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사회통합의 리더십을 선택하자”
“제주 사회통합의 리더십을 선택하자”
  • 미디어제주
  • 승인 2018.02.14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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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3 지사 선택에 제주 운명이 달려 있다> (2)

“제주가 봉착해 있는 정치적 분열상황, 경제적 정체국면,
사회적 갈등을 돌파할 자질을 갖춘 사람을 선택해야 한다”
고운호 전 한국은행 제주본부장
고운호 전 한국은행 제주본부장

# 공동체의 분열 위기에 빠진 우리 사회

우리나라는 간난(艱難)의 세월 동안 크고 작은 고비를 슬기롭게 극복해 세계 최빈국에서 세계 10대 경제강국으로 발돋음했다. 한국적 산업혁명과 민주혁명의 결과 채 100년도 안 된 대한민국이 선진국 대열의 초입에 들어선 것이다. 세계사에서 유례를 찾기 어려운 기적적 성취를 이루었지만 우리가 가야할 길은 아득하고 아직 멀기만 하다.

우리 경제는 1970~1980년대에는 줄곧 10% 성장을 넘나들었다. 그러나 1998년 외환위기를 고비로 성장률은 급전직하해 2000년대 평균 성장률은 4%대로 떨어졌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에는 줄곧 3%대 이하의 저성장을 이어가고 있다. 전례없는 저성장, 저출산 고령화, 리더십과 시민의식의 결핍 현상이 한꺼번에 덮치며 성장 스토리와 선진 복지사회로의 이행 꿈이 막을 내리고 있다.

성장지상주의에 매몰돼 있는 동안 우리 사회는 놓친 것이 많았다. 시민들의 삶은 팍팍하며 미래는 불확실하다. 불만과 불신이 극에 달해 나라를 지옥에 빗대는 '헬(hell) 조선'이란 자조적인 표현이 많은 공감을 샀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34개 회원국을 비교한 지표에는 한국이 노동시간 2위, 산재사망률 1위, 자살률 1위, 노인 빈곤율 1위, 국민행복지수 33위, 출산율은 꼴찌로 나타났다. 또 미국 여론조사기관의 ‘삶의 질 지수’는 조사 대상 135개국 중 한국이 75위를 기록했으며 이는 필리핀(40위)·인도(71위)·이라크(73위)보다 낮은 수준이다.

이처럼 부의 편중으로 인한 극심한 빈부격차와 기회 불균등의 심화에 따른 사회 공동체 분열 위기는 방치할 수 없는 수위에 이르렀다. 반복되는 재난·안전사고는 우리 사회의 신뢰를 무너뜨리며 갈등의 골을 점점 깊게 만든다. 여기에 정치판은 온갖 루머와 거짓말과 협잡이 난무하며 우리 사회를 더욱 저급한 세계로 전락시키고 있다. ‘남은 어찌 됐든 내 잇속이 우선이고 내게 피해가 되는 일은 털끝만큼도 용납할 수 없다’는 개인주의와 이기주의로 점철된 각자도생 풍조가 만연해지는 이유다.

이러한 결과 대한민국 국민은 끝없이 부딪치며 갈등과 분란의 늪에 빠져들고 있다. 단일 민족국가인 대한민국이 하나가 아닌 기이한 여러 모습으로 변모하고 있다. 대화의 문을 걸어 닫은 채 둘, 셋으로 갈려 서로가 이를 악물고 서로를 증오하고 있다. 같은 하늘 아래 사는 국민이라고 말하기도 부끄러울 정도다. 거기엔 타협이나 양보의 여지가 없다. 모두가 '보고 싶은 것' 유혹에 빠져 '함께 봐야 할 것'을 외면하며 무조건 상대를 배척하고 있다. 상대 잘못은 확대하고 업적은 무조건 지워버리려 한다.

국민 이익을 위해 '배제의 정치'를 타파하고 '공존의 정치'를 실현할 길을 함께 찾아야 할 정치인들이 불구대천 원수 대하듯 서로 굴복시키려는 모습에는 아연실색할 따름이다. 어느 한 쟁점에서도 국론을 제대로 모으질 못하고 있음은 당연한 귀결이다. 대한민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갈등과 분란은 그 정도가 너무 심각해 어떤 트라우마 같은 것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을 정도다. 결국에는 서로에 대한 험한 꼴이 부메랑 되어 바로 자신들에게 돌아오고 있다.

밀양 송전탑과 강정해군기지 건설에서 보듯이 사회적 신뢰부족은 거래비용의 증가와 천문학적인 사회적 갈등조정 비용을 치루게 한다. 이런 상황에서는 외환위기와 같은 난관이 또 닥쳤을 때 우리 국민이 금 모으기 운동 같은 애국심을 다시 발휘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사회적 자본의 핵심인 사회적 신뢰가 쌓여야만 이러한 비효율을 해결해 우리가 선진국으로 진입할 수 있다. 공자는 백성의 신뢰가 없으면 국가의 존립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했다. 미국의 정치철학자 프랜시스 후쿠야마 교수는 한 국가의 경쟁력은 한 사회가 고유하게 지니고 있는 신뢰의 수준에 따라 결정된다고 했다. 사회적 통합의 토대가 되는 신뢰가 국가 경쟁력 확보의 첩경이 된다는 의미이다. 건전한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체제가 발전하기 위해선 사회구성원 사이의 신뢰가 바탕이 되어야 하며 사회적 신뢰가 클수록 경제활동의 거래비용이 줄어듦으로써 경제의 효율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향후 우리가 선진국 문턱을 넘어서기 위한 발판 마련도 정직과 신뢰라는 사회적 자본(social capital)의 지속적 확충 여부에 달렸다. 사회적 자본이란 사람들이 공동의 목표를 효율적으로 달성하도록 만드는 상호 신뢰와 협력, 소통 네트워크 등을 일컫는다. 평소 경쟁하며 사익을 추구하더라도, 공동의 선을 위해 필요할 때는 믿고 양보하며 협동하는 능력이다.

노동과 자본 등 생산요소의 양적 증가가 과거처럼 수월하지 않는 상황에서 상호간의 신뢰를 핵심요소로 하는 사회적 자본은 경제 전반의 고비용 구조를 완화해 성장력을 높일 수 있다. 이처럼 사회적 신뢰는 물적 자본, 인적 자본과 함께 사회를 발전시키고 구성원을 행복하게 만드는 제3의 자본이 되고 있다. 세계은행은 사회적 신뢰도가 10% 상승할 때 경제성장률은 0.8% 상승한다고 보고 있다.

외환위기의 극복 과정에서 우리 국민이 보여준 한국의 사회적 자본은 세계를 감동시켰다. 국가부도 위기 앞에서 난동과 방화로 저항하는 유럽 국민의 모습과는 달리 우리 국민은 폭발적인 공동체 에너지를 내뿜으며 장롱 속 금붙이까지 꺼내 모았다. 하지만 지금은 이런 긍정의 에너지는 거의 다 무너져 내리고 그 자리에는 불신과 불통, 반목과 갈등이 새로이 똬리를 틀고 있다.

