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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면만 보지 말고 주위를 먼저 둘러봐야
도면만 보지 말고 주위를 먼저 둘러봐야
  • 이준혁
  • 승인 2017.11.07 10: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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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량’의 건축 이야기 <1> 건축사의 역할

우리나라에서 건축 배우기를 시작했으나 더 많은 걸 알려는 욕심은 프랑스로 필자를 끌어들였습니다. 유럽, 그 가운데서도 프랑스의 도시계획은 우리랑은 다릅니다. 해외에서의 수많은 경험을 바탕으로 우리나라에 복귀했으나 필자의 눈에 꽂힌 곳은 다름 아닌 제주도입니다. 건축을 해야 하지만 건물만 짓고 말았지요. 지금은 ‘느량’이라는 펜션에 손을 댔지 뭡니까. 다행히도 <미디어제주>에 글을 쓸 공간이 생겼기에 제가 아는 건축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우선 가볍게 시작해보겠습니다. [편집자주]

 

우리나라 건축사(士)의 역사는 일제 강점기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목수들이 집을 짓고 나면 이를 서류화 하여 관청에 등록을 하는 역할로 시작됐다.

사실 목수들이 집을 짓는 과정에서 도면은 필요가 없었다. 목수는 다년간 습득한 머릿속 기술로 공간을 구체화하는, 그야말로 집을 짓는데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는 사람이었다. 목수가 건축사였고 시공자였다.

그러다 근대에 들어와서 목수의 역할에 변화가 생길 수밖에 없었다.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집을 짓는데 구조적, 법적 문제를 해결해야 했다. 건축물의 허가와 설계의 중요성이 대두됐고, 전문교육을 받는 이들이 필요했다. 그들이 바로 건축사다. 이들을 통해 설계는 진행됐고, 착공전 해당 관공서의 허가 절차를 거쳤다.

그렇다면 일반 시민들은 당시 건축사를 어떻게 바라봤을까. 일반 시민들의 눈엔 목수가 당연히 집을 짓는 사람으로 비췄다. 하지만 건축사는 눈에 들어오질 않았다. 일반 시민들이 보기에 건축사는 종이 몇 장을 들고, 인허가를 해결하는 사람이었다. 목수의 부수적 역할을 하는 존재로만 여겼다. 그러니 건축사에게 누가 주머니를 선뜻 열려했을까. 설계비라는 것에 대한 지출을 아까워했다. 현재도 이건 마찬가지이다.

단지 건축주에게는 허가를 빨래 내주거나, 안되는 걸 해결하는 게 좋은 건축사로 인식될 뿐이었다.

근대에 들어오면 건축 재료가 다양해진다. 초가집과 기와집으로 분류되던 조선의 건축양식에 콘크리트와 벽돌 등이 대거 투입된다. 재료의 다양성은 개개의 건물에 개성을 표현할 수 있게 되었고, 건축주의 다양한 취향을 만족시켜 주기도 했다.

1960년대 이후 급격한 개발과정을 거치면서 다양한 형태의 건축물은 서로 경쟁하듯이 자신을 뽐낸다. 문제는 서로 어울리지도 않고, 서로 이야기하려 하지 않는 데 있다. 재료의 다양성과 기술의 발전, 이런 걸 핑계로 건축물들은 더 이상의 대화는 필요없다고 말하는 듯하다.

제주 해변가에는 육지부의 산속이나 거대도시에 놔두어도 딱 어울릴 건축물로 가득하다. 아니 잡지책 속에 예쁜 사진으로 있어야 가장 잘 어울리는 건축물로 넘쳐나고 있다.

건축은 문화다. 한 지역의 자연적 인문적 상황에서 가장 적합하게 발전되어 온 역사의 연속성을 가진 문화다. 건축은 완성된 하나의 건축물 만이 아닌 그 지역의 혼(Locus)이 녹아 있어야 한다.

건축사는 건물을 짓는 건축과정에 있어서 기술적, 법적 전문 지식만 가진 사람이 아니다.

건물이 서있어야 할 곳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이야 하며, 그 지역의 문화를 가장 잘 이해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건축사는 건축주가 요구하는 대로 설계해서 허가만 내어 주는 사람이 아니라, 전문지식을 통해 공간, 기술적인 것은 물론이고, 건축주가 간과하거나 알지 못하는 사회적, 인문적 요소를 통합하여 건축물과 함께 지역 건축 문화를 기획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필자가 공부한 프랑스의 건축학교에는 120명의 건축과 교수 중 30여 명의 사회학자가 있었다. 건축사 자격증을 획득한 후 사회학으로 박사를 마친 사람들이었다. 건축설계과정에서 사회학자는 한 팀이 되어 해당지역의 분석이나 지어질 건축물로 인해 발생될 문제점 등을 같이 고민하였다.

개인의 개성과 독창성을 중요시하는 유럽에서도 하나의 건축물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미래의 건축가에게 고민하도록 훈련을 시키는 것이다.

언젠가 학교장과의 대화에서 “나는 당신들을 스타 건축가로 만들 생각은 없습니다. 나는 당신들을 이 사회를 가장 잘 아는 건축가로 만드는 것이 목적입니다.”라는 말을 들었을 때 이러한 교육의 목표를 이해 할 수 있었다.

20세기초반 프랑스의 건축가 르 꼬르뷔지에(스위스 출생)는 저서 <건축을 향하여>에서 ‘건축이냐 혁명이냐’를 외치면서 글을 마치고 있다. 한때 많은 건축가들이 이 문구는 건축을 통하여 사회를 바꿀 수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필자는 이 문구는 건축가가 얼마나 사회에 관심을 가져야 하며, 건축이 사회학적인 측면에서 진행 되어야 하는지를 나타내는 것이라고 믿고 있다.

건축은 사회를 바꾸지는 못한다. 사회가 좋은 방향으로 나갈 때 더 가속화 시킬 수 있으며, 그렇지 않은 방향으로 나갈 때 그 속도를 더디게 할 수는 있을 것이다. 건축가들은 이제부터라도 도면만 쳐다볼 것이 아니라, 주변을 섬세하게 둘러보는 자세가 필요하다.

 

느량의 건축 이야기

이준혁  칼럼니스트

펜션 '느량' 대표
㈜동명기술공단 알제리 지사장
주 알제리 한국건설협의회 간사
프랑스 정부공인 건축사 Architecte D.P.L.G.
Ecole d'architecture Paris-Lavillette 2,3기 과정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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