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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크리트 도심 한복판에 있는 초가는 무척 중요”
“콘크리트 도심 한복판에 있는 초가는 무척 중요”
  • 김형훈 기자
  • 승인 2017.10.08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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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의 이야기] <4> 유일하게 남은 ‘박씨초가’
초대 제주읍장 지낸 고 박명효씨 생가…7대째 지켜

한짓골은 말 그대로 ‘긴 길’이다. 제주성의 남북을 관통하는 가장 긴 길로, 예전엔 제주성 남문에서 북쪽으로 걷다보면 관덕정 광장과 마주하게 된다. 워낙 긴 길이었기에 위·아래로 나눠 부르기도 했다. 웃한짓골과 알한짓골로 나눠 부른 길이 한짓골이다.

 

한짓골은 동맥이었다. 한짓골을 중심으로 여러 도로가 이어졌다. 지금은 중앙로가 생기면서 예전 중심의 명맥은 찾을 수 없지만 그렇다고 그 영광이 아예 사라진 건 아니다. 지난 기획에서 설명했듯이 한짓골은 제주시 3개 동을 가르는 중심점이다. 일제 당시 지도에서도 확인된다. 일도동·이도동·삼도동이 여기서 갈라진다. 지금은 일도1동과 이도1동, 삼도2동을 가르는 길이 한짓골이다. 그런 의미에서 한짓골은 여전히 동맥이다.

 

길은 아무런 생각없이 걷기도 하지만 사람이 사는 곳이라면 달라진다. 사람이 사는 공간이라면 집을 말한다. 다른 말로 풀어쓰면 건축이 된다. 건축은 사람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생명요소이기도 하다. 길에서 주목을 해야 하는 공간 가운데 건축을 빼면 뭔가 허전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건축은 담과 담이 빽빽하게 붙어 있는 건물의 나열도 있고, 건물과 건물 사이에 숨 쉴 틈을 주기도 한다. 한짓골은 예전부터 도심의 중심이어서인지 건물과 건물의 틈은 많아 보이지 않는다. 한짓골에서 살짝 벗어나긴 했으나 주목할 건축물 하나를 소개하고자 한다.

 

웃한짓골(한짓골의 남쪽)에서 동쪽으로 난 샛길이 있다. 몰항골이라고 부르는 골목이다. 한짓골은 차량 소통이 가능하지만 몰항골은 걸어서 다녀야 제 맛이다. 그만큼 좁은 골목이다. 몰항골은 직선 도로도 아니고 활처럼 휘어져 있다. 웃한짓골에서 동쪽으로 포물선 형태를 그리며 난 도로가 몰항골이다. 말방아가 있던 항아리 모양으로 굽어서 ‘몰항골’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도 한다.

 

제주시 원도심의 유일한 초가인 '박씨초가'. ©미디어제주

 

여기에 ‘박씨초가’가 있다. 도심에서 초가의 모습을 찾는 건 어렵다. 때문에 박씨초가가 주는 의미는 크다. 시내 외곽이나 읍면으로 가면 초가로 지붕을 인 집이 간혹 눈에 띄긴 하지만 도심은 초가를 벗어던진 지 오래됐다. 제주도내 초가는 1970년대 새마을운동으로 1차 정리가 됐고, 그나마 도심에 남아 있던 초가는 제주 첫 대규모 스포츠행사였던 1984년 전국소년체전을 앞두고 정리가 된다.

 

박씨초가는 이런 와중에도 살아남았다. 박씨초가는 흔히 ‘박판사네’로 불려왔다. 박 판사는 고(故) 박창택 판사를 말한다. 그는 초대 제주읍장과 북제주군수를 지낸 고(故) 박명효씨의 큰아들이다. 그런데 현재 박씨초가는 박명효씨의 둘째아들인 고(故) 박창우씨의 며느리가 지키고 있다. 바로 안순생 할머니다. 1923년생인 그는 이 일대의 역사를 오롯이 지키는 인물이기도 하다. 우리 나이로 95세이지만 여전히 정정하다.

 

박씨초가는 7대째 이 땅 위에 있다. 300년이 됐다는 뜻이다. 인물도 많이 나왔다. 초대 제주읍장 박명효씨의 생가로, 초가로 온전히 남길 가치를 지닌 곳이다. 특히 지난해 ‘최순실 특검법’의 특별검사로 임명된 박영수 특검이 박창택 판사의 막내라는 점도 눈여겨 볼만하다.

 

박씨초가는 1923년생인 안순생 할머니가 지키고 있다. ©미디어제주

 

안순생 할머니는 박영수 특검의 아버지인 박창택 판사가 이 집의 밖거리에서 살았던 기억을 떠올렸다. 안순생 할머니는 안거리를 지키며 해마다 자신의 상복을 준비하고 있다. 안순생 할머니가 이 집을 떠난다면 다음은 누가 지켜줄까. 행정이 살짝 관심을 표명하기는 하지만 원형 그대로 보존을 해줄지는 의문이다. 안순생 할머니와 그의 딸은 원형보존의 필요성을 누누이 강조했다.

 

<김형훈 기자 / 저작권자 ⓒ 미디어제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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