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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별이 뜨다-'2007년의 신인, 구자철'
새로운 별이 뜨다-'2007년의 신인, 구자철'
  • 박상준
  • 승인 2007.06.05 13: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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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박상준 제주유나이티드FC 홍보팀장
한 장의 사진처럼, 뚜렷이 뇌리 속에 남는 순간들이 있다. 선수들이 달리고 공이 흐르다, 그라운드 위에 곱게 누워있는 잔디들이 일순간 갈라지는 듯한 그런 순간. 누군가의 발을 떠난 공은 다른 모든 이들의 발을 피한 채 목적지를 향한다. 그때 다시 시간이 되돌아온다. 관중들의 함성 소리가 경기장을 채우고 경기가 달아오른다. 2007년 제주 유나이티드의 유니폼을 입고 K리그에 나타난 미드필더 구자철(18)은 축구팬들에게 그런 특별한 순간을 선물했다.

"경기 나가면서부터는 그냥 정신이 없었어요. 경기 끝나면 숙소에 들어와서 일기를 쓰며 그날 경기에 대해서 생각했죠. 그날 경기에 대해서 만족했던 때도 있었고 생각했던 것만큼 안 됐던 경기도 있었어요."

올 시즌을 앞두고 제주는 '2007 K리그 신인선수 선발 드래프트'에서 13명의 신인 선수를 선발했다. 구자철은 드래프트 3라운드에서 제주에 지명됐다. 그리고 5개월, 그는 K리그 11경기에 출전한 '당당한 K리거'가 됐다.

"처음 제주에 입단했을 때는 '대학교 2년 갔다고 생각하자'라고 마음먹었어요. 그렇게만 생각해도 더 좋은 선수들과 경기하면서 더 좋은 습관을 배울 수 있는 거잖아요. 연습경기를 뛰고 운동을 하면서 조금씩 자신감이 생겼죠. 열심히 하다 보면 기회가 올 것 같기도 했어요."

정작 본인은 욕심이 없었다지만 모두가 그의 재능을 알아보았다. 2007년 초 두 달간 이어진 동계훈련에서 구자철은 '제주의 기대주'로 떠올랐다. 그러나 브라질 전지훈련에서 입은 팔목 부상이 K리그 데뷔를 미뤘다.

"조급한 마음이 들었죠. 저는 경기에 나갈 준비가 되어 있는데 경기에 나가지 못하니까. 그런데 주위의 선생님들이나 아버지께서 전혀 조급해할 필요가 없다고 위로해주셨죠. 그러면서 저도 부담 없이 '데뷔전을 빨리 뛰자'라는 생각보다는 '항상 준비만 하고 있자'라는 생각을 하게 된 것 같아요."

구자철은 4월 11일 컵대회 4라운드 인천과의 경기에서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컵대회-정규리그의 2연패에 빠졌던 제주는 신예들을 대거 발탁했고 그도 그 중 하나였다. 구자철의 K리그 데뷔전은 1-0 승리로 끝났다.

"인천월드컵경기장에 일찍 도착해서 그라운드 컨디션을 보러 나갔는데 다리가 떨렸어요. 기분이 좋고, 설레이고, 긴장감도 없고, 몸도 좋았고, 마음도 편안했고... 준비가 되어있다고 생각했어요. 또 욕심이 있었으니까, 놓치지 않고 싶은 마음이요."

"데뷔전을 90분 풀타임으로 뛰었다는 것에 대해서 감사하게 생각해요. 그리고 또 경기 출장하고 좋은 모습을 보여드리면서 계속 경기에 나갈 수 있었죠. 4경기쯤 됐을 때는 체력적인 문제를 느꼈어요. 정말 많은 걸 느꼈죠. 좌절 비슷한 기분이기도 했고 '방심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웨이트 트레이닝을 약하게나마 시작했는데 또 몇 경기를 뛰고 나니까 체력적인 부담이 오더라구요. 마음이 힘들어질 때쯤 데뷔골이 터졌어요. 운이 좋았다고 생각해요."

구자철을 설명할 때면 '나이답지 않다'는 표현이 따라붙는다. 볼을 소유하고 있을 때 보여주는 여유로움과 경기장의 공간과 동료 선수들을 폭넓게 활용할 수 있는 시야가 그의 장점이다. 어찌 보면 경험과 관록에서 나온다고 믿었던 미덕들이다.