우리 사회의 분열 위기는 갈등 지수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한국의 갈등지수는 수천 년간 종교와 인종 갈등을 겪어온 터키 다음으로 높은 수준이다. 삼성경제연구소가 조사한 결과 2010년 우리나라 사회갈등지수는 0.72로, 종교적 갈등이 심한 터키에 이어 OECD 두 번째로 갈등이 심했다. 2009년엔 4위였으니 한국 사회의 갈등은 날이 갈수록 더 심해지고 있는 셈이다. 이로 인해 우리 사회가 치르는 비용만 연간 82조~246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한 해 예산에 육박하는 돈이다.

우리의 갈등을 10%만 낮춰도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1.8~5.4% 높아지고, OECD 평균 수준으로만 개선돼도 7~21% 증가하는 효과를 볼 수 있다고 한다. OECD 국가 중 사회갈등지수가 가장 낮은 네덜란드와 독일이 노사 대타협을 통해 글로벌 금융위기 와중에도 탄탄한 경제 성장을 일궈낸 사실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하겠다.

이러한 갈등 기조의 고착화는 우리 사회의 통합에도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는 OECD가 조사한 세계 각국의 사회적 네트워크에 대한 인식 결과에서도 잘 드러난다. ‘당신이 곤경에 처하면 언제든 당신을 도와주리라고 꼽을 수 있는 친척이나 친구들이 있는가’ 라는 질문에, 이스라엘인들은 98%, 아일랜드인들은 96%, 영국인들은 95%, 미국과 일본인은 OECD 평균과 같은 90%가 그렇다고 답했다. 한국인 중 그렇다는 대답은 77%에 그쳤다. 터키(73%)와 멕시코(76%)를 빼면 조사 대상 36개국 중 꼴찌 수준이다. 이러한 낮은 사회적 관계가 사회통합의 걸림돌이 되고 있음은 너무나 자명하다.

2014년 OECD조사에 따르면 한국 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는 34%로 조사대상 41개국 가운데 중하위권인 26위에 머물렀다. 이는 OECD 평균 41.8%보다 낮다. 통계청의 ‘한국의 사회동향 2013’에서도 ‘당신은 일반적으로 사람들을 신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22%만 대체로 또는 항상 신뢰한다고 답했다. 총체적 불신 사회인 한국의 우울한 모습을 보여주는 충격적 단면들이다.

우리 사회가 어쩌다 이 지경에 이른 것일까. 무엇보다 사회 지도층의 책임이 크지만 사회적 신뢰의 부재가 힘 있는 자들만의 고질병은 아니다. 우리의 일상에서도 신뢰라는 마음의 습관이 태부족해 거짓말이 범람한다. 거짓말이 범죄로 연결된다는 것을 인식하지 않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거짓말 범죄라 할 수 있는 사기·무고·위증 사범 발생률이 일본보다 수십 배에서 수천 배까지 높은 게 단적인 사례다.

조선시대에는 산송(山訟)이라는 묘지소송이 거의 매일 발생했다. 정약용은 목민심서에서 살인사건의 절반 이상 원인이 묘지분쟁 때문이고, 영조도 임금에게 올라오는 상소의 십중팔구가 묘지분쟁의 억울함을 호소하는 것이라 개탄하며 산송을 자제하라는 교지를 내려 보낼 정도였다. 폭증하는 소송이 종국에는 망국적 국민 분열의 단초를 제공했다. 타인과 공적 제도에 대한 신뢰가 없는 곳에서는 '모두가 모두에 대해 늑대'인 존재로 타락하기 쉽다. 불공정한 데다 불투명하기까지 한 '게임의 규칙'에 대한 의심은 사회 구성원들의 분노와 원망만을 키우기 때문이다.

메르스 사태에서도 사회적 신뢰의 부재가 낳은 각자도생 행태가 얼마나 큰 부작용과 비효율을 낳을 수 있는지 보여준다. 감염 의심 환자가 자기만 살겠다고 병력(病歷)을 속이고, 제 한 몸 편하자고 자가(自家) 격리 규칙을 지키지 않아 사회 전체에 공포 바이러스를 퍼트렸다. 많은 시민은 근거 없는 루머를 SNS로 퍼나르며 공포감 확산을 부추겼다. 사회통합 붕괴에 따른 각자도생 모델은 사회 구성원들에게 항시 불안감을 안겨주고 이기심을 조장하며 서로를 불신하게 만드는 해악이 된다.

국가 신뢰자산이 바닥까지 떨어지면서 블랙아웃이 염려되는 전력난 속에서 밀양에 전봇대 하나 세우지 못하고 안보 위기상황에서도 제주 해군기지 건설이 주춤거렸던게 현실이였다. 우리 사회 갈등이 통제 불능 수준에 이르렀다는 것은 누구나 느끼고 있다. 이처럼 한국이 저신뢰 사회가 된 것은 그동안의 성장지상주의가 큰 원인인 것으로 보인다. 절차와 과정은 무시해도 목표만 달성하면 된다는 의식이 우리 사회에 뿌리 깊게 박혀버린 것이다. 이는 결과적으로 낮은 제도적 신뢰를 낳고 정직한 사람이 손해를 보는 낮은 사적 신뢰의 구조를 만들었다. 이것을 해결하는 방법은 기본으로 돌아가는 것 밖에 없다. 남을 따돌리는 경쟁보다 남을 배려하며 같이 가는 공동체 의식을 심어주고, 외형적 성장지상주의를 벗어나 본질적인 임무를 충실히 하는 내실화와 의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나라가 가야 할 길은 분명하게 보이는데 우리 내부의 견해 차이, 이해 다툼이 그 길을 막고 있는 경우는 제주 해군기지만이 아니다. 우리 사회는 명백한 문제에서조차 합의와 조정에 의한 해결이 아니라 치고받는 대결로 지새우고 있다. 우리 사회의 갈등은 대부분 정치적 쟁점으로 비화하면서 분쟁이 장기화하는 악순환 구조까지 갖고 있다. 사회적 갈등을 통합하고 조율해야 할 정치권이 갈등의 진원지 구실을 하고 있는 셈이다. 결과에 승복하겠다는 전제하에 조정에 참여하고서도 결론이 제 마음에 들지 않으면 모든 절차를 걷어차는 후진적 행태는 개선될 기미조차 없다.

