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3-19 18:08 (화)
“도시재생은 살고 있는 사람이 위주여야”
“도시재생은 살고 있는 사람이 위주여야”
  • 김형훈 기자
  • 승인 2018.01.12 10: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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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의 이야기] <12> ‘순아커피’의 매력

제주시 원도심 도시재생의 대표적 건물이지만 행정지원 없어
건축주와 건축가 의기투합해 적산가옥을 작품으로 환생시켜
“껍데기 가득한 도시재생 버리고 이런 행위 적극 지원해야”
제주시 원도심에 있는 적산가옥이 2층의 순아커피로 환생했다. 기억을 보존하려는 건축주와 건축가의 의도가 잘 맞아 떨어졌다. 미디어제주
제주시 원도심에 있는 적산가옥이 2층의 순아커피로 환생했다. 기억을 보존하려는 건축주와 건축가의 의도가 잘 맞아 떨어졌다. ⓒ미디어제주

[미디어제주 김형훈 기자] 건축물은 사람을 품고 있다. 그래서 건축을 향해 삶을 담는 그릇이라고도 한다. 우리가 ‘집’이라고 부르는 건축물은 사람과 사람의 이야기가 넘친다. 예전 살았던 사람도 있고, 지금이라는 순간에 건축물에 담겨져 있는 인간도 있다.

집과 연관된 이야기가 떠도는 이유는 있다. 실제 그 건축물이 생존해 있기 때문이다. 건축가인 백희성이 쓴 <보이지 않는 집>은 건축과 관련된 이야기들의 실체를 잘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건축물이 없다면 어떻게 될까. 이야기가 떠돌 수 있을 수 있으나 힘은 없게 된다. 떠돌던 이야기는 그야말로 ‘떠돌다가’ 사라진다. 그런 점에서 건축물이 가지는 가치는 엄청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소개시키고 싶은 집이 있다. 이른바 ‘적산가옥’이다. 적산(敵産)이라면 ‘적의 재산’을 말한다. 여기에서의 적은 일제강점기에 우리를 옥죄였던 일본을 말한다. 그들이 남긴 일본식 주택이 바로 적산가옥이다.

일본식 건물이라는 이유로 사라져 버린 적산가옥은 숱하다. 지금은 적산가옥을 만나는 게 무척 힘들다. 그래도 제주시 원도심을 잘 둘러보면 가치 있는 적산가옥이 한 둘 보인다. 이런 건축물들이 사라지기 전에 보존 절차를 거치는 게 필요하다. 적의 재산이라고 해서 없애는 게 아니라, 하나의 역사적 가치물로서 적산가옥을 바라본다면 응당 보존돼야 할 산물이다.

탐라문화광장을 조성하며 살아난 ‘고씨주택’은 엄밀한 의미에서는 적산가옥이 아니다. 한일절충형 양식의 건축물이다. 이와 달리 지금 소개할 주택은 적산가옥의 하나의 정형이다. 바로 ‘순아커피’이다.

순아커피 1층의 풍경. 미디어제주
순아커피 1층의 풍경. ⓒ미디어제주

순아커피는 관덕정에서 동쪽으로 난 관덕로 도로변에 있다. 주변 건물에 비해 낮은 2층 건물이다. 예전에는 숙림상회라는 이름을 달고 있었다. 숙림상회는 이것저것 잡화를 파는 이른바 ‘점방’이었다. 1층에서 잡화를 팔고, 2층은 기거를 하던 곳이다.

순아커피의 주인은 ‘순아’라는 이름의 조카가 된다. 주인은 큰어머니의 건물을 이어받았고, 순아라는 이름의 큰어머니를 부모 이상으로 여겨왔다. 카페 이름에 ‘순아’를 단 배경은 그렇다.

순아커피는 생존해 있다는 게 원도심을 오가는 이들에겐 행복이다. 그러지 않고 일반 건축물을 올리듯 2층의 적산가옥을 헐어버릴 수도 있었지만 그런 선택은 하지 않았다. 건축주와 건축가의 생각이 잘 맞아 떨어졌다.

순아커피는 기억의 환생이다. 소설 <보이지 않는 집>을 읽어내리듯 그런 느낌을 준다. 찬찬히 훑어보면 보물을 찾고 있는 기쁨도 있다. 건축주의 의뢰를 받은 탐라지예 건축사사무소의 권정우 대표는 기억을 살리고 싶은 욕망을 그대로 이 집에 드러냈다.

기억의 환생을 따라가보자. 벽지를 뜯었더니 신문이 나온다. 예전엔 그랬다. 신문을 풀에 먹여 벽에 바르고, 그 위에 벽지를 발랐다. 순아커피는 그런 기억을 새록새록 떠오르게 한다. 벽지를 또 뜯었더니 한반도 지도가 나온다. 숙림상회를 지키던 누군가가 벽지 대용으로 한반도 지도를 바른 모양이다. 순아커피에 가면 한반도 지도는 액자가 돼 있다.

순아커피는 더 예전의 기억도 있다. 벽지 이전의 모습이 있다. 이 집을 어떻게 지었는지 2층에서 확인할 수 있다. 예전은 흙집이다. 대나무도 사용됐다. 그런 흔적들을 잘 보이도록 유리로 액자화시켰다. 2층에서 확인해보라.

순아커피 2층에 가면 만날 수 있는 다다미방. 제주에서 흔치 않은 곳이다. 미디어제주
순아커피 2층에 가면 만날 수 있는 다다미방. 제주에서 흔치 않은 곳이다. ⓒ미디어제주

순아커피 2층은 이 집이 전형적인 일본식 건물임을 단박에 알게 만들었다. 일본 건축물의 특징인 다다미가 있다. ‘도코노마’라는 공간도 보인다. 도코노마는 벽쪽으로 움푹 패인 공간으로 바닥보다 조금 높은 공간이다. 여러 가지 장식품을 놓기에 안성맞춤이다. 1층에서 2층으로 향하는 좁은 계단도 순아커피의 매력이다.

순아커피를 탐하다보면 커피보다는 건축물에 더 눈길이 쏠리게 돼 있다. 공간의 매력이면서, 기억이 주는 환상이다. 적산가옥이나 예전 건물에 대한 모습을 전혀 모르는 이들에겐 낯선 유물과도 같은 마력을 준다.

그런데 우리가 알아야할 게 있다. 기자가 보기엔 순아커피와 같은 공간 만들기가 도시재생이어야 하고, 그렇게 가야 한다. 과연 그렇게 되고 있을까. 전혀 아니다. 우리는 껍데기만 도시재생을 외치고 있다. 가시적인 행동으로만, 돈을 쓰는 행위만 하고 있다는 점이다.

순아커피는 오로지 홀로 했다. 어느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도시재생을 했다. 건축주와 건축가라는 두 축만이 존재했다. 다른 지원은 전혀 없었다. 오히려 어려움이 더 많았다. 도시재생을 하는 이들이라면 이런 행위에 예산을 지원해줘야 하고, 그런 행위를 장려해야 한다.

누구나 원도심을 말한다. 제주시 원도심에 길 만들기만 안달이 됐다. 정작 여기에 사는 사람들에겐 관심이 없다. 그러다보니 정주민은 들러리가 되고, 구경거리만 되고 있다. 도시재생은 원도심에 사는 이들의 삶을 도와주는데 초점을 둬야 한다. 어찌보면 순아커피는 아무도 하려 하지 않은 ‘미친 짓’을 한 셈이다. 이런 경우엔 누가 보상을 해줘야 하고, 격려를 해줘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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