"직접 뛰지 못하고 경기를 보면서 준비를 많이 했어요. 우리 팀 선수들이지만, 누구나 아쉬운 점은 있잖아요. 그런 부분을 보면서 '나는 저렇게 하지 말아야지'라고 생각했어요. 무엇보다 경기장에서는 자신이 없어도 자신있게 하려고 해요."

"고등학교 때는 공간 패스라던가 스루 패스가 많이 나왔고 내심 자신도 있었어요. 슈팅도 그렇고. 지금은 그런 부분이 제일 아쉬워요. 더 잘할 수 있는 데 그렇지 못해서요."

'나이답지 않게' 속이 깊은 대답이 돌아온다 싶었더니 일기 얘기를 꺼낸다. 구자철은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줄곧 축구 일기를 써왔다고 했다. 그렇게 차곡차곡 쌓인 일기가 이제는 그에게 보물 1호가 됐다.

"고등학교 때 처음 일기를 쓰기 시작했는데 그때는 기본적인 킥조차 안 됐어요. 미드필더인데 고민이 많았죠. 노력해서 되었다기보다는 자연스럽게 힘도 붙고 기술도 생기면서 나아진 것 같아요. 스피드나 순발력도 그랬어요. 느리기도 하고, 고등학교 때는 빈혈이 심해서 운동장을 뛰면 다른 아이들에 비해서 처지는 편이었죠. 지금은 따라 뛸 수 있는 정도는 돼요."

"요즘 일기에 가장 많이 쓰는 건 '웨이트 트레이닝하자'는 거. 상대방과 부딪히면 밀리거나 하는 건 아니에요. 그런데 뛰면서 아쉬운 부분이, 파워가 좀 있으면 더 좋은 상황을 만들어낼 수 있는 장면이 많은데 힘이 달리다 보니 공간 침투라던가, 알면서도 못할 때가 있어요. 경기 끝나고 모니터링할 때 '더 좋은 찬스를 만들 수 있었을 텐데' 아쉬움이 남아요."

욕심이 많다고 하자 "저 욕심 많아요"라며 웃음 섞인 대답이 돌아왔다. 모처럼 맞은 3주간의 휴식기 역시 잘 보내고 싶단다.

"준비를 잘하고 싶어요. 우선 휴식을 취하고 나서 많이 먹고. (웃음) 살을 찌워서 웨이트 트레이닝을 좀 강하게 하고 싶어요. 경기가 있을 때는 지장이 있는데 지금은 여유가 좀 있으니 활용을 해야죠. 파워를 붙이고 체력적인 부분을 끌어올리고 싶어요."

올 시즌 목표를 묻자 역시 오랫동안 생각해 온 듯한 대답이 돌아왔다.

"6강 플레이오프에 가고 싶어요. 한 경기 끝날 때마다 순위를 찾아보는데 순위가 떨어지면 슬프고 한 단계라도 올라가면 기쁘죠. 반드시 6위 안에 들어서 플레이오프를 치르고 싶어요. 또 언론에서 하태균 선수에 대해서 '신인왕 단독 질주'라고 보도가 나오는데, 저도 욕심이 있어요."

새로운 별이 떴다. 축구팬들은 마음이 설렌다. 열여덟, 젊다기보다는 어린 이 선수가 어떻게 자라날 것인가. 수많은 별이 명멸하는 것을 보아 왔다. 선뜻 구자철의 미래를 점치기는 힘들다. 그저 그의 말을 믿는 수밖에 없다.

"팀이 어려울 때, 필요할 때 하나씩 해 줄 수 있는 선수가 되고 싶어요. 믿을 수 있는 선수, 감독님이 신뢰하고 출전 기회를 줬을 때 그 기대에 부응할 수 있는 선수요."

마지막으로 제주 팬들에게 한 마디를 부탁했다. 돌아온 대답은 구자철의 꿈이기도 했다.

"혼자 생각을 해요. 제주도는 육지와도 지리적으로 떨어져 있고, 특별한 곳이잖아요. 그런 곳에 프로팀이 있고 도민들이 경기장을 찾아와서 팀을 응원해주고 그런 모습을 보고 싶어요. 언젠가는 꼭 제주 도민들이 축구에 열광하고 우리 팀에 열광하시면서 많은 응원을 보내주실 거라 믿어요."

                                            <박상준 제주유나이티드FC 홍보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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