이러한 갈등 기조 고착화에 의한 퇴행적 현상은 국가 경쟁력 퇴락으로 이어지고 있다.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이 발표한 ‘2016년 국가경쟁력’ 평가를 보면 우리 사회의 통합 수준은 선진국에 비해 매우 낮다. 한국의 사회적 결속 점수는 최근 4년 새 8.04에서 4.17로 반 토막 나 국론 분열의 심각성을 보여준다. 이로 인해 ‘2017년 국가경쟁력’ 평가에서 한국의 종합순위는 평가대상 63개국 중 29위로 낮은 성적을 기록했다. 아시아·태평양 국가 14개국 중 10위, 인구 2000만명 이상 국가 29개국 중 11위에 그쳤다. 정부 효율성 순위는 26위에서 28위로, 인프라 순위는 22위에서 24위로, 경제 성과 순위는 21위에서 22위로 하락했다.

사회 구성원 간 신뢰부족으로 인한 사회적 비용이 폭증하고 있는 비효율이 지배하는 상황에서 우리나라가 선진국으로 진입하기는 불가능한 일이다. 우리나라가 세계 10대 경제강국으로 진입했다고 자랑하지만 신뢰 자본 면에선 아직 갈 길이 너무 멀기만 하다.

# 제주의 사회 통합, 무엇부터 시작해야 하나

제주의 경제적· 사회적 양극화 현상의 심화는 구성원 간 질시와 갈등을 증폭시켜 사회 통합에 많은 진통을 겪고 있다. 여기에 정치권 분열, 약한 도세, 쪼개진 사회, 비전의 소멸은 제주 사회의 분열로 귀결되고 있는 실정이다. 제주 사회가 언제부터인가 분열과 갈등이 일상화하는 이유다.

최근 수년간 겪은 여러 정치적 사건은 도민의 마음을 서로 갈리게 해, 갈등의 골을 더 깊게 하고 있다. 사회 전체가 자폐적 권력끼리 갈려 서로가 이를 악물고 서로를 증오하며, 이념 갈등과 집단 이기주의, 떼쓰기와 기 싸움에 빠져 문제해결 능력과 기회를 상실하고 있다. 토론보다는 집단행동이 우선이고, 논리보다는 도민 감정이 앞선다. 명백한 문제에서조차 합리적 해결보단 치고받는 대결로 지새우고 있다. 이러한 결과로 어느 한 쟁점에서도 여론을 한 곳으로 제대로 모으지 못한다. 지사 임기가 끝나가도 매듭 하나 제대로 푼 게 없고 오히려 새로운 매듭을 만들어 내고 있는 사실이 이를 말해준다.

개방화 시대를 맞이하며 축적된 다양한 모순과 갈등구조에 세대갈등이라는 또 하나의 암초를 만나 갈등양상이 중층적 모순구조로 더욱 심화되고 있는 제주 사회의 민낯이다. 제주 사회가 가야 할 길은 누구에게도 분명하게 보이는데 이러한 중층적 모순구조에 의한 사회 구성원간 첨예한 이해관계 대립과 높은 사회적 갈등이 제주 사회 통합의 해결법을 찾기 어렵게 하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해결법을 찾기 위한 지사의 리더십도 부족하고 도민적 의지도 사라진지 오래됐다.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단칼에 자른 알렉산더의 리더십을 기대하기 힘들다면 다가오는 선거에서 새로운 리더십을 선택해 고질적 적폐인 갈등과 모순구조의 타파를 시도해 봐야 한다. 갈등 해결을 통한 사회통합 없이는 제주는 결코 선진사회로 진입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실 중층적 모순구조의 심화로 요즘 제주 사회의 통합과 신뢰는 최하위권이라 보는 게 옳다. 도정의 정책이나 지사의 리더십을 신뢰하는 도민을 찾아보기가 힘들 정도이다. 일상화되는 갈등과 정치 지도자 간 도를 넘는 암투와 질시는 사회적 자본인 신뢰도 추락을 부채질하면서 성장력마저 갉아먹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상황이면 으레 사회 통합하여 도민적 역량을 한데 모아야 함이 당연하다. 그러나 제주 정치는 도민을 더욱 분열시키고 사회의 원심력을 더 팽창시켜 제주 사회를 해체되는 방향으로 끌어가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사회적 갈등이 대부분 정치적 쟁점으로 비화하면서 분쟁이 장기화하는 악순환 구조로 고착화되고 있는 점이다. 사회적 갈등을 통합하고 조율해야 할 정치권이 갈등의 진원지 구실을 하고 있는 셈이다. 제주 정치권이 대오각성해 정치를 바로 세워 갈등 유발자가 아닌 갈등 해결자로 새롭게 자리매김하여야 하는 이유다.

이러한 결과로 제주는 성장엔진의 동력이 약해졌고, 사회적 목표를 잃고 갈팡질팡하고 있다. 우리가 기적이라 여겼던 ‘특별자치지역’이라는 지위를 획득했지만, 이것이 제주도의 경제력 향상과 도민들의 생활수준 향상, 사회적 통합에 도움이 된 것은 거의 없다. 경제논리로 풀어야 할 과제를 정치적으로 접근함으로써 타이밍을 놓치고 정치적 비용을 키워 선택 불능 상황으로 내몰리는 경우가 빈번했기 때문이다. 왜 이런 퇴행적 현상이 발생하고 있는지 우리가 곰곰이 생각해보아야 한다.

이제 갈등의 관리와 해결은 제주의 존립이 걸린 현재진행형의 과제다. 제주가 가야 하는 길과 도민의 인식 사이에 생긴 간극이 점점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처럼 갈등이 고조되면 대화와 타협은 잘 통하지 않고 극한투쟁이 빈번해지며, 외부로부터 위기가 닥쳤을 때 제주가 하나가 돼 대응하는 것도 불가능하게 된다. 또한 사회적 갈등은 사회ㆍ경제적 비용이 만만치 않아 가뜩이나 어려운 제주 경제의 발목을 잡고 성장동력을 떨어뜨린다. 사회적 분열을 극복하지 않고서는 제주 사회의 문제와 폐단을 영원히 고칠 수 없는 이유다.

작금의 갈등을 넘어 통합을 이루기 위해선 우리가 막힌 골목에 와 있음을 인정하고, 제주사회의 모순과 한계를 철저히 비판해야만 한다. 그래야 사회 전반의 변화와 혁신을 통해 사회 균열을 아물게 할 처방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 못하면 앞으로 제주 사회의 갈등과 대립 구조는 더욱 공고해지고 제주특별자치도의 신천지로의 여정은 더욱 힘들며 긴 터널이 될 것이다.

