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3-29 17:52 (금)
'거침없이 하이킥을 하고 싶다'
'거침없이 하이킥을 하고 싶다'
  • 윤철수 기자
  • 승인 2007.05.05 08:44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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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논단] '거침없는 순재'와 '4050 낀세대'
# 한의사인 순재는 우연히 인터넷에서 의료법 개정과 관련한 덫글 논쟁을 보고, 노트에 미리 적어둔 자신의 생각을 '독수리 타법'으로 의견을 올린다. 그러나 계속된 반박이 이어지자, 화가 난 순재, 결국 악성리플을 달게 된다. 명예훼손 혐의로 출두해달라는 경찰 전화가 걸려오자, 순재는 온 식구를 불러모아놓고 대뜸 누가 나 대신 경찰에 갔다오겠느냐고 묻는다. 한명한명 슬금슬금 자리를 빠져나가고, 결국 윤호가 순재를 대신해 경찰서에 갔다오게 된다.

#한밤 중, 경보기 오작동 때문에 놀란 식구들은 급하게 밖으로 빠져 나온다. 하지만 그 시각 화장실에 있던 순재는 미처 빠져나가지 못한다. 자신만 두고 도망을 친 식구들 때문에 마음이 상한 순재는 천하에 불효막심한 놈이라며 유독 준하를 구박한다.


최근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는 드라마 '거침없이 하이킥'의 장면들이다. 이 드라마를 즐겨본다는 한 40대 가장은 복잡하게 얽힌 인간사슬에서 최고 자리를 차지한 듯 보이는 순재(이순재)의 '거침없는 행동'에 푹 빠졌다고 한다.

집안의 가장인‘순재’는 사회에서 경제적 지위가 꽤 높은 한의사다. 세상에 어떤 것이든 거침없이 휘두르고 떵떵거리며 살 만한 위치다. 그러나 그는 며느리보다는 한수 아래로 비춰진다.

가부장적이고 남성 우월적인 성격이지만 몸이 이미 늙었다. MP3, PMP, DMB 같은 첨단 디지털제품이 쏟아지고, 밖에 나가면 마음이 편하기보다는 오히려 긴장의 연속이다. 그가 하이킥을 날릴 장소는 좁은 집안 밖에 없다. 실제로 순재는 집안에서 아들을 향해 발길질을 해댄다.

40대와 50대 가장들은 거침없는 하이킥을 날리는 순재의 돌발적 행동에 매료된다. 아마도 그것은 부러움일 수 있다. 차라리 집에서라도 하이킥을 제대로 한번 날릴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4050세대 가장들의 소원은 아닐까.

'거침없이 하이킥' 드라마를 즐겨보는 중년층 가장들과 얘기를 나누다보면 순재의 거침없는 하이킥에 속이 후련해진다고 한다. 카타르시즘을 느낀다는 사람들도 많다. 그래도 '거침없는 순재'는 환경이 나은 편이라고 얘기하는 사람도 있다. 적어도 순재는 '끼어있지' 않기 때문이다. 연배서열로 보면 1위다.

신세대 문화와 구세대 문화에 어중간하게 끼인 40대와 50대 가장들은 현실을 서글퍼한다. 이들은 소위 '낀세대'로 불리운다.

'낀세대'는 아버지의 발언권이 절대적인 전통적 가정문화에 익숙하지만 자식들의 신세대 문화에도 적응하려고 노력하는 40, 50대를 말한다.

5월 가정의 달을 맞아 '낀세대'의 사회적 특성을 담은 언론보도가 잇따르면서 40대와 50대 가장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해보게 한다.

남성들은 고달픈 직장 생활에 자녀 교육비와 가족 부양까지 떠맡으며 힘겨운 생활을 한다. 그러나 자녀 교육 등 중요한 가정사에서는 여성의 발언권이 강하고, 남성은 아이들에게서도 외면당하기 일쑤다.

한때는 5월 가정의 달에 있어 어린이날과 어버이날에는 '오늘만 같아라'라는 헤드라인이 즐겨 쓰였다. 하지만, 올해 가정의 달에는 어린이와 어버이보다는 4050세대, 즉 '낀세대'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부쩍 높아진 듯 하다.

직장에서는 조기퇴직 압력과 과다한 업무하중으로 아등바등 일에 매달리며 살아야 하고, 집에 들어가면 월급봉투를 털어 부모님 챙기랴, 애들 챙기랴, 시원찮은 주머니 사정으로 주눅들어 하는 '낀세대'. 이들에게  스트레스를 풀어주는 게 고작 소주와 삼겹살이라는 한 의식조사결과가 더욱 마음을 무겁게 한다.

멀티미디어시대로 통하는 요즘, 4050세대 가장들이 '거침없는 순재'를 보며 매료되는 것은 어쩌면 지극히 당연한 것일런지 모른다. 직장에서는 주눅이 들지만, 가정에서 만큼이라도 당당하게 가장의 지위를 누리며 솔직한 자기표현으로 살아가고 싶다는 생각은 '낀세대'의 가장 큰 바람일 것이다.

어린이날에는 아이들을 위해, 어버이날에는 부모님을 위해 호주머니 모두 털어 아등바등 하는 '낀세대'. 그들이 위안받을 수 있는 것은 정녕 '삼겹살과 소주'밖에 없는 것일까.

<윤철수 / 미디어제주 대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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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는 말씀 2007-05-05 13:38:09
잘해야 본전인 것 처럼 보여서 아쉽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회사와 집. 참 단순한 세상에서 복장하게 살아가고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