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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를 이은 제주4.3과의 관계맺음…그건 ‘운명’
대를 이은 제주4.3과의 관계맺음…그건 ‘운명’
  • 김형훈 기자
  • 승인 2018.05.01 08: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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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주진오 관장

3월 30일부터 6월 10일까지 ‘이젠 우리의 역사’ 특별전 지휘
4.3범국민위 상임 공동대표 참여하는 등 4.3 알리기에 적극
​​​​​​​“연구하는 이들을 제대로 대접해줘야 새로운 연구자 나와”

[미디어제주 김형훈 기자] 동백꽃. 그 꽃은 꽃잎을 흩날리지 않는다. 통째로 ‘툭’하고 떨어진다. 그래서일까. 제주의 아픔을 얘기하는 4.3엔 항상 그 꽃이 등장한다.

화가 강요배의 <동백꽃 지다>는 그래서 더 슬퍼 보인다. <동백꽃 지다>는 제주4.3이 시작되는 시점에서부터 학살의 현장을 그대로 드러내 보인다. 강요배 화백의 붓 터치가 만들어낸 동백꽃 지는 장면은 수만 명의 제주도민들이 스러져간 모습과 닮았다. 제주도민들은 동백꽃처럼 그렇게 ‘툭’하고 목숨을 다했다.

제주4.3 특별전이 열리고 있는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제주를 상징적으로 나타낸 강문석 작가의 작품이 특별전을 보라며 이끄는 것 같다. 미디어제주
제주4.3 특별전이 열리고 있는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제주를 상징적으로 나타낸 강문석 작가의 작품이 특별전을 보라며 이끄는 것 같다. ⓒ미디어제주

올해가 제주4.3 70주년이다. 기념사업회도 만들면서 대대적인 홍보를 하고 있다. 제주4.3을 알리기엔 여전히 부족하지만 제주에 오지 못한 이들이라면 이곳만은 꼭 가봐야 한다. 바로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이다. 지난 3월 30일부터 제주4.3 70주년 기념 특별전 ‘이젠 우리의 역사’를 만날 수 있다. 특별전은 6월 10일까지 진행된다.

# 서울에서 열리는 4.3 특별전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은 서울의 중심인 광화문 일대에 자리를 하고 있다. 수많은 이들이 오가는 곳으로 이번 특별전을 통해 4.3을 알리는 중요한 역할을 해내고 있다. 박물관 앞 잔디광장엔 강문석 작가의 작품이 뭇사람들을 박물관으로 오게 이끈다. 박물관 로비를 통해 곧바로 들어가면 1층 전시실에서 강요배 화가의 <동백꽃 지다>를 영상 처리한 작품을 만나게 된다.

본 전시는 3층 기획전시실에서 진행되고 있다. 시기별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를 일목요연하게 잘 들여다보게 짜였다. 제주4.3을 전혀 모르는 이들에게는 “4.3은 이런 것이다”는 걸 잘 설명해주는 전시이다. 특별전을 해오고 있는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주진오 관장으로부터 특별전과 제주4.3에 대한 진지한 이야기를 듣는 기회가 만들어졌다.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주진오 관장. 제주출신은 아니지만 대를 이어 제주4.3에 관여를 하고 있다. 미디어제주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주진오 관장. 제주출신은 아니지만 대를 이어 제주4.3에 관여를 하고 있다. ⓒ미디어제주

“4.3범국민위원회가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서 특별전을 했으면 좋겠다는 협조를 문체부에 하게 됐죠. 그런 방침이 정해진 상태에서 관장으로 부임하게 됐고, 더욱이 범국민위원회 상임 공동대표였기에 좀 더 의미있게 특별전을 준비할 수 있었던 거죠.”

주진오 관장은 4.3과 인연이 깊다. 역사학자이면서 4.3에 대한 관심도 있었고, 마침 올해 4.3 70주년에 직접 관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더욱이 그는 2016년 9월부터 1년간 안식년으로 제주에 내려와 있으면서 4.3을 보다 깊게 연구를 진행하기도 했다. 그의 부친인 고(故) 주종환 교수는 4.3 50주년 고문을 맡기도 했다. 이래저래 대를 이어서 4.3과 인연을 맺는 셈이 됐다.

“안식년으로 제주에 있으면서 4.3평화공원도 꼼꼼히 둘러보고 여러 군데의 학살터도 직접 보게 됐어요. 더 공부하고 싶어서 4.3 관련 세미나도 열심히 참여를 했는데, 그걸 눈여겨 본 분들이 범국민위원회에 참여를 해달라고 한 겁니다. 돕는다는 심정으로 범국민위 상임공동대표를 맡게 되었고, 제주4.3 관련 일도 하게 됐죠. 그런데 관장으로 와서 전시를 주관하는 입장이 될지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어요. 운명인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는 제주와 아무런 연고도 없다. 그럼에도 4.3을 위해 대를 이으면서 참여한 그야말로 ‘운명’이다.

