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시대에나 가장 활기찬 예술 영역은 ‘청춘’
어느 시대에나 가장 활기찬 예술 영역은 ‘청춘’
  • 김명숙
  • 승인 2018.03.02 12: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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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처방전] <5> 밤섬 해적단 서울 불바다

“나는 ★★ ★★ 젊은 인디뮤지션/아무데서 술을 먹고 퍼질러 자네/나는 ★★ ★★ 멋진 이십대 청춘/아무데나 쓰레기를 갖다 버리네/아름다운 청춘이여 캠퍼스의 낭만이여/아름다운 젊음이여 이십대의 낭만이여”

2인조 밴드 ‘밤섬 해적단“의 노래 가사다. 이 노래의 제목은 <나는 ★★ ★★ 젊다>. 땡땡은 바로 요즘 청소년들의 대화에 빠지지 않고 들어가는 추임새 욕, 바로 ★★ ★★ 이다. 이들은 2010년 1집 <서울 불바다>를 발매했는데 이 앨범에는 1분에서 3분 내외의 43곡이 들어 있다. 주의 깊게 듣지 않으면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를 정도로 가사는 빠르게 지나가고 드럼과 베이스로만 구성된 헤비메탈한 연주에 단말마 같은 외침만이 들린다. 이렇게 빠르게 휘몰아치는 연주 방식에 소리만 뭉개져 들리는 음악 스타일을 뭐라고 해야 할까. 머리와 꼬리도 없이 바로 본론에 진입하여 쿵쾅거리다 쾅하고 끝. 낯설고 기이한 이들 앨범의 전곡은 유투브에 공개되어 있고 가사도 첨부되어 있다. 가사를 열고 음악을 플레이시키면 아, 이런 노래구나 하고 감상이 가능하다. 그라인드코어(grind core)를 지향하는 밤섬해적단의 가사들은 하나 같이 도발적이다.

노래 제목만 일별하자면 <내 마음이 ★★ ★★ 자랑스러워>, <이명박을 욕하면 나도 무려 좌파>, <북괴의 지령>, <김정일 만세>, <전우들과 함께라면 어떤 ★★것이든> 등이다. 예외 없이 조롱과 슬랭(slang, 속어)이 넘쳐난다. <백범살인일지>는 우리가 아는 바로 백범 김구 선생을 희화한 노래다. 가사 후렴구가 “김구 짱! 김구 짱! 김구 짱!(feat 이승만 ★★)”이다. 김구, 이승만뿐만 아니라 박정희, 이명박, 전두환, 김대중, 히틀러가 동급으로 소환된다. <김정일 만세>라는 노래는 “김정일 만세! 만세! 만만세!” 이렇게 시작한다. 아니, 북괴를 대놓고 찬양하다니! 이렇게 흥분하고 있는데, 다음 가사가 코미디다. “1944년에 태어난 작곡가 김정일의 호는 예산이며 가수 김상아의 아버지이다!”

<북괴의 지령>이라는 노래의 가사 전문이다. “북괴의 지령이 내려졌다!/복지예산 확충하라!/북괴의 지령이 내려졌다!/노동 3권 보장하라!/북괴의 지령이 내려졌다!/등록금을 인하하라!/북괴의 지령이 내려졌다!/민주당에 투표하라!/김정일 장군 만만세!/김일성 수령 만만세!/주체사상 만만세!/공산당이 좋아요!/북괴의 지령이 내려졌다!/부동산 투기를 억제하라!/북괴의 지령이 내려졌다!/부정부패 척결하라!/북괴의 지령이 내려졌다!/구멍가게를 이용하라!/북괴의 지령이 내려졌다!/김대중을 추모하라!” 여기서 장군과 수령이라고 했으니, 북한의 김일성 부자가 맞는 것 같다.