사회 구성원 간 견해 차이와 이해 상충은 어느 시대, 어느 사회에서나 있는 일이다. 지혜로운 공동체라면 내분과 갈등의 와중에서도 상호 공동의 이익기반을 도출해 타협점을 찾으려는 노력을 한다. 결국 내분과 갈등을 얼마나 지혜롭게 승화시켜 사회전략으로 발전시키는가에 제주의 운명이 달려 있다고 봐야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새 지사에게 내려진 도민의 첫 번째 명령은 사회통합이다. 사회갈등 치유 없인 새 도정은 한 발짝도 못 나간다. 제주의 고질적 사회적 갈등과 반목은 편협한 세습권력 간 편 가르기에서 비롯된 측면이 크다. 새 지사에게 정치 보복이 없어야 하고 통합의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두 번째 명령은 패거리의 수장이 아닌 모든 도민의 지사로 출발하는 것이다. 자신에게 표를 주지 않은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이며 모두를 아우르는 지사가 돼야 한다. 지지하지 않은 도민들로부터 될수록 많은 동의와 공감, 승복을 얻어내야 전 도민의 지사, 통합의 지사가 되는 길이다.

세 번째 명령은 사회통합을 기반으로 내부 갈등의 악순환을 끊고 꺼져가는 성장동력의 불씨를 살려 위기극복과 함께 새로운 도약기반을 마련하는 일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도민에게 감동을 주고 그들의 열정과 능력을 도민적 에너지로 묶어내야 한다.

네 번째 명령은 복잡다난한 갈등 과제들을 이해관계자와의 대화와 타협 그리고 이를 이끌고 뒷받침하는 도정의 진지한 노력으로 풀어내는 일이다. 소승적 이기주의를 극복하고, 대승적 사회전략을 세워 이를 실행에 옮길 수 있는 소통과 설득의 리더십, 성숙한 의사 결정능력을 지사가 가져야 하는 이유다.

이 모든 것을 가능케 하는 수단은 사회통합이고 그런 노력의 결과로 사회통합은 한층 굳건해질 것이다. 제주가 봉착해 있는 정치적 분열 상황, 경제적 정체 국면, 사회적 갈등을 돌파할 자질을 갖춘 지사를 찾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도민들도 비록 다른 후보를 지지했다 하더라도 새롭게 선출되는 지사를 중심으로 힘을 합쳐야 한다. 통합은 어느 한쪽만의 책임과 의무가 아니다. 파편화된 제주의 통합을 위해선 서로가 진정성을 보여주고 역사적 화해를 실천해 나가야만 한다.

이러한 네 가지의 도민 명령의 관점에서 보면 새 도정의 사회통합 성공여부는 취임 후 첫 인사와 이전 도정 유산의 계승 여부에서 판가름 날 것이다. 이전 도정 인물의 거세와 측근과 주변 사람만 쓰는 정실 인사는 사회 통합을 저해하며 인재난에 허덕이는 제주 사회를 더욱 어렵게 할 뿐이다. 온 제주의 인재를 발탁해도 부족한 판에 코드 인사는 인재풀을 좁히며 인재를 버리는 어리석은 짓이다.

또한 4년마다 반복되는 앞선 도정의 정책색깔 지우기는 제주 경제체력을 갉아먹고 갈등을 증폭시키는 또 다른 통합저해 원인이다. 패거리 인사, 이전 도정 지우기란 단어들이 새 도정 무대에 다시 오르는 순간 대통합 정치와 협치의 꿈은 물거품이 된다. 패거리 인사, 이전 도정 지우기의 정치는 되돌아 나올 길이 없는 일방통행로이기 때문이다.

지나친 과거 부정과 일방적 독주는 협치·소통을 소멸시켜 사회 양극화 그림자를 더욱 짙게 드리우고 사회통합을 가로 막는다. 상대방에 대한 분노는 혐오와 경멸을 부르고, 결국은 부메랑이 되어 상대방뿐만 아니라 자신도 파괴한다. 영국 윈스턴 처칠 총리는 “과거와 현재가 싸우면 미래를 잃게 된다”고 경고했다. 미래를 향해 제주사회 신뢰라는 무형의 자산을 쌓아 사회통합을 완성하는 어려운 작업을 새 지사가 해야 한다. 그것이 그의 운명이고 도민의 명령이다.

# 제주의 사회적 신뢰, 새 도정의 첫 인사에 달려 있다

역대 제주 도정의 실패한 원인 중 큰 이유는 첫 인사 문제였다. 인사에 대한 공정하고 엄격한 잣대는 집권 도정의 도덕성 논란에서 벗어나게 할 수 있는데도 이를 간과했기 때문이다. 분열된 도민을 하나로 다시 묶고 합치게 할 포용과 관용의 리더십을 지니고 있어야 할 지사는 공직자를 등용하는 과정에 자신의 이해관계를 개입시켜 인사실패를 범해서는 안되는 이유다.

새 도정이 들어설 때마다 어김없이 충성심을 잣대로 이른바 ‘우리가 남이가’ 그룹이 중추권력을 장악해 왔다. 이 과정에서 적합한 사람을 널리 구하기보다는 편협한 인재풀에서 편향된 인사를 하여 사회통합을 그르치는 일이 자주 행해졌다. 도를 벗어나 구미에 맞는 친위 세력들로 채우다가 금세 탈이 났다. 전문성이 없는 선거공신의 깜짝 인사는 결과가 깜짝 놀랄 만큼 실패로 끝나는 경우가 태반이였다. 충성도와 유권자 표수를 의식한 정실은 능력 인사를 가로막았다. 선거캠프 참여 인사, 지사의 지인(知人)그룹 등 한정된 인재 풀에 의한 ‘코드 인사’를 답습해온 데 대한 당연한 결과였다.

어느 집단이든 충성심이 강한 사람들만 모이면 다른 생각이 끼어들 틈이 없다. 비판에 귀를 닫고 지지층 목소리엔 백기를 드는 자기들끼리만의 집단사고에 빠지기 십상이다. 자신의 보스에 대한 왜곡된 집단 충성은 공동체의 성장과 가치를 훼손하고 자신들 권력 수명까지 단축시키는 소탐대실일 뿐이다. 납득할 수 없는 실력 미달의 인물이 지사가 되면 지역 사회 전체가 시달리게 되는 이유다.

역대 도정이 한결같이 선진화를 표방하고 백년대계를 외쳤지만 실패한 이유는 이처럼 지사와 4년을 함께 할 공직자를 선택하는 첫 단추를 잘못 꿰었기 때문이다. 그릇된 연고주의에 기인한 자신 측근만의 등용이 인적 지평의 축소를 자초하고 소통 생태계를 위축시킨 결과다. 정실 인사에 눈이 어두워 역대 도정실패를 반면교사로 삼지 못함은 참으로 어리석은 일이다.

제주도의회가 공무원 947명을 대상으로 한 의식조사에서도 응답자의 36.2%가 ‘학연·지연 등 특정인맥 관계’가 승진의 제 1요인으로 꼽아 ‘코드인사’가 횡행하고 있음을 보여줬다. 인사제도에 대한 전반적인 만족도는 45.6점으로 전년도에 비해 3.7점이 더 떨어졌다. 공무원 직무만족도 역시 이전 조사에 비해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제주 도정의 인사관리가 전반적으로 부실하고 불공정하게 이뤄짐으로써 공무원의 사기가 추락하고 있음을 뜻한다.

