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과 계권
인권과 계권
  • 홍기확
  • 승인 2018.04.17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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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아빠의 특별한 감동]<156> 인권(人權)과 계권(鷄權).

사람과 닭의 품격을 이야기 해본다.

양계장에는 밤이 짧다. 아니, 거의 없다. 더 많은 계란을 얻기 위해 밤에 조명등을 켜서 밤을 짧게 만들기 때문이다. 닭들은 낮인 것처럼 착각을 해서 24시간 이전에 달걀을 낳는다. 닭들의 하루는 12시간이다. 바쁘다.

이런 조작된 환경에, 그에 따른 신체 변화에 닭들의 스트레스는 이만저만이 아니다. 분노한다. 닭의 권리가 유린된다. 이런 화와 분노는 옆의 닭에게 옮겨진다. 서로 싸우며 쪼아 스트레스를 해소한다. 이를 위해 양계장 주인은 닭들의 부리를 잘라버린다.

더 막 가자면 우리는 보통 무정란을 먹는다. 수탉과 암탉이 교배해서 낳는 알이 유정란이다. 하지만 유정란은 교배 시간이 걸리고, 수탉은 사료도 많이 먹는다. 그래서 닭장에는 수탉이 없다. 따라서 우리가 먹는 무정란은 소위 감옥, 케이지(cage)에 갇힌 암탉들이 낮과 밤만 구별하며 낳는 무정란이다.

암탉은 단순한 달걀 생산자다. 영혼이 없다. 계란을 위한 숙주에 불과하다. 쳇바퀴 돌아가듯 닭장에서 삶을 ‘소비’한다. 닭으로써 품격은 없다. 적어도 닭장 밖에서 그들을 보는 내 입장은 그렇다.

그럼 인간으로 돌아가 보자. 인권(人權)의 정의가 뭘까?

사전적 정의로는 ‘사람으로서 당연히 누려야 할, 인간답게 살 권리.’로 되어 있다.

닭장의 닭과 지구의 인간을 비교하면 인권, 다시 말해 인간답게 살 권리가 도출된다.

인권의 조건 첫 번째, 밤에 자고 낮에 일한다.

인간이 낮에 일하고, 밤에도 일하거나 활동하는 게 보편적이게 된 건 역사가 짧다. 최초 인류의 등장이 300만 년 전이라고 보자. 전기가 발견되고, 에디슨이 백열전구를 발명해 장사를 해서 밤에도 일하게 한 게 1879년이니 고작 200년도 되지 않았다. 즉, 밤에 인간이 활동하게 된 건 인류 역사의 0.00005% 밖에 차지하지 않는다.

엄마나 선생님들이 우리가 어릴 적 하던 얘기가 있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야 착한 어린이라고. 하지만 우리는 과연 지금까지 착한 어린이로, 착한 어른으로 살고 있는가?

인권의 조건 두 번째, 가족과 함께 한다.

저녁이 있는 삶도 좋고, 워라밸(일과 가정의 균형, work and life balance)도 좋다. 그리고 더하여 가족과 함께 하는 것은 더 좋다.

우리는 흔히 가족에 대해 많이 알고 있다는 편견을 지니고 있다. 다시 말한다. 편견이다. 근로시간이 늘어나고 있다. 하루 8시간 노동은 천국이고, 10시간은 평균이며, 12시간은 현실이다. 근로시간이 10시간이 넘어서는 아침, 혹은 저녁을 가족과 함께 하지 못하며, 12시간이 넘어서는 도무지 가족과 함께할 수가 없다.

결국 우리는 직장 동료보다 가족들을 더 모른다. 이렇게 되니 은퇴해서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면 낯섦의 순간을 경험한다. 할 얘기도 없고, 함께 할 것도 없으며, 같이 해 주지도 않는다. 돌아왔을 때 식구들은 이미 각자의 삶을 영위하고 있다.

이처럼 인간답게 사는 방법은 간단하다. 양계장의 닭을 생각하며 계권을 논의하고 그로 미루어 인권을 생각해 보는 것이다. 그리고 어렸을 적 배웠던 쉬운 윤리들을 떠올려 보는 것이다.

며칠 전 서울에 자격증 시험을 보러 올라갔다가 시험이 끝나고 친구들과 만나서 술잔을 기울였다.(많이 기울였다. 10시간 동안.)

한 친구는 만나자 마자 준비했다는 듯 고민을 털어놓는다.