<북괴의 지령>은 한국 사회의 금기인 북한에 대해 마음껏 조롱하는 동시에 남북이 처한 상호 모순적 상황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곡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밤섬 해적단은 ‘밤섬에서 경제와 자본의 중심지인 여의도를 습격하겠다’는 포부를 담은 밴드명이다. ‘서울 불바다’는 1994년 북한측 대표 박영수가 남측 대표단과 설전을 오고가는 자리에서 뱉은 말인데, 이후 남북한이 군사적 대치가 극에 달할 때마다 떠올리는 관용어다. 지난해 8월 개봉된 다큐멘터리 영화 <밤섬해적단 서울불바다>를 접한 시점과 평창 동계올림픽 남북한 하키 단일팀 발표를 두고 SNS를 들끓었던 2030세대의 문제제기 시기와 겹친 것은 우연이라면 우연이겠다. 이를 놀라움 속에서 지켜본 필자에겐 이 괴짜 밴드의 활동 하나하나가 심상치 않게 다가왔다.

영화 자체는 인디 신에 문외한인 사람도 2시간의 런닝타임을 즐길 수 있을 정도로 재미있다. 감독은 이들의 노래에 집중하기보다 공연과 공연이 이루어지는 사이에 벌어지는 진행 과정에 상당한 관심을 쏟는다. 또 이들이 무대에 오르기 전에 어떤 생각으로 라이브에 임하는지 왜 음악을 하는지에 대해 인터뷰를 이어나간다. 인터뷰로 무거워질 때면 밤섬해적단의 치기어린 퍼포먼스와 거침없는 농담이 담긴 뮤직비디오 클립(video clip)으로 메꿔나간다. 예를 들면 북한 관영매체의 선전 영상과 같은 방식으로 “김정일 만세 만만세”와 같은 타이포그래피가 사정없이 내리꽂힌다. 관객들의 말초적인 흥미를 이끌어내는 영상 테크닉 덕분에 두서없는 20대 청년들의 혼잣말 같은 인터뷰도 낄낄거리며 감상할 수 있다.

이 영화는 제목 그대로 밤섬해적단이 앨범 <서울불바다>를 내놓고 활동을 이어가던 시기를 관찰한 다큐멘터리다. 2011년에서 2012년 사이의 사건이 주를 이루지만 영화 개봉이 2017년에야 이루어진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2012년 데뷔앨범의 프로듀서인 박정근이 북한의 트위터인 ‘우리 민족끼리’를 리트위했다는 이유로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되는 사건이 발생된다. 박정근을 위해 증인으로 법정에 선 밤섬해적단의 드러머는 그동안의 자신들의 작업이 농담이었음을 변호해야 했다. 감독은 박정근의 구속으로 국가보안법 폐지라는 해묵은 논쟁까지 재점화되는 과정을 묵묵히 보여준다. 여느 다큐멘터리처럼 표현과 자유를 옥죄는 사회에 대한 직접적인 내레이션은 없지만 <밤섬 해적단 서울불바다>가 보여주는 국가 폭력의 그림자는 선명하다. 이후 밤섬 해적단은 해체했다.

국가보안법이라는 낡은 프레임을 들이대니 이들이 추구했던 거대한 농담도 시들해진 것일 것이다. 어느 시대에나 한 사회의 가장 새롭고 활기있는 예술의 영역은 청춘의 영역이었다. 한국에서 살아가는 청년들이 느낄만한 부조리를 자신들만의 표현으로 뭉쳐놓은 밤섬해적단의 노래는 영화와 함께 끝났다. 21세기 가장 돌출적 존재 ‘북한’을 재미난 장난감처럼 가지고 노는 밤섬해적단을 더 이상 볼 수 없다니, 정말 웃기고 슬픈 일이다.

 

김명숙 칼럼

김명숙 칼럼니스트

충북 단양 출신
한양대 국문과 졸업
성미산공동체 '저해모(저녁해먹는모임)' 회원
성미산공동체 성미산택껸도장 이사
나무발전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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