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중업과 안도 다다오를 통해 현대건축을 보다
김중업과 안도 다다오를 통해 현대건축을 보다
  • 이준혁
  • 승인 2018.01.04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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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량’의 건축 이야기] <3> 제주에 남은 ‘르 꼬르뷔지에’ 흔적

지난 두 번의 칼럼에 공통으로 등장하는 건축가가 있다. 바로 르 꼬르뷔지에(Le Corbusier, 1887-1965)다. 그는 50년간 건축가로 활동 했으며 유럽, 인도, 일본 등에 남긴 작품 가운데 17개에 달하는 건축물이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르 꼬르뷔지에를 빼놓고는 현대건축을 설명하기 어려울 만큼 현대건축에 끼친 그의 영향은 막대하다.

르 꼬르뷔지에가 우리나라에는 직접적으로 남긴 작품은 없으나, 우리나라 건축가 김중업(1922~1988)과 일본 건축가 안도 다다오(1941~)를 통해 제주도에 남겨진 르 꼬르뷔지에의 흔적을 찾아보려 한다.

이들 건축가들이 남긴 건축물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나 비평 보다는 그들이 걸어온 길을 통해 살펴보기로 한다.

김중업은 평양 출신으로 요코하마 고등공업학교를 졸업하고, 1948년 서울대학교 건축가 조교수가 된다, 한국전쟁으로 부산으로 내려와 있던 중 1952년 제1회 베니스 세계 예술가 회의에 참석한다. 일본유학 당시 르 꼬르뷔지에를 알고 있었고, 그가 이 회의에 참석한다는 정보를 얻었기 때문이다. 회의 후 무작정 그에게 자신 소개를 하고 제자로 받아달라고 부탁했지만 르 꼬르뷔지에는 대답이 없었다. 하지만 여기에 안주하지 않고 프랑스 파리의 사무실로 찾아간 김중업을 르 꼬르뷔지에는 테스트를 거친 후 제자로 받아들인다.

르 꼬르뷔지에의 사무실에서 1952년 10월 25일부터 3년 2개월 동안 수학한 그는 1956년 귀국을 결심한다. 이 때 스승인 르 꼬르뷔지에는 귀국을 말렸다고 한다. 나중에 르 코르뷔지에 사망 후 미국의 건축지에 르 꼬르뷔지에의 수제자 5명을 꼽아서 실었는데, 그 중에 김중업도 포함되었다. (1)

당시 한국의 현대건축은 UN원조에 의해 원조국가의 설계와 시공기술로 지어졌고, 그 외 한국에 소개된 것은 일본을 통해 걸러진 서구의 현대건축이 대부분이었다.

김중업의 귀국은 서구 현대건축의 원형이 직접적으로 선보인 것에 그 의의가 있다.

김중업은 제주대학교 구본관(1970년 준공), 제주대학교 서귀포 캠퍼스 농학부 본관(1964년 준공, 철거)과 수산학부 본관(1970년 준공, 증개축과 철거로 외관이 변형된 채 서귀중앙여자중학교로 사용)을 제주도에 남겼다.

제주대학 구본관(1964년 설계, 1970년 완공)은 철저하게 르 꼬르뷔지에의 규칙과 방법이 적용되면서도 바다에 인접한 지역적인 조건이 배려된 공간성과 장소성이 어우러진 대표적인 작품이다.(2) 기둥과 분리된 벽체로 인한 자유평면과 자유입면, 일부분의 필로티, 그리고 옥상정원(옥상 스탠드), 부분적인 연속창은 르 꼬르뷔지에의 근대건축 5원칙이 적용되었다. 하지만 건축계와 문화단체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구조적인 문제로 1995년 철거되는 불운을 맞는다.

김중업이 1954년 프랑스에서 참여한 인도 챤디가르 주지사 관저 프로젝트의 지붕 조형물은 제주대학교 구본관에서 다시 볼 수 있었다.

그는 군사정권하에 진행되던 도시계획, 건축에 대한 정부시책(와우 아파트사건, 광주대단지 사건)을 비판하여 1971년 강제출국을 당하게 된다. 이후 프랑스, 미국에서 활동 중 1979년 10월 박정희 대통령의 사망으로 유신이 끝나자 귀국하여 별세할 때(1988년)까지 많은 작품을 남겼다.