‘우리가 남이가’ 그룹의 중추권력 장악은 제주 공기업에서도 예외없이 자행되고 있다. 능력·전문성 따지지 않고 날아드는 염치없는 낙하산들의 무원칙한 인사로 공기업들이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실정이다. 상층부 대부분이 전문성과는 거리가 먼 선거공신과 정권과의 특정한 연고를 통해 알뜰하게 챙겨진다. 비전문가 낙하산 인사에게 경영을 맡기니 경영실적이 좋아질 리 없다. 그들만의 게걸스러운 감투 잔치는 도민의 불신을 사는 지름길일 뿐이다.

이와 같은 ‘우리가 남이가’ 그룹의 고질적인 유착과 담합구조는 공정한 경쟁기회를 박탈함으로서 공정사회의 정착을 가로막는 결과를 낳는다. 이런 퇴행적 관행이 고착화되면 우리 젊은 세대들은 제주 사회에 대해 좌절감과 이반을 느낄 수밖에 없게 돼 제주사회의 역동성은 추락하게 된다. 사회가 지속적으로 발전하기 위해선 젊은 세대에게 꿈과 희망을 줄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기회가 공정하게 제공돼야 한다. 연고가 아닌 실력으로 경쟁하는 사회임을 보여줘야 하는 이유다.

# 제주사회의 통합 에너지를 소멸시킨 원희룡 첫 인사

원희룡의 첫 인사는 실패로 점철됐다. 선거 압승에 힘입어 제주 사회 를 통합할 수 있는 천재일우의 기회가 인사 실패로 무산된 셈이다. 그의 첫 인사는 도민의 기대와는 달리 말도 많고 탈도 많았다. 지명 인사의 인사청문회 통과 실패 등 인사 참사의 후유증이 너무나 컸다. 원 지사는 “선거공신 인사가 새 도정에서는 없도록 하겠다”는 탕평인사를 선거공약으로 내세워 압도적 승리를 거머 쥐었다. 그래서 원 지사의 ‘보은 인사’ 임명에 도민의 배신감이 더 컸다. 지사 취임 후 얼마도 안돼 “잘 못 찍은 내 손가락 잘라버리겠다”는 아우성까지 나왔다.

원 지사의 첫 인사는 덧나기 쉬운 상처에 소금 뿌리는 것 같은 파장을 만들어 ‘오만·독선’의 정치인이란 오명의 굴레를 씌우고 말았다. ‘인사가 만사’라고 하면서 코드 인사, 낙하산 인사, 패거리 인사, 표심잡기 인사, 재활용 오기 인사, 미운털 손보는 보복인사의 자행으로 인사 참사를 초래했다. 이로 인해 원 지사를 믿고 제주 미래를 맡길 수 없다는 비판까지 나오기 시작했다. 공익을 위해 쓰여져야 할 공적 자산이 사익 추구에 과도하게 악용되면서 제주 통합과 혁신의 공약도 퇴색되고 말았다.

제주 통합과 혁신을 기치로 내세운 원 지사가 도내 주요 보직에 전문성 없는 선거 캠프인사를 채운 것은 명백한 권한 남용이다. 원 지사 정치의 실패와 도민 통합을 위한 통치동맹의 무산이 여기에서 시작됐다. 잘못된 첫 인사가 민심 이탈과 도정 동력 상실의 단초가 된 것이다. 특히 참사 전개 과정에서 드러난 안이한 상황인식, 독불장군식 고집, 아마추어 수준의 일처리는 오만과 독선에 빠져 도민 위에 군림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기에 충분했다.

임기 내내 원희룡 인사의 기준은 도덕성이나 능력이 아니라 충성심에 방점을 두었다. 도정 철학의 공유라는 명분으로 합리화하고 있지만 이것은 선거 공신들에게 전리품을 배분하겠다는 선언이나 다름없었다. 부적합 인물들이 중용되는 순간 인사 참사는 예고되었다. 충분한 공론화 과정도 없었기에 불통 인사라는 비판이 쏟아져 나왔다. 패거리 정치를 위한 인사는 깜짝 인사로 이어졌다. 예상을 뛰어 넘는 깜짝 인사는 사실 양날의 칼이다. 역대 도정들이 깜짝 인사카드에 본능적 유혹을 느끼는 것은 성공하면 어떤 정치 이벤트보다 대박을 보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밀실에서 이뤄지는 깜짝 인사는 검증 부실로 청문회 통과 실패라는 인사 쪽박으로 귀결되기 십상인 것이다. 깜짝 지명 인사들에 대한 청문회 검증과정을 보면 이들의 자질과 역량이 도민의 기대치에 크게 못미친다는 것을 확연히 느낄 수 있다. 이러한 퇴행적 현상이 결국 지도자의 평가절하와 함께 제주의 리더십 위기까지 몰고 오고 있는 것이다. 선거공신들을 각종 자리에 전리품처럼 앉히는 코드인사와 진영인사야 말로 적폐 중의 적폐이다. 이는 지사의 기본을 망각하는 일이다.

여기에 측근을 앉히기 위해 편법으로 악용되고 있는 공공기관장 공모제 역시 사회적 불신을 키우는데 크게 한몫하고 있다. 공공기관장 공모제가 도입된 지 짧지 않은 시간이 흘렀지만 지사가 일방적으로 임명하던 시절과 달라진 게 하나도 없다. 사실상 유명무실해진 제도이다. 기관장 공모절차 시작 전부터 “누가 어느 자리에 낙점을 받았다”는 이야기가 나돈다. 그리고 결과는 소문이 사실임을 확인한다. 이 과정에서 물정 모르는 선량한 사람들이 들러리로 전락해 망신을 사는 일이 반복돼 왔다. 공정사회 구현을 외치면서 뒤로는 은밀하게 이런 협잡이 공공연히 자행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엉터리 공모제는 인사권자에게 책임을 회피할 핑계거리만 제공해 왔다는 점에서 임명제와 공모제의 나쁜 점만 조합한 결과가 됐다. 공공기관장 자리를 전리품으로 전락시킨 지금의 공모제 최종 피해자는 바로 도민이다. 눈 가리고 아옹하는 이 제도는 차라리 없애는 게 낫다. 임명제로 돌아가 지사가 원하는 인물을 임명하고 인사에 대한 책임을 지사가 명확하게 지는 게 백번 떳떳하다.

