선적으로 재단에서 해야 한다고 본다”고 거듭 재단의 역할을 강조했다.

그는 최근 지인으로부터 수고했다는 말과 함께 그 자신을, 그리고 제주민예총을 주연으로 내세우지 않았기 때문에 지난 4월 한 달 동안의 각종 행사가 성공적으로 진행될 수 있었다는 얘기를 듣기도 했다.

실제로 올해는 지금까지 제주민예총이 주관해 오던 거의 모든 일을 모두 기념사업위원회 이름으로, 심지어 해원상생굿도 민예총을 내세우지 않고 많은 단체들 중 하나로 참여한 것도 같은 맥락이었다.

인터뷰를 마치고 ‘이소재(離騷齋)’ 문을 열고 나오면서 시계를 보니 3시간 반이 훌쩍 지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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