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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군기지는 완공되었는데, 강정은 왜 투쟁하나요?”
“해군기지는 완공되었는데, 강정은 왜 투쟁하나요?”
  • 김은애 기자
  • 승인 2018.04.29 11: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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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를 외치는 뜨거운 마음, 강정을 만나다 <1>

[미디어제주 김은애 기자] 강정마을 및 환경보호단체 및 활동가들이 절실히 외쳐온 해군기지 반대투쟁의 염원은 구럼비 바위의 폭파와 함께 무너져 내렸다. 해군기지는 무탈하게 준공되었고, 현재 미군의 군사시설은 아무런 제재 없이 제주를 드나들고 있다.

이러한 현실을 두고 누군가는 말한다. “강정이 진 싸움”이라고.

이에 강정은 말한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이다”라고.

강정 사람들은 멈추지 않는다. 해군기지로 가는 입구에서 매일 11시에는 평화미사가, 정오에는 강정의 평화를 기원하는 ‘인간띠 잇기’가 펼쳐진다. 평화롭지만 그 누구보다 뜨거운 투쟁의 현장이 일상마다 계속되고 있다.

그래서 물었다. 아직도 강정이 싸우는 이유, 그들이 포기하지 않는 이유. 과연 무엇일까? [편집자주]

 

# 강정은 나의 고향, 육지에서 바다건너 온 멸치

제주의 청량한 산과 바다를 동경해 뭍에서 이주하는 이들은 해마다 늘어난다.

이들 중, 제주와 진정 사랑에 빠져 제주사람이 되는 이가 있는 반면, 섬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육지로 돌아가는 이들도 부지기수다.

기자가 만난 서귀포 강정마을의 멸치활동가는 육지에서 태어났지만 제주를 고향이라 부르는 ‘자칭 제주사람’이다.

강정마을 주민 '멸치활동가'.

그녀가 처음 강정을 방문한 것은 2011년 5월 1일. 노동절을 맞이해 휴가 차 올레길을 걷고자 친구와 제주행 비행기에 올랐다.

강정마을과 인연을 맞게 된 사연은 이처럼 그리 특별하지 않다. 올레길7코스가 좋다는 이야기를 듣고 찾은 곳이 바로 강정이었다. 당시 마을에는 해군기지 건설을 반대하는 깃발과 현수막이 걸려 있었고, 이것이 그녀의 눈에 비친 강정의 첫 모습이었다.

강정마을로 가는 길 곳곳에는 "구럼비야 보고싶다", "구상권을 철회하라" 등의 문구가 적힌 현수막이 있다.

“현수막을 보니 그제야 뉴스를 통해 어디선가 접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던 중, 한 청년이 오더니 인쇄물 한 장을 주면서 ‘안녕하세요, 이 마을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혹시 알고 계시나요?’라고 말을 걸더라고요.”

모르는 젊은 남성이 접근하니 처음에는 다소 거부감이 들었다는 그녀. 하지만 강정마을의 처지를 설명하는 청년의 진지한 눈빛을 보자 도저히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단다.

“간절한 목소리로 호소하는 청년을 보니, 듣지 않고 가버리면 천벌을 받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죠. 덕분에 지금은 사라진 구럼비도 볼 수 있었고, 강정천의 용천샘 등 마을 사람이 아니면 잘 알지 못하는 보물 같은 강정의 역사를 보고 느낄 수 있었어요.”

해군기지로 가는 길, 강정 사람들의 손길이 닿은 각종 조형물을 볼 수 있다.

그로부터 1년 후, 그녀는 2012강정평화대행진에 참여하는 등 직간접적으로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제주도에 여행을 올 때면 무슨 일이 있어도 강정에 꼭 들를 정도로 애정도 깊어졌다.

“그러던 중 세월호 참사가 났어요. 그 날 부터 강정은 그 전과는 또 다른 아픔이 되었죠. 그래서 2015년 초부터는 일부러 강정에 한달에 한번 꼴로 내려가 며칠씩 있다가 오기도 했습니다. 덕분에 2015년부터는 마을 친구들이 먼저 저를 알아보기 시작했고, 행사가 있을 때면 연락 오는 친구들도 생겼어요.”

뉴스에 나오지 않는 이야기를 강정친구들에게 들으며, 마을에 스며들고 싶다는 열망이 더욱 강해졌다는 그녀. 그녀는 희망을 외치며 어둠에 저항하는 이들의 밝은 모습에 매료됐다고 했다.

“아이들을 가르칠 때, ‘평화’를 이야기하기 위해 ‘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차단하는 경우가 많아요. 하지만 강정은 그렇지 않았어요. 어른과 아이 할 것 없이 평화를 위해 ‘해군기지반대’팻말을 들고 투쟁하는 모습이 참 희망차 보였어요. 다른 곳에서는 보지 못했던 방식의 삶을 본 것 같아요. 그래서 결심했죠. 나도 그들처럼 살겠노라고.”

2015년 겨울, 그녀는 강정으로의 이주를 결심한다. 공교롭게도 그녀가 집을 계약한 날은 2016년 2월 26일, 해군기지가 준공된 날이었다.