지사가 가진 가장 큰 권한 중 하나가 인사권이다. 그 막강한 권한으로 좋은 인재를 등용해서 권한과 재량을 주어 일을 잘하도록 하는 것이 지사가 할 일이다. 제주 혁신이 전문성과 공공성을 가진 인물을 중용하는 인사에서 시작되어야 하는 이유다. 필요하다면 대대적인 물갈이로 판을 뒤집어야 한다. 지사 자신의 도정 운영방식 변화와 인적 쇄신이 빠져서는 도민의 신뢰를 얻기 어렵다.

지사 주변 인사에 대한 검증도 보다 철저히 해야 한다. ’취임 초 징크스’가 역대 도정마다 되풀이되는 이유는 새로운 권력에 진입한 자격미달 세력이 권력에 취해 호가호위하다 사고를 저지르기 때문이다. 이들이 도덕적 불감증에서 헤어나지 못하면 지사는 동반 실패의 길을 걷게 된다. 자신들의 안위와 권력을 장기간 향유하려면 인재 등용이 공적인 프로세스를 통해 이뤄져야 하는 이유다. 최측근의 도정농단 의혹을 목도하면서도 반성과 성찰 없이 침묵으로만 일관한다면 정치를 할 자격이 못된다.

다가오는 6.13선거에서 새롭게 출범하는 도정의 성패는 초기 몇 달 동안 인사를 어떻게 하는가에 달려 있다. 새 지사는 아마추어 도정 이미지를 털어내고 도민 사회에 희망을 주는 새로운 모습으로 출발하기 위해선 선거 공헌도 등 사적 이해관계를 떠나 도덕성과 전문성을 겸비한 인사를 발굴하고 중용해야 한다. 자기 사람을 심기 위해 아무나 앉혀도 된다는 발상은 결코 용납될 수 없다. 편을 가르지 아니하고 널리 인재를 구하여 쓰는 일이야말로 사회통합의 출발점이자 도정 성공의 필요조건인 협치를 구현하는 길이다.

이를 위해 새 지사는 혈연‧지연‧학연 등 전통사회의 특징적 가치였던 연고주의를 공직사회에서 몰아내 ‘끼리끼리 인사’의 틀을 과감히 혁신해야 한다. 측근 정치와 관련된 모든 주변 인사들은 전원 예외 없이 삭탈관직하고 이들 자리에는 사명감과 전문성을 갖춘 인재를 등용해야 한다. 고위 관료가 낙하산을 타고 부당하게 재취업하지 못하도록 관피아 적폐 논란의 진원지인 공공기관장 선임 절차와 행정규제 생태계를 바로 잡아야 한다.

공공기관장 인사는 정치색과 특정 정치성향에 휘둘리지 않고 공정성과 객관성이 확보된 실질적인 공모를 통해 적임자를 물색해야 한다. 공직사회에 개방의 폭을 대폭 확대해 우수 전문인력의 외부수혈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지도록 해야 한다. 임기를 보장하는 풍토를 정착시키고 능력있는 내부 출신 발탁을 늘려나가되, 외부 출신을 뽑을 땐 전문성과 추진력, 경영능력을 갖춘 전문 경영인을 선임하는 새로운 방안을 찾아야 한다. 이것이 측근 세력의 수장이 아니라 도민 모두의 지사로 거듭나는 길이다.

새 지사는 첫 인사에서 인사가 만사가 아니라 망사의 참사를 불러와서는 안된다. 첫 인사 참사는 실패한 지도자 하나를 더 낳아 오욕의 역사를 되풀이 할 뿐이다. 지사의 권한 오용과 남용을 막기 어렵다면 측근 공신들이 임명직을 맡지 않겠다고 선언해, 지사의 판단을 흐리게 하지 않도록 함이 어떨까. 한가히 자기 사람 심기를 용납하기에는 지금 제주를 둘러싼 환경이 결코 녹록치 않기 때문이다. 새 지사의 성공적 첫 인사가 제주 사회통합으로 이어져 성공한 지사의 지름길로 이어지길 간절히 빌어본다.

# 과거청산 미명하에 이전 도정 사람과 정책을 버리지 말라

우리나라는 5년 임기 정부가 바뀔 때마다 벌어지는 '지우개 국정'이 정책 단층현상을 초래해 경제성장률을 평균 1%포인트씩 떨어트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국정 지우개 현상은 대일관계에서도 한국이 늘 불리한 입장에 서게 만든다. 국가 간 협상에는 인맥과 경험이 중요한데 정부가 바뀌면 극단과 극단을 오가면서 경험 있는 외교관을 날리며 외교력을 약화시키기 때문이다. 우리와는 달리 일본은 인재를 쉽게 버리지 않는다. 이러한 인력 차이가 역사의 차이를 만들고 있다. 이런 식으로 가면 한국은 일본에 당할 수 밖에 없다.

국정 지우기는 우리 역사에도 악영향을 주고 있다. 보수·진보 정권의 성향에 따라 내용은 물론 발행 방식이 바뀌면서 역대 정권마다 역사교과서 몸살을 앓을 정도다. 교육은 백년대계라고 한다. 역사교과서가 5년마다 정권의 정치놀음에 마음대로 뜯어고칠 수 있는 전리품이 되어서는 안된다. 이러한 퇴행적 국정 지우기는 종국에는 국정지지율을 추락시켜 국정수행 동력을 약화시킨다. 권력 초기 과거를 들추기보다 미래를 바라볼 필요가 여기에 있다.

권력의 본능은 독점이며 집권 세력의 눈에는 옛 질서의 잔재는 적폐청산 대상이다. 그래서인지 새 지사들의 첫 행보는 도청 조직을 멋대로 뜯어고치고 이전 도정에서 선택받았던 사람들을 마구 내쳐버리는 것에서 시작된다. 또한 전임 도정이 만들었다는 이유만으로 자리를 잡아가려는 정책을 뒤집으며 도정의 근간까지 뒤흔들어 버리곤 한다.

4년 계약직 신분인 지사가 제주에 필요한 정책과 사람을 이렇게 뒤집으며 기둥과 대들보를 바꿔도 되는 것인가. 자기편 선거공신 일색 인사로 도정을 한 쪽으로 기울게 만들어도 되는 것인가. 도가 지나치면 자신과 제주의 명운까지도 바뀔 수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인가. 권력을 쥐자 누누이 강조해왔던 도민과의 수평적 관계가 사라지고 대신 오만, 오기, 독선의 리더십이 똬리를 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결과 제주 도정의 정책 단층현상이 중앙정부보다 더 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을 것이다. 도정이 바뀌면 기존 정책을 몽땅 뒤집고, 4년 뒤 다시 뒤집힐 것을 알면서도 새로 쌓는 이른바 ‘샤워실의 바보짓’을 반복한다. 앞선 도정의 정책색깔 지우기가 4년마다 반복됨으로서 과거 성과가 쌓이지 않고 4년마다 원점에서 새로 시작하는 '정책 블랙홀'이 제주 경제체력을 갉아먹을 수 밖에 없다. 특히 구조 개혁이나 장기 성장전략 같은 과제는 4년을 뛰어넘어 물 흐르듯이 이어갈 방법을 찾아야 제주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다. ‘새 도정 신드롬’이라는 말이 되풀이 되어서는 기업들이 장기 투자와 일자리 창출에 집중할 수 없어 정책효과가 반감된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밀턴 프리드먼 교수는 “샤워실에 들어간 바보는 샤워에서 찬물이 나오면 뜨거운 물로 돌린다. 그러다 뜨거워지면 다시 찬물로 돌리고, 그걸 반복하다 결국은 물만 낭비하고 정작 샤워는 하지 못한다”며 “정부 정책이 오락가락하면 안된다. 최선의 경제정책이 뭔지는 모를 수 있지만 확실한 차선(次善)의 정책은 경제주체들에 예측가능성을 줄 수 있는 ‘일관성 있는 정책’”이라고 했다.