제주대학교 구본관이 철거 된 것은 건축유산의 큰 손실이다. 하지만 철거 되었다고 그 흔적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제주대학교 구본관 건축 모형(https://instarix.com/media/BQaD-ualNFE).
제주대학교 구본관 건축 모형(https://instarix.com/media/BQaD-ualNFE).
지니어스 로사이(Genius Loci).
지니어스 로사이(Genius Loci).

일본 건축가 안도 다다오는 1995년 건축계의 노벨상이라고 불리는 ‘프리츠커 건축상’을 받은 아직도 살아있는 현대건축의 거장 중 한명이다.

안도 다다오는 제주에 세 개의 작품을 남겼다.

섭지코지의 글라스 하우스(2008년 준공)와 지니어스 로사이(Genius Loci, 2008년 준공, 현재 유민 미술관)과 안덕면의 본태박물관(2012년 준공)이다.

안도 다다오와 르 꼬르뷔지에의 관계를 알기 위해선 안도 다다오의 과거를 봐야 한다.

안도 다다오는 1941년 오사카에서 태어났다. 그는 건축가가 되기 전 트럭 운전사와 권투선수로 살았다. 오사카 공업고등학교 기계과 시절 프로복싱에 입문하여 대전료를 받아 생계에 보탰다. 고등학교 졸업 후 목공소에 다니며 동네 술집 인테리어를 했다.

그는 23살 때 헌책방에서 르 꼬르뷔지에의 설계도면을 보고 “바로 이거다.”라고 했다고 한다. 그는 다음해인 1965년 르 꼬르뷔지에를 찾아 프랑스 파리 여행길에 올랐다. 하지만 그가 파리에 도착 했을 때 르 꼬르뷔지에는 몇 개월 전 사망 한 후였다. 그 후 그는 세계 여행을 하며, 르 꼬르뷔지에와 관련된 책을 읽고, 도면을 베끼며 독학으로 건축공부를 하였다. 그에게 르 꼬르뷔지에의 책은 선생님이자 학교였다. 그는 전문교육을 받지 않은 르 꼬르뷔지에와 자신 사이에 유사성이 있다고 느꼈다. 훗날 르 꼬르뷔지에는 그에게 ‘동경을 넘어선 존재’라고 고백했다.

1969년 사무실을 개업하였으며, 존경의 뜻으로 사무실에서 기르는 애견의 이름을 “르 꼬르뷔지에”라 불렀다.

제주에 있는 안도 다다오의 세 개의 건축물에는 각각 성격은 다르지만 르 꼬르뷔지에가 말한 “건축적 산책(Promenade Architecturale)”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건축적 산책은 공간에 시간을 보탠 개념이다. 당시 투시도를 중요시하던 유럽의 건축전통에서 한 단계 더 발전한 것으로 공간이 한눈에 파악 되지 않고, 진행할 때 마다 시야가 바뀌는 새로운 공간을 경험하게 하는 것이다.

안도 다다오는 지니어스 로사이(Genius Loci)에서 전시관 입구까지의 동선을 일부러 멀리 돌려 방문자가 여러가지 건축적 체험을 하게 한다. 건물 입구 가까이에서는 외곽을 따라 지하로 내려가는 좁고 긴 통로를 지나오게 함으로써 공간을 더 압축시켜 전시장 경험을 극대화 한다.

지금까지 김중업과 안도 다다오를 통해 제주에 남겨진 르 꼬르뷔지에의 흔적을 살펴보았다. 위의 두 건축가외에도 현재 활동하는 건축가 중 르 꼬르뷔지에의 영향을 받지 않은 사람은 없다. 무심코 스쳐 지나치는 모든 현대 건축물에서도 쉽게 그의 작은 흔적은 발견된다.

(1) https://namu.wiki/w/김중업

(2) 한국 건축계의 거장(巨匠), 김중업을 말하다. 김태일. 제주의 소리(http://www.jejusori.net/?mod=news&act=articleView&idxno=161059)

 

느량의 건축 이야기

이준혁  칼럼니스트

펜션 '느량' 대표
㈜동명기술공단 알제리 지사장
주 알제리 한국건설협의회 간사
프랑스 정부공인 건축사 Architecte D.P.L.G.
Ecole d'architecture Paris-Lavillette 2,3기 과정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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