“열심히 살아. 뭔가 열심히는 사는데, 죽어라고 사는 데 그냥 열심히만 사는 것 같아. 나아지는 게 없어.”

나는 반응만 했다. 10시간 동안 반응과 대꾸만 했다. 그러다 다른 친구가 분노한다.

“너는 도대체 생각이 뭐야! 왜 듣기만 하고 의견을 말 안 해!”

10시간 만에 대답을 하고 싶었다. 막 대답을 하려는 데 친구들이 취해서 이제 집에 가자고 했다. 오히려 다행이다 싶었다. 친구 둘 다 사장, 원장으로 조그만 사업을 하지만 자금이나 임대료, 고객 관리 등 하루가 부족한 듯 보였다. 틈새나 여유가 없어 보였다. 이런 상황에서 내 가치관을 밝히면 역풍을 맞을 듯 했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월든 호숫가에 오두막을 짓고 2년 2개월 동안 자급자족하며 홀로 살았다. 그 체험의 결과물이 수상집 ≪월든≫이다. 월든의 한 구절. 이 말이 내가 하고 싶은 대답이었다.

‘왜 우리는 이처럼 바쁘게 살며 삶을 허비해야 하는가? 마치 굶주리기도 전에 굶어죽겠다고 결심한 꼴이다. 우리는 제때의 한 바늘이 나중에 아홉 바늘을 던다고 말하면서도 내일 아홉 번 바느질하는 수고를 덜려고 오늘 1000바늘을 꿰매고 있다. 우리는 일을 한다고 늘 바쁘지만 막상 중요한 일은 하나도 없다.’

친구 녀석들. 잠이 부족하다. 잠이 부족하니 날이 선다. 피곤하니 술을 먹는다. 열심히 일하느라 가족들과 함께 할 시간도 부족하다.

해결책은 나왔다.

첫째,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난다. 체력이 국력이다. 세상과 전쟁을 하려 해도 무기가 있어야 한다. 평범한 소시민(小市民)은 몸뚱이가 무기다. 잠을 잘 자야 한다. 바보 같은 논리지만, 이른바 스스로 잠이 많다고 말하는 사람 중에 나쁜 사람 못 봤다.(봤다손 치더라도, 못 본 척 할 테다.)

둘째, 열심히 일하느라 가족들과 함께 할 시간이 부족한 것은 고민의 개수를 줄여야 한다. 고민이 많은 건 감당 못할 만큼 일을 벌이기 때문이다. 일을 벌이더라도 감당할 정도로만 해도 충분하다. 이도 저도 안 돼는 것 보다는, 이것 정도는 되게만 살아도 충분하다. 자녀들에게 더 나은 삶을 위해 개처럼 벌어서 정승처럼 물려 주기에는 미래가 그다지 만만치 않다. 이 시대 최고의 지성, 유발 하리리의 ≪사피엔스≫의 한 구절을 보자.

‘현대의 혁명이라고 하면 우리는 1789년(프랑스 혁명), 1848년(유럽의 연쇄적 민주화 혁명), 혹은 1917년(러시아 혁명)을 생각하는 경향이 있지만, 정확히 말하자면 오늘날은 모든 해가 혁명적이다.’

위 표현으로 보면 우리가 자녀의 세대까지 예측하는 것은 무의미하지 않을까? 이런 고민쯤은 인공지능과 로봇, 가상현실 등 4차 산업시대의 폭풍에서 살아갈 자식의 몫으로 남겨 뒀으면 좋겠다. 조금 덜 고민하고, 조금 덜 열심히 일했으면 좋겠다.

우문현답(愚問賢答)이라는 게 이런 식이다.

친구들의 ‘네 생각은 뭔데?’에, 단순하지만 쏠쏠한 솔루션을 제공해본다.

내 대답은 이래.

닭장 속에는 암탉이~ 꼬꾜~

지구 안에는 인간이~ 인권~

사람답게, 사람처럼 살자.

 


 

평범한 아빠의 특별한 감동

홍기확 칼럼니스트

2004~2005 : (주)빙그레 근무
2006~2007 : 경기도 파주시 근무
2008~2009 : 경기도 고양시 근무
2010 : 국방부 근무
2010년 8월 : 제주도 정착
2010~현재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근무
수필가(현대문예 등단, 2013년)
서귀포시청 공무원 밴드 『메아리』회장 (악기 : 드럼)
저서 : 『평범한 아빠의 특별한 감동』, 201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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