“저는 고향을 ‘자신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곳’이라고 정의해요. 김포, 서울, 인천, 시흥 등 여러 곳에서 살아봤지만 내가 사는 곳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전혀 몰랐어요. 관심도 없었고요. 그런 의미에서 저는 고향이 없는 사람이었죠. 하지만 지금은 고향이 생겼어요. 언젠가 제가 다른 곳에서 살게 될지라도, 강정은 늘 제 마음을 쓰이게 하는 아픈 손가락일 거예요. 영원히 강정은 제 마음속 고향이 되겠죠.”

모든 군함을 철수시키라는 내용의 플랜카드.

# 구럼비 풍경에 익숙했던 마을 사람들, 펜스가 열리자 엄청난 충격…

그녀가 마을에 정착했을 땐, 이미 공사는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였다. 덕분에 그녀는 해군기지 준공식을 두 눈으로 직접 목격할 수 있었다.

“굳게 닫혀 구럼비 해안을 막았던 펜스가 열리는 날이었어요. 무너진 펜스 뒤 보이는 해군기지의 모습은 마을 사람들에겐 생소한 광경이었겠죠. 어릴 때부터 보고 자란 아름다운 구럼비 해안이 사라진 것을 확인한 마을 사람들의 가슴이 얼마나 아팠을까요. 당시를 떠올리면 지금도 가슴이 먹먹해요.”

떨리는 목소리로 준공식을 회상하던 그녀는 “그날 이후, 마을의 국면이 바뀌게 되었다”라며 기억을 이었다.

“기지 정문에서 공사장으로 들어가는 차량을 막았던 것이 준공식 전의 싸움이었다면, 이제는 다른 방식으로 투쟁해야 하는 시기가 온 거예요. 어떤 방식이 가장 좋을지 우리도 잘 몰라요. 그래서 늘 시도하고, 도전해보고 있죠.”

강정에 걸린 전쟁을 반대한다는 현수막.

강정 사람들은 평화를 주장하는 '투쟁'을 한다고 했다. 투쟁이라는 말의 어감이 강하게 들릴 수 있겠지만, 이들의 싸움은 지극히 평범하고, 평화롭다.

그 예로, 지난 28일 열린 ‘강정 해군기지 반대 싸움, 4000일 문화제’가 그렇다.

"전쟁, 군사기지라는 폭력의 방식에 우리는 굴하지 않을 겁니다. 우리의 투쟁 방식은 폭력이 아니에요. 함께 웃으며 평화를 목청껏 부르는 문화제가 우리의 무기예요. 스스로 즐거워야 오래 버틸 수 있잖아요. 강정의 평화를 되찾기 위해 기꺼이, 지치지 않고 싸우고자 합니다."

 

# 강정은 4∙3이다

누군가는 말한다. 다 끝난 싸움 아니냐고. 9년간 저항해온 강정 사람들의 목소리는 결국 닿지 않았고, 그 증거가 바로 무사히 완공된 해군기지라고.

“평화로운 마을에 군사기지가 들어온다는 것. 그로 인해 발생할 여러 문제를 이유로 싸워온 과거였어요. 그런데 정말 기지가 들어왔으니 이제부터 진짜 시작인 거죠. 해군기지가 완공됐다고 목소리를 내길 포기하거나, 마을을 떠나는 게 더 이상한 거예요.”

그녀는 ‘해군기지가 생겼으니 이제 그만할 때가 됐다’는 인식이야 말로 해군기지를 찬성하는 이들이 바라는 것이라고 했다.

“싸움에서 졌다는 패배주의를 심으려는 움직임이죠. 펜스가 열리고, 모두가 당황했던 그때부터 투쟁은 또다시 시작된 것으로 생각합니다.”

강정은 서귀포 일대에서 4∙3 희생자가 많이 발생한 지역 중 하나다. 어쩌면 강정 사람들에게 ‘전쟁’ 혹은 ‘군사’, ‘군대’ 등의 단어는 피하고 싶은 두려움의 대상일지도 모른다.

“평화에 대한 이미지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강정에 사는 우리들은 말해요. 강정은 4∙3이다. 자주독립과 민족평화를 외쳤던 4∙3의 정신이 지금 여기, 강정에도 깃들어 있어요.”

강정으로 가는 길, "강정은 4∙3이다"라고 적힌 현수막이 있다.

지난 11년 동안의 싸움으로 강정 사람들은 많은 것을 잃었다. 아이들이 뛰놀던 구럼비 해안을 잃었고, 긴 세월 함께한 마을의 터줏대감 구럼비 바위를 잃었다. 강정 앞바다에는 미군 군함이 드나들고, 온갖 쓰레기와 오물을 마을에 버린다.

“우리는 싸움에서 졌으니까, 다 잃은 거라고 보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절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강정에서 우리가 만났고, 함께 싸웠으며, 그 어떤 권력으로도 빼앗아 갈 수 없는 끈끈한 동료이자 친구를 얻었으니까요. 강정친구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

4월 29일, 해군기지반대대책위원회 결성 4000일을 기념하는 조형물.

4월 29일은 강정에 해군기지 건설을 반대하는 대책위원회가 결성된 지 4000일이 되는 날이다. 강정 사람들이 그토록 바라는 ‘평화’가 어서 강정에 깃들기를 바라지만, 혹여 그날이 조금 늦게 오더라도 5000일, 6000일… 강정 사람들은 끝없이 외칠 것이다.

“강정은 4∙3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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