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3-29 13:40 (금)
적당히 삽시다
적당히 삽시다
  • 홍기확
  • 승인 2018.03.21 16: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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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아빠의 특별한 감동]<155>

입에 바쁘다는 말을 달고 사는 사람은 자신을 놓친 것뿐이지 바쁘지 않다. 세상이 빠르게 돌아가는 것 같지만 그다지 빠르지 않다. 빠르게 보고 싶기 때문에 빠르고 어지러운 것이다.

적당히 살자.

육상 트랙에서 달리고 있는 사람은 같이 달리는 사람만 보인다. 임신했을 때는 길가에 임산부만 보인다. 아이가 조금 자라 유모차에 태울 때는 공원에 온통 유모차만 보이는 것과 마찬가지다.

출퇴근 시간을 보면 모든 국민들이 일하러 가는 것 같지만, 임금근로자는 1,544만 명이다. 대한민국 인구 5,125만 명의 30% 밖에 되지 않는다.

사람들은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골라 본다.

화려한 프로야구 선수를 보자. 중학교에서 야구를 하다 고등학교에 진학할 확률은 60%가량 된다. 고등학교 야구부가 중학교보다 더 적기 때문이다. 이중 고교선수가 프로야구단에 지명될 확률은 대략 19% 내외다.

물론 여기서 경쟁은 끝나지 않는다. 프로야구단에는 대략 200명 내외의 선수들이 있으며 1군인 주전 25명에 들어갈 확률은 8%다. 결론적으로 매해 1,000명의 중학생 야구부 선수들이 배출된다면 프로에서 주전으로 뛸 인원은 9명, 확률로는 0.9%다. 프로축구의 경우도 비슷한데 0.8%라고 한다.

그럼 야구를 포기한 99.1%는 패배자일까? 아닐 것이다. 이 길이 아니다 싶으면 접는 것이다. 그 과정이 고통일 수 있고, 아쉬울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생각해보라. 길을 걷다가 이 길이 아니다 싶을 때가 있다. 길의 중간쯤에서 생각했을 것이다. 계속 가기에는 힘들고, 돌아가기에는 멀고. 그렇다고 마냥 서 있을 수는 없다. 계속 가거나, 돌아가거나, 아니면 새로운 길을 개척하면 된다. 그게 인생(人生)이라는 것이고, 길을 걷는다는 것이다. 이정표 따위는 없다.

매일 1%씩 발전하면 1년 후에는 어떻게 될까? 1.01 =37.8이니 38배 정도로 성장하게 된다. 반면 매일 1%씩 후퇴하면 1년 후에는 어떻게 될까? 0.99 =0.03이니 100중에서 97을 잃고 고작 3만 남게 된다. 그래서 뭐?! 하루하루 꾸준히 노력하고 발전하면 된다? 자기개발서 작가 및 간간이 전설처럼 들려오는 개천에서 용 된 일부 사람들의 근본적인 논리일 뿐이다.

미래의 불확실한 행복을 담보로, 현재의 확실한 행복을 희생하는 것의 대표사례가 대출이다. 대출은 갚아야 한다. 금방 갚을 것 같지만, 현재의 과도한 대출은 미래에도 여전히 빚으로 남아 갚기 어렵다. 빌려보면 안다. 빌려주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달리라, 달리라! 그러면? 우리네 엄마들이 우리네 어렸을 적 항상 얘기하던 것이 있다.

‘빨리 달리지마. 그러다 넘어질라!’

엄마 말을 안 듣는 건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적당히 살자.

최근 행복의 ‘크기’보다, 행복의 ‘빈도’가 중요하다는 것이 대세다. 이른바 일본의 ‘소확행(小確幸)’이라는 개념이다. 작지만 소소한 행복을 자주 찾는다는 것이다.

집에 돌아왔을 때의 온기에서, 빵을 찢을 때 느끼는 풍성함에서, 아침에 일어났을 때 눈부신 햇살에서 작은 행복들을 ‘발견’하는 것과 같은 작지만 잦은 행복이 삶에서 필요하다는 것이다.

큰 행복이든 작은 행복이든 어차피 사라진다. 매일, 매시간, 매순간 행복할 수는 없다. 곰돌이 푸우의 말을 빌려보자.

‘매일 행복하지는 않지만, 행복한 일은 매일 있다니까.’

적당히 살아도 괜찮다.

예전에는 20대까지 공부하고 60대까지 일하며, 나머지 20년을 그간 번 돈 으로 살았다. 미래의 20년을 위해 60년을 참았고, 노력했다.

하지만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이 있다. 삶이 바뀌었다.

20대까지 공부하면 안 된다. 세상이 금세 바뀌니까.

60대까지 일하지 못한다. 70대 이상까지 일해야 한다. 일할 사람이 없다. 한국의 경우 2017년 기준으로 이미 60대 이상의 경제활동인구가 20대를 추월했으니까. 게다가 최근은 100세 시대다! 놀면서 40년은 너무나 길다.

게다가 그간 번 돈으로 남은 40년을 살 수도 없다. 앞으로 우리 자식들은 1명당 60대 이상 노인 1명을 부양해야 한다. 그게 부모든 남이든 말이다. 게다가 효도라는 개념은 희석되고 있고, ‘자식농사’는 망친 지 오래다. 오히려 캥거루처럼 늙은 부모에게 기대지나 않으면 쌩큐다.

그래서 이제 남은 건 뭐? 적당히 달리고 적당히 일하면서, 적당히 사는 것이다. 자식 몇에 올인, 한 직장에 올인은 끝났다.

적당히 살아도 좋은 걸까? 그리고 어떻게 사는 게 적당히 사는 걸까?

해답은 있지만 정답은 없다.

하지만 해답에 딱 적용되는 공식은 없다. 풀이과정도 제각각이다.

다만 해답을 위한 힌트는 있다.

일 년에 며칠. 하루에 잠깐.

방학이 있나요?

방학이 있다면, 오롯이 즐기나요?

오롯이 즐기기 위한 나만의 방법이 있나요?

어제 저녁. 회사에서 정년퇴임을 했다.

이제 영원한 방학이다.

방학이 되었지만, 즐길 수 없다.

즐길 수 있는 취미도, 다룰 줄 아는 악기도, 놀아줄 친구도 없다.

가장 중요한 부분은 어떻게 놀아야 할 줄 모른다는 것이다.

치열하게 현재를 살면, 미래에 주어질 방학이 기쁠 줄 알았는데!

40년이나 되는 방학이, 40년이나 남았다.

작지만 확실한 행복의 소확행(小確幸), 바쁜 와중에도 한가로움을 즐기는 망중한(忙中閑). 시간도 비용도 많이 필요치 않다.

적당(適當)히 사는 건 대충 사는 것이 아니다. 사전을 찾아보라.

1. 정도에 알맞다. 예문) 자신에게 적당한 일을 찾다.

2. 엇비슷하게 요령이 있다. 예문) 그는 친구들에게 적당하게 둘러대고 자리를 떠났다.

나의 모범 예문은 이렇다.

적당히 삽시다.

 

 


 

평범한 아빠의 특별한 감동

홍기확 칼럼니스트

2004~2005 : (주)빙그레 근무
2006~2007 : 경기도 파주시 근무
2008~2009 : 경기도 고양시 근무
2010 : 국방부 근무
2010년 8월 : 제주도 정착
2010~현재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근무
수필가(현대문예 등단, 2013년)
서귀포시청 공무원 밴드 『메아리』회장 (악기 : 드럼)
저서 : 『평범한 아빠의 특별한 감동』, 201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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