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4-19 07:39 (금)
“10년 전 타당성 없다는 결론이 났는데 왜 도로 만들죠?”
“10년 전 타당성 없다는 결론이 났는데 왜 도로 만들죠?”
  • 김형훈 기자
  • 승인 2017.10.18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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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 넘게 화북을 지키는 강두옥씨 “어느날 갑자기 추진되고 있다”
4.3 아픔 지닌 화북지서 터에 세워진 돌창고도 사라질 위기에 처해

제주시 원도심을 살리자고 난리다. 흔히 말하는 원도심은 제주성이 있던 중심지역을 일컫고 있다. 그렇다면 다른 지역의 오래된 길은 원도심이 아닌가. 제주성내가 아닌 다른 지역도 물론 원도심이 있고, 원도심이라는 타이틀을 지녀야 한다. 그런 점에서 최근 제주시 화북동 지역을 중심으로 일고 있는 주민들의 ‘옛길 지키기’ 의지는 원도심에 대한 새로운 사고방식을 요구하고 있다.

 

사람들은 길이 확장되면 ‘풍요’로 귀결되는 걸로 착각하는 경우가 많다. 이건 예전의 사고방식이다. 흔히 그리드라고 불리는 격자형 도로체계가 그런 착각을 불러일으키게 했다. 제주시가 화북동 지역에 추진하는 ‘제주 NEW 삼무형 주거환경관리사업 정비계획’도 예전 사고방식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화북동에서 50년 넘게 살고 있는 강두옥씨는 제주시에서 추진하는 주거환경관리사업이 어느날 갑자기 추진됐다며 문제를 제기했다. ©미디어제주

 

태어나서 지금까지 화북동을 지키고 있는 강두옥씨(54)는 행정이 벌이는 작금의 행태를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한다.

 

“이것만이라도 남겨야 하는데 바둑판처럼 잘라내면 화북의 이미지는 없어져요. 오히려 (온전히 남아 있는) 화북진성을 복원해서 화북을 알리는 게 낫죠.”

 

잠잠하던 화북에 요동이 일기 시작한 건 지난 5월이다. 느닷없이 도로 개설을 한다는 주민설명회가 열렸다. 당시 주민설명회를 모로는 주민도 많았다고 한다.

 

“어영부영 넘어가려 해요. 주민설명회를 모른 사람도 있어요. 사실 이 구역은 오래 전에 타당성이 없다고 결론이 난 곳입니다. 10년이 지난 시점에 왜 그러는지 모르겠어요.”

 

10년전에 확장된 화북 마을 안길. ©미디어제주
화북의 아름다운 옛길. 사업이 진행되면 위의 사진처럼 확장되고, 이런 옛길은 사라진다. 강두옥씨가 정겨운 화북의 옛길을 바라보고 있다. ©미디어제주

 

이 일대 주변은 10년 전에 도로 개설의 광풍이 불었다. 구불구불한 골목길은 사라지고 가로세로 격자형 골목이 새로 생겼다. 도로를 확장하면서 예전 모습은 없다. 하지만 강두옥씨가 사는 주변지역은 도로를 낼 타당성이 없다는 결론이 내려지면서 사업은 물건너간 상태였다.

 

“시청 도시재생과에서 하는 것인지, 아니면 도로를 내달라는 민원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어느날 갑자기 추진되고 있어요. 올해 예산에 관련 예산이 없었는데 도청 예비비로 쓴다는 말도 들었어요.”

 

그의 말을 빌리면 갑작스레 진행되는, 그야말로 ‘졸속추진’ 아니냐는 뜻이다. 이런 개발은 있을 수 없다는 주민들은 뜻을 모았고, 반대 서명을 벌여나갔다. 600여명의 서명을 받았다. 화북에 사는 주민 200여명과 나머지는 관광객이다. 관광객들이 옛길 보존에 뜻을 함께했다.

 

“관광객들도 옛길에 대한 인식을 하고 있습니다. 올레꾼들이 골목이 예쁘다며 사진을 찍어요. 그런 분들이 도로 개발에 반대를 하고 있어요.”

 

사라진 골목은 많다. 사라지고 나면 후회해도 소용없다. 강두옥씨는 개발 이후를 경계하고 있다. 그는 도로개설이 좋지 않다는 걸 익히 알고 있어서다.

 

“길이 생기면 주차장이 될 뿐입니다. 여긴 응급차나 구급차가 다 들어오는 길입니다. 주거환경 개선이라는 데 환경개선을 할 게 없는 곳이라고요. 있는 골목을 망가지게 하면서 길을 낸다고요?”

 

꼭 새로운 길이어야 할까. 시간도 변하고, 사람들의 인식도 변한다. 하지만 행정은 10년 전 개발방식이나 지금의 개발방식이나 변하게 없다.

 

“새 길을 내면 마을은 없어집니다. (행정은) 주거환경의 의미가 뭔지도 몰라요.”

 

그는 길이 뚫릴 경우 마을에 있는 용천수이면서 기억의 공간인 큰짓물도 사라지지 않을까 우려한다. 여기에다 제주시내권에서 가장 큰 돌집도 사라질 위기에 있다. 화북마을 재산인 돌창고는 4.3의 아픈 기억을 지닌 제주경찰서 화북지서 터이기도 하다. 화북 사람들에겐 아무런 죄없는 사람을 무참히 학살했던 화북지서와 관련된 곳에 돌창고가 있기에 더더욱 돌집을 바라보는 감회가 다르다. 돌창고는 정미소로도 쓰였고, 의용소방대의 활동무대로, 농협비료창고로 쓰던 곳이다.

 

강두옥씨는 도로 개발이 되면 큰짓물도 언젠가는 사라질 수 있다며 우려를 전했다. ©미디어제주
4.3의 아픔을 간직한 화북지서 터에 세워진 돌창고. 제주시내에서 이런 규모의 돌창고를 보기는 힘들다. 하지만 도로계획에 포함돼 있어 뜯어내야 한다. ©미디어제주

 

돌창고는 현재 미술가인 이승수 작가가 8년째 빌려 쓰고 있다. 이승수 작가 역시 이런 개발에 반대의 뜻을 비쳤다. 그는 최근엔 화북 바닷가에 대한 기억을 작품화하고 있다. 조선소의 남겨진 터에서 나온 오브제를 통해 변해가는 제주의 이야기를 하려 한다. 그의 말을 들어본다.

 

“건물이 그대로 있으면 좋죠. 보존 가치가 있는 건물이기에 그대로 놔두고 여기를 문화적 공간으로, 화북사람들이 소통하는 공간으로 만들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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