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제주시내 모 원룸에서 한 여대생이 자살하는 사건이 있었다.
이 여대생은 '가난이 싫다'라는 내용의 유서만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지난해 제주지역에서 자살로 인한 사망자수는 195명으로 2003년 145명에 비해 53%가 늘었다.
외환위기가 불어닥친 1998년 137명 보다도 크게 늘었다.
자살이 크게 늘고 있는 원인 중에는 무엇보다 생활고 등 경제불황의 여파가 크다.
특히 경제불황이 오랫동안 지속되면서 빈곤가정은 크게 늘고 있다.
'가난'은 단순히 '굶주림'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가난은 빈곤아동을 양산하고 가족해체까지 야기하면서 심각한 사회구조적 문제가 되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제주지역 빈곤실태와 대책에 모색해보는 세미나가 27일 개최돼 눈길을 끈다.
이날 오전 10시 제주시열린정보센터 세미나실에서 열린 한국부인회제주도지부(회장 고순생) 주최 정책세미나 '제주의 희망은 가정 경제로부터'가 바로 그것이다.
세미나에서 진관훈 박사(제주한라대학)는 '제주지역 차상위 계층의 빈곤실태와 대책에 관한 논의'라는 주제발표를 통해 빈곤문제의 심각성을 역설했다.
그는 이번 연구에서 맨 밑바닥에 있는 빈곤층이 아니라 차상위 빈곤층의 문제를 집중 분석했다.
#사각지대에 놓인 차상위 계층의 '혹독한 가난'
차상위 계층이란 가구소득이 최저생계비를 크게 넘지 못하는 준빈곤층을 의미한다.
즉, 소득은 최저생계비 수준이나 정부의 기초생활보장수급대상에는 들어가지 못하는 계층으로, 요즘처럼 경제가 어려울 때 수입이 가장 먼저 줄지만 생계비나 의료급여 등 사회안전망 혜택을 받지 못해 타격을 심하게 받는 계층을 말한다.
조사기관마다 통계치는 다르나 지난해 말 현재 차상위 계층은 전국적으로 340만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차상위 게층의 빈곤문제는 실제 돈벌이가 되지 않고 있으나 정부지원마저 없어 그야말로 혹독한 가난을 체험하는 '사각지대'에 놓여있기 때문에 심각성이 있다.
#할 말없는 빈곤의 '40대 가장'
가난한 가정에서는 가족 구성원 모두가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시련과 곤란이 뒤따르지만, 그 중에서도 한 집안을 책임지고 부양해야 할 막중한 위치에 있는 가장의 괴로움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진 박사는 이번 연구에서 지난해 제주도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빈곤가장 위기지원 사업' 신청대상자 600명을 대상으로 실태조사를 벌였다.
조사결과 빈곤가정 위기지원사업을 신청한 가장의 나이는 소득활동이 가장 왕성한 계층인 40대와 50대가 많아 눈길을 끌었다.
특히 40대가 26.6%로 가장 많았는데, 다음으로 70대 20.1% 순이다.
이어 50대 19.0%, 60대 11.9% 등이다.
이처럼 40대와 50대 가장이 두드러진 것은 계속되는 경제불황으로 실직하거나 장사하다가 실패하는 사례가 많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실제 조사에서도 빈곤가정으로 전락한 이유와 관련해 '세대주의 재산, 소득상의 손실' 때문이라는 응답이 44.3%로 가장 많았고, '부 또는 모의 가출' 34.5%, '주소득자의 사망 또는 질병 등' 7.5%로 나타났다.
#가난은 '가족 해체'로 이어져
가난은 '굶주림'과 '곤란' 그 자체로 끝나지 않고 가족구조를 급속히 해체시키고 있어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다.
실제 빈곤가정 위기지원 대상자 중 56.9%가 빈곤으로 인한 파생문제 중 가족해체가 가장 크다고 응답했다.
빈곤이 계속되면서 가족들이 가출한다는 것이다.
또 빈곤아동에 대한 교육이 안되는 문제가 16.2%, 노인 부양 기피 등 11.5%, 여성빈곤 및 여성에 대한 폭력 8.6% 등으로 나타났다.
또 차상위 계층의 빈곤증가로 인한 사회문제 유형을 보면 자살의 증가, 생계형 범죄 증가, 가출 및 가정폭력 증가, 이혼 증가, 신용불량자 양산, 부모로부터 버림받는 아동 증가, 가족 해체 등이다.
#차상위 계층의 빈곤대책은
진 박사는 현재 빈곤층을 수급자에서 탈락시키는 것 자체가 벼랑 끝으로 사람을 내모는 것과 같은 상황이라고 말한다.
즉, 수급자에서 탈락되는 순간 생계, 의료, 교육, 주거급여의 대상에서도 제외되기 때문이다. 아무런 급여도 받지 못하는 차상위계층이 되기 보다는 쥐꼬리만큼 되는 생계급여를 받더라도 의료와 교육급여를 받는 기초생활보장 수급자가 되는 것이 낫다는 것이다.
이에따라 진 박사는 차상위계층엗 대한 부분급여 지급을 전면적으로 실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실효성 있는 사회적 일자리 확충과 예산 확보, 불합리한 국민기초생활보장법 개선 등 제도적 개선작업도 이뤄져야 할 것으로 지적됐다.
진 박사는 "제주지역의 차상위 빈곤계층은 다른 어떤 계층보다 경제 위기, 제주지역 경제의 불황으로 인한 경제생활 전반의 어려움과 충격을 치명적으로 경험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그러나 제주지역 정서와 개인적 자존심, 지역사회의 협소성 등으로 인해 이 문제에 대한 지역사회 수준의 논의는 미약하고 개인적 차원의 포기나 도피, 자살 등으로 해결하려 하고 있다"며 "이러한 상황에서 이 문제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야기시키고 민간, 지역사회 수준의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개입방안, 해결방안을 모색해 봐야 한다"고 말했다.
또 고순생 회장은 "경제환경의 변화는 개인과 가정 모두에게 극심한 불안과 충격을 주고 있다"며 "이러한 문제를 잘 극복하고 발전적 방향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합리적이고 현실적인 관리가 매우 필요하다"고 말했다.
길 바닥에 나 안질수도 없고...
월급날이라도 있으니 희망이 있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