과거 적폐 청산은 제주 사회의 여러 가지 고질적인 병폐를 넘어서야 한다는 시대적 요구를 담고 있기에 공감이 가는 부분이 있다. 그러나 과거 적폐 청산을 명분으로 정치보복이 자행되고 있는 게 제주의 현실이다. 적폐란 말 그대로 오랜 시간 동안 켜켜이 쌓여 고질화된 우리 사회의 폐단과 문제를 말한다. 그러기 때문에 적폐는 여러 이해관계가 얽히고 설켜 있을 뿐만 아니라 매우 구조적인 원인을 갖고 있어 말처럼 쉽게 청산되지 않는다. 제주 사회의 전반적인 시스템과 제도를 바꾸지 않고서는 이전 도정 사람과 정책만 바꾼다고 적폐 청산은 이뤄낼 수 없다는 얘기다.

도정이 바뀌면 정책 변화가 있을 수밖에 없지만 미래 예측가능성을 위해 과거 도정의 좋은 정책은 일관성 차원에서 계승하고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 이전 도정에서 추진한 정책이라고 무조건 부정하고 폐기해선 안된다. 그런데 원 도정은 역대 어느 도정보다 이전 도정 색깔 지우기에 유별나게 집착한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수석 신화에 대한 지나친 자만과 확증편향적 사고가 정책 차별화에 포획되도록 한 것이 아닐까. 자신 역량의 과대평가가 정책 혼선을 야기해 “뭐 하나 제대로 하는 것 없이 허송세월하며 갈등만 조장하는 도정”이란 비판을 받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게 아닐까.

역사란 과거의 성찰과 극복을 통해 진화해나가는 것이지만, 그것이 지나치면 이른바 ‘샤워실의 바보’가 된다. ‘샤워실의 바보’가 활보하는 사회에서 발전과 통합을 기대하는 것은 우물가에서 숭늉 찾는 격이다. 이런 점에서 ‘한국판 실리콘밸리'라는 판교 테크노밸리의 성공 사례는 정책 연속성의 중요성을 웅변한다. 정권 교체와 상관없이 지속적인 확장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전임자들이 뿌려놓은 정책이라도 알차게 키운다면, 그 수확이 후임자는 물론 국가 전체에 돌아갈 수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교훈이다.

도정의 임기가 마무리 수순에 접어들고 지사의 레임덕이 가시화되면 관료 사회에는 복지부동, 낙지처럼 펄 속에 숨는다는 ‘낙지부동’, 납작 엎드려 땅과 한 몸이 된다는 ‘신토불이’ 등으로 대변되는 보신주의가 만연해진다. 다가오는 선거의 판세를 보며 줄대기 경쟁을 본격화시키는 것이다. 이로 인해 될 일은 늦추고, 어려운 일은 아예 손 안대는 관료사회 특유의 생존본능인 도정 말기 증후군이 발동한다. 도정 말기 증후군 발동에 따른 행정공백과 공공서비스의 파행은 도민들에게 고스란히 피해로 돌아간다.

이러한 도정 말기 증후군의 고착화도 새 도정이 들어서면 어김없이 전임 사람들을 대폭 물갈이 해버리는 보복적 인사 관행에 기인한다. 이제 더 이상 도정 교체기마다 발생하는 공직사회의 풍토병적 현상에 의해 도정운영 시스템이 흔들려서는 안 된다. 어떤 도정이 들어서든 도정 운영의 기본 틀은 견고하게 유지돼야 마땅하다.

행정의 신뢰성은 하루아침에 쌓아지는 것이 아니다. 전임 도정의 실정을 흉보며 쌓다 허무는 우매한 짓을 4년마다 반복하면 제주는 변방의 사회로 전락될 수밖에 없다. 이러한 도정의 후진성이 사회적 신뢰도를 낮춰 사회 통합을 어렵게 만든다. 서로 믿는 신뢰의 선순환 속에 행복지수가 높아지며 덩달아 사회통합도 가능해 질 것이다.

# 사회통합 에너지, 새 지사의 포용적 리더십에 달려있다

원 지사의 임기 시작과 함께 송일교 코드인사와 이전 도정 지우기 등 퇴행적 정치행태를 겪어보면서 도민들은 묻기 시작했다. 개방화 시대를 맞이하며 축적된 다양한 모순과 갈등구조가 심화되는 제주와 도민을 도대체 어디로 끌고 가려는 것인지? 대권 편집증에 사로잡혀 도정보다는 중앙정치에, 도민보다는 정치적 친위세력을 더 우선시하는 지사의 리더십에 실망감에 휩싸였던 도민은 시간이 흐르면서 원희룡의 사회통합 리더십에 대해 본질적 의문을 갖기 시작한 것이다. '당신들이 압도적으로 선택한 도정이니 내가 가자는 대로 덮어놓고 따라오라'는 오만·독단의 정치를 도민은 결코 용납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원희룡 정치의 뼈아픈 패착이 여기에서 시작되었다고 본다.

제주 사회는 제주특별자치도 출범과 더불어 새로운 도전과 기회를 맞고 있다. 제도적인 토양은 마련되었지만 우리 스스로 성장활력을 발휘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하는 과제가 남아 있다. 분란과 갈등의 일상화로 사회적 신뢰 저하에 따른 경제·사회적 손실이 성장활력을 떨어뜨리고 있기 때문이다.