하지만 제주4.3엔 다양한 시각이 있다. 예전엔 제주4.3을 ‘폭동’이라고 폄하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제주사회에서 일어난 독자적 항거라는 의미를 담아 ‘항쟁’이라고 쓰기도 한다. 여러 시각이 혼재해 있다. 이걸 바라보는 주진오 관장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대한민국역사박물관 3층 기획전시실. 제주4.3 관련 특별전을 만날 수 있다. 6월 1일까지 진행된다. 미디어제주
대한민국역사박물관 3층 기획전시실. 제주4.3 관련 특별전을 만날 수 있다. 6월 10일까지 진행된다. ⓒ미디어제주

# “객관적이고 균형있는 시각으로 전시”

“기본적으로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은 국립박물관입니다. 객관적이고 균형 있는 시각을 지향해야죠. 어느 한쪽의 입장이 아니라 당시 평범한 제주도민들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겁니다. 길고 긴 시간동안 가해자와 피해자가 얽힌 일인데, 그들을 위로하는 게 우리가 해야 할 일입니다.”

제주4.3은 정명(正名)을 하자고 하지만 아직 바른 이름을 얻지 못하고 있다. 그만큼 거기엔 서로 다른 입장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정명도 정명이지만, 우선 제주도내에서 4.3을 제대로 알아가는 작업이 무엇보다 중요하지 않을까. 제주에서 1년의 시간을 보낸 주진오 관장은 도민들의 관심이 우선이라고 내다본다.

“제주도 분들이 그동안 많은 노력을 했습니다. 그래서 4.3이 알려지곤 했고, 세계화를 내세우기도 합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건 제주도민들이 관심을 가지고, 알려는 것에서부터 출발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는 더 이상 보여주기 식의 4.3 알리기는 버릴 것을 주문한다. 세계화를 하자고 하면서 도민들의 관심을 끌어내지 못하는 것과도 맥락을 같이 한다.

“4.3을 말하지만 인력은 부족합니다. 영문자료도 그래요. 진상조사보고서를 영문으로 배포를 했다지만 읽어 본 사람은 몇이나 될까요. (국문으로 된) 진상조사보고서를 읽어본 사람이 많지 않을텐데, 외국사람들이 과연 영문 보고서를 볼까요?”

# 보여주기식 행사는 지양해야

올해는 수백억원을 투입해서 제주4.3 70주년 행사가 진행되고 있다. 수십가지 행사가 열리고 있다. 대개는 기록에 남지 않는 행사여서 아쉬움이 남는다.

“70주년이라면 자료를 축적해야 합니다. 그걸 바탕으로 크고 작은 행사를 할 수 있어야겠죠. 70주년만 하고, 71주년은 하지 않을 건 아니잖아요. 미국문서도 많은데, 우린 극히 일부만 알고 있습니다. 전문 연구자를 미국에 보내 장기적으로 체류시켜서 자료를 확보하고, 아카이빙 작업도 해야 합니다.”

주진오 관장은 제주4.3은 우선 도민들의 관심이 중요하다고 한다. 아울러 연구자를 제대로 대해 줄 것도 당부했다. 미디어제주
주진오 관장은 제주4.3은 우선 도민들의 관심이 중요하다고 한다. 아울러 연구자를 제대로 대해 줄 것도 당부했다. ⓒ미디어제주

따가운 질책이다. 정작 중요한 건 제주4.3은 왜 발생하게 됐고, 대체 미군정은 어느 정도 관여가 돼 있는지를 밝히는 작업도 필요하다. 어찌 보면 제주4.3은 제주도라는 섬에서 일어난 사건이기에 앞서, 냉전시대의 가장 중요한 현대사적인 사건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는 대표적인 역사 교과서 집필자이기도 하다. 그동안 검인정제 하에서 중고교 역사교과서 전부를 대표 집필했고 100% 합격시킨 유일한 역사학자다. 그만큼 객관적으로 서술하려고 애썼기 때문일 것이다. 정권이 바뀌지 않았더라면 역사 교과서는 ‘국정화’라는 틀 안에 갇혔고, 제주4.3도 왜곡됐을 가능성이 무척 농후하다. 그런 면에서 그는 제주4.3의 교과서 구성에도 큰 역할을 했다.

# 4.3은 간직해야 할 역사

“늘 제주도에서는 교과서가 나오고 나서야 4.3이 왜곡 서술되었다고 대응을 했습니다. 이번에는 선제적으로 하자고 제주도교육청에 권고를 했어요. 집필기준에 4.3을 넣어 줄 것을 교육부에 요구하며, 검정교과서 집필자들에게 제대로 써달라고 제주4.3에 대한 샘플원고를 만들어서 적극적으로 대응하라고 했습니다. 현재 그런 작업이 진행되고 있지요.”

주진오 관장이 생각하는 4.3은 가지고 갈 역사이다. 그러면서 그는 제주도민 모두가 공유하는 역사라고 했다.

“제주4.3이 일어났을 때 제주도민들의 외로움이 생각나요. 아무도 도와주지 않았고, 섬에 갇혀 도망도 가지 못했어요. 폭도로 보도되는 상황에서 고립무원의 상태였죠. 외지인으로서 미안함이 들고 제주도민들이 외롭지 않게 해주고 싶은 마음에 범국민위 상임공동대표를 맡게 된 겁니다. 제주4.3은 피해를 입었던 이들만이 아니라 제주도민 전체, 나아가 온 국민이 함께 공유해야 할 역사입니다. 간직해야 할 역사이기도 하고요.”

제주도민의 전체가 공유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제주도민들이 관심을 가지게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그는 제주에서 4.3을 열심히 연구하는 이들을 대접해줘야 한다는 말을 덧붙였다. 연구자들이 제대로 대접을 받아야 새로운 세대의 연구자가 나온다는 말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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