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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수변공간인데 제주와 마르세유는 왜 다를까”
“같은 수변공간인데 제주와 마르세유는 왜 다를까”
  • 김형훈 기자
  • 승인 2017.09.15 15: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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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에서 배우다] <7> 건축물이 지니는 파괴력
건축가 문영하씨 “도시는 자기만의 풍경을 지녀야”
마르세유의 대표적 건축물인 뮤셈. 콘크리트로 만든 외벽은 마치 지중해의 산호를 닮았다. ©김형훈

 

스페인 빌바오는 구겐하임미술관의 도시이다. 흔히 도시재생의 대표 사례로 꼽는 게 빌바오 아니던가. 프랑스 마르세유는 어떨까. 앞서 기획에서 두 차례 마르세유를 탐방했다. 20년간 도시재생을 해온 마르세유에도 분명 도시재생을 대표하는 게 있을텐데.

있다. 빌바오가 구겐하임으로 대표된다면, 마르세유는 ‘뮤셈’(마르세유 지중해 박물관, MuCEM)으로 불리는 강자가 있다. 마르세유라는 도시의 이미지에 이처럼 맞아 떨어지는 건축물이 있을까 싶다.

# 마르세유에 세계적 건축가들이 찾는 이유는

뮤셈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하기 전에 마르세유에 작품을 떨어뜨린 건축가는 누구인지를 살펴보는 것도 중요하다. 프랑스 출신은 아니지만 프랑스 건축의 최고봉, 아니 근대건축의 아버지로 불리는 르 꼬르뷔지에의 작품이 마르세유에 있다. 자하 하디드, 노먼 포스터, 구마 겐코 등 이름만 들어도 감탄사를 뱉는 그런 건축가들의 작품도 이 도시에 있다.

마르세유에 그들의 이름을 남긴 세계적 건축가들. 건축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프리츠커 수상자도 이들 가운데 포함돼 있다. 달리 말하면 이름만으로도 주변 건축물을 압도시키는 그런 건축가들이다. 그런데 왜 세계적 건축가들이 마르세유를 찾을까. 마르세유를 사랑해서? 아니다. 마르세유는 ‘유로메디테라네’라고 불리는 대규모 도시재생을 통해 각종 건축 프로젝트를 수행해왔다. 결과물은 바로 세계적 건축가들을 불러 모았고, 그런 작품들이 인종을 떠나 세계 각국의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유인책이 되고 있다.

뮤셈도 그런 프로젝트로 탄생한 건축물이다. 이탈리아계 프랑스인 루디 리치오티의 작품이다. 앞서 거론한 건축가들에 비해 귀에 덜 익었지만 오히려 그의 작품은 가장 마르세유를 닮았다.

마르세유 지도. 생장요새(2)와 뮤셈(3)은 옛 항만인 뷰포트(1)와 가까운 곳에 위치해 있으며, 수변공간을 어떻게 활용하는지를 보여준다. 옛 건물을 그대로 살린 졸리에트 지구의 레독(2)도 지도에 보인다.

 

뮤셈은 유로메디테나레의 핵심 사업 가운데 하나이다. 유로메디테라네는 크게 국제비즈니스·서비스 지구, 해양문화여가지구, 멀티미디어 문화산업지구 등 3가지 지구로 나눠볼 수 있다. 국제비즈니스·서비스 지구는 앞선 기획에서 소개한 ‘레독’이 있는 졸리에트 지구 일대이다. 멀티미디어 문화산업지구는 기자가 가보지 못한 벨트메 지구를 말한다. 나머지 한곳인 해양문화여가지구는 ‘뷰포트’라고 부르는 마르세유 옛 항구와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지구로, 옛 시가지가 펼쳐져 있다.

# 마르세유는 박물관 ‘뮤셈’의 도시

‘레독’으로 대변되는 졸리에트 지구는 있는 걸 그대로 살려냈다면, 뮤셈이 위치한 해양문화여가지구는 아무 것도 없는, 바다를 메운 땅에 새로운 건축물을 던져뒀다. 대표적인 게 뮤셈이다. 뮤셈 이전에 세워진 다양한 건축물이 있지만 뮤셈이 등장하고 나서는 모든 시선이 뮤셈에 쏠리고 있다.

바다를 매립하기 전에 이곳엔 생장요새가 오랜 기간 마르세유를 지켜왔다. 옛 항구 진입부에 세워진 이 요새는 마르세유의 포인트다. 2600년의 역사를 지닌 마르세유의 상징 가운데 하나가 곧 생장요새이다. 역사성을 지닌 마르세유 대표 건축물과 새로 들어서는 건축물은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할까. 답은 조화에 있다. 생장요새와 뮤셈은 전혀 다른 건축물이지만 서로를 업그레이드시켜준다. 베이지색의 찬란한 생장요새와 검은색의 뮤셈은 어울리지 않아 보이지만 서로에게 친근감을 주게 만든다. 그렇게 만든 건 뮤셈이 내세운 건축적 요소에서 찾아야 한다. 뮤셈은 지중해 바닷가에서 흔히 보이는 산호의 모습을 가져왔다. 뮤셈이라는 네모난 건축물을 감싸고 있는 그물같기도 한 산호모양의 콘크리트 건축이 압권이다. 콘크리트 그물을 통해 들어오는 빛은 마치 지중해 바다를 닮았다. 게다가 뮤셈에서 생장요새까지, 생장요새에서 뮤셈으로 다리를 놓았다. 걸어서 오가게 했다. 건축은 홀로 있지 않다. 건축은 주변요소와 잘 맞아야 한다. 건축이 어울리지 않는다면 그야말로 풍경의 파괴이다.

서로 다른 건축물이지만 조화를 잘 이루는 뮤셈(왼쪽)과 생장요새. 다리로 두 건물을 잇고 있다. ©김형훈

 

뮤셈은 프랑스 수도인 파리에 반항을 한 첫 건축물이기도 하다. 프랑스는 국립박물관을 파리 외에 두지를 않는다. 분관 형태로 두기는 하지만 단독으로 국립박물관을 만들지는 않았다. 뮤셈은 프랑스의 그런 사고를 깬 첫 국립박물관이다. 그래서 의미가 더 크다.

# 건축가 문영하씨 “조금씩 바꿔나가야”

마르세유를 직접 둘러본 제주의 젊은 건축가 문영하씨는 제주와 다른 프랑스 풍경을 봤다고 한다.

“우린 풍경을 자주 얘기합니다. 도시의 풍경을요. 도시마다 다른 풍경이 있어야 하는데 제주에 있는 풍경이나 서울이나 뉴욕이 같다면 정체성은 없다는 말이겠죠. 도시 건축에서 한꺼번에 바꾸려고 하면 풍경은 깨지고 맙니다. 있는 것을 조금씩 바꿔야 합니다.”

도시에서의 풍경을 강조하는 건축가 문영하씨. ©김형훈

 

그의 말은 대규모 개발은 육지에 있는 것이나 제주에 있는 것이나 같은 모양이 된다는 우려가 아닐까. 자기만의 풍경, 지역만의 풍경의 필요성을 그는 재차 강조했다.

“뮤셈은 하나의 전략입니다. 도시재생 전략이죠. 마르세유는 옛 도심을 확 바꾸지 않았어요. 침을 놓듯 주요 건축물을 하나씩 툭툭 세워둡니다. 서두르면 시행착오를 겪을 수밖에 없는데, 마르세유는 조금씩 변화를 시키면서 그들만의 도시재생 전략을 완성했다고 봐요.”

제주도는 마르세유처럼 수변공간이 있다. 매립으로 숱한 논란을 부른 탑동이 바로 수변공간이다. 그런데 탑동이라는 수변공간을 지닌 제주와 뮤셈이 위치한 수변공간을 둔 마르세유는 딴판이다.

# 마르세유처럼 공공 성격 공간은 시민에게 돌려줘야

“제주와 비교해 봅시다. 제주시 탑동광장을 보세요. 마트가 있고 호텔이 있고, 그런 것들이 즐비합니다. 마르세유를 보세요. 그런 공간은 없고 뮤셈과 같은 국립박물관이 사람을 끌어모으잖아요. 우린 공공 성격을 지녀야 할 공간에 상업시설을 담았지만 마르세유는 그렇지 않아요. 이왕이면