제주 사회 전반에 독버섯처럼 번지고 있는 분란과 갈등의 적폐를 감안할 때, 특별자치도 체제를 성공적으로 추진해 선진 제주를 건설해 나가야 하는 우리에게는 지금이야말로 정말 중요한 시기임에 틀림없다. 결국 제주특별자치도라는 새로운 실험은 도내 지역간·세대간 갈등을 대승적 차원에서 극복하고 지역사회 발전에 전 도민이 매진하는 것이 성공의 관건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사회적 신뢰 부재에 따른 갈등의 관리와 해결은 제주 존립이 걸린 문제이다. 하지만 사회 통합을 더 미룰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역량과 지혜를 집결해야 할 제주 사회는 안타깝게도 균형점을 잃고 흔들거리는 불안한 모습이다. 도정 운영이 혼미 속을 헤매고 있기에, 경제와 민생까지 온통 엉망이 되고 있다. 제주 사회에 깊이 퍼져 있는 불공정, 부패, 반칙, 비합리성, 비효율성은 도민들을 불신의 굴레 속으로 포획하고 있다. 결국 여기서 나오는 분노와 좌절감이 대립과 갈등, 반목의 골을 깊게 하며 사회 통합을 가로막고 있다. 이 절박한 시기에 지도자의 리더십과 사회 어른의 큰 존재감은 전혀 찾아 볼 수가 없다.

하루빨리 제주는 이러한 사회적 신뢰부재 현상에서 벗어나야 한다. 권력 집단의 패거리 문화와 그 후유증이 남긴 적폐를 지혜를 모아 슬기롭게 극복해 사회 통합을 이루는 것은 다름 아닌 도민 몫이다. 이를 고쳐나가기 위해서는 전반적 제도와 운영체계의 개편, 관행의 변화, 그리고 도민들 스스로의 행동양식에 일대 혁신이 일어나야 한다. 무엇보다도 정치권이 대오각성해야만 한다. 사회의 갈등과 분열의 근원이 되고 있는 정치를 바로 세우지 않으면 선진사회 진입은 어림도 없다. 제주 정치인들이 선진국과 같은 식견과 역량, 합리성을 갖춰, 갈등 유발자가 아닌 갈등 해결자로 새롭게 자리매김해야만 하는 이유다

신뢰는 공정한 게임의 규칙인 법질서와 시민 정신이 두루 성숙한 사회에서 구축된다. 힘이 셀수록 공정하려 애쓰고, 가진 자일수록 의무를 다하는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실천하는 풍토에서만 신뢰가 싹튼다. 신뢰와 공정성이라는 사회적 자본에 비례해 통합과 관용 지수가 증가하고 경제성장이 빨라진다는 건 검증된 당연칙(當然則)이다. 신뢰야말로 삶을 풍성하게 하고 사회의 품격을 드높이는 결정적 힘인 것이다. 법과 상식이 지배하고 대화와 소통이 원활한 사회를 만들려는 뼈아픈 각성이 필요한 이유다.

이러한 사회적 신뢰를 기반으로 이루어지는 사회 통합은 각자 자기 이익과 주장을 내세우기보다 자신이 먼저 마음을 열어 불신의 벽을 허물고 인내하면서 상대를 배려하는 데서 출발한다. 이해 당사자들이 소통하고 양보하면서 해결의 실마리를 찾고 공동체의 미덕을 살려내는 것이 사회 통합의 핵심이다. 이런 관점에서 사회 통합은 가진 자의 포용과 포옹에서 출발해야 한다. 가진 자는 가진 것을 내놓으면 양보가 되지만, 반대자인 약자 입장에서는 패배와 굴종이 되어 내놓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사람이 모여 사는 한 갈등을 피할 수는 없다. 지혜로운 사회라면 갈등의 와중에서도 상호 공동의 이익기반을 도출해 타협점을 찾으려는 노력을 한다. 여기에 필요한 것이 타인의 다름을 존중하는 자세이다. 자신만의 독단의 틀에 갇혀 타인의 다름을 틀림으로 받아들일 때 사회는 발전 원동력을 잃어버리게 된다. ‘차이의 인정’ 속에서 ‘사회적 합의’를 만들어 나가는 과정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이유다. 소설가 알베르 카뮈는 '페스트'에서 “자신이 절대적으로 옳다고 믿는 것이 종말의 시작이라고” 말했다. 독단에 빠져 갈등만을 증폭시키는 제주 지도자의 리더십에 획기적인 변화가 선행돼야 하는 이유다.

바로 여기에 정치인 새 지사의 막중한 책무와 역사적 사명이 있다. 새 지사가 진정 제주의 지도자라고 자처하려면 지금의 집단 갈등 트라우마를 치유하고 적대적 증오를 삭혀 도민 통합을 이뤄내는 일이 무엇보다 시급하고 위중한 시대적 과업임을 깨달아야 한다. 새 지사는 거시적인 안목과 화합의 소통으로 지속적으로 성장 비전을 제시하며 도민 사랑의 정신을 보여줘야 한다. 진정한 소통으로 도민들의 마음과 역량과 지혜를 하나로 모아야만 지금의 분열상황을 헤쳐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새 지사는 온 도민의 공동 가치를 발견하고 이것을 향해 나아가는 거대한 흐름을 만들어 제주발전에 대한 근본적인 변화와 제주사회의 균열을 아물게 할 처방을 찾아내야 한다. 그 어느 때보다도 정책 추진에 있어 새로운 시대 변화에 맞는 리더십을 발휘하여 도민의 노력을 결집할 수 있는 구심점 역할이 필요한 것이다. 새로운 사고로의 전환을 통해 제주의 경쟁력을 제고시켜 도민 삶의 질을 높여 나갈 때 지역내 고질적인 갈등의 해소와 도민 통합의 시대를 열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도민 통합노력이 찻잔속의 태풍에 그칠 것이냐, 진정한 변화의 서막을 열 것이냐는 새 지사의 결심과 행동에 달려 있다. 새 지사는 제대로 실사구시해서 제대로 바꿔야 한다. 성찰과 반성의 수준에 미래세대와 제주의 명운이 달려있기 때문이다.

논어의 ‘안연편(顔淵篇)’에 무신불립(無信不立)이라는 말이 나온다. 공자의 제자 자공(子貢)이 정치에 대해서 묻자, 공자는 “식량을 풍족하게 하고(足食), 군대를 충분하게 하며(足兵), 백성의 믿음을 얻는 일(民信)”이라고 답했다. 자공이 어쩔 수 없이 포기해야 한다면 어떤 순서로 포기해야 하느냐고 묻자, 군대와 식량의 순서로 들고 “백성의 신뢰가 없으면 국가의 존립 자체가 불가능하다(民無信不立)”라고 답하였다. 이처럼 수천 년 전에 이미 공자는 사회적 신뢰가 국가 사회의 존립을 위해서 절대적임을 설파하였다.

고난을 발판으로 역경을 딛고 일어선 역사가 말해주듯이 제주인의 몸속에는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사회적 연대감과 위기극복 유전자가 있다. 여기에서 사회 통합의 에너지를 이끌어 내는 일은 새 지사의 포용적 리더십이다. 시작이 반이라는 속담이 있다. 새 지사 첫 출발의 행보가 어떤 궤적을 그리며 어떻게 교호(交互)하고 어떤 방향을 지향하느냐에 따라 제주 사회통합과 새 도정의 성공여부가 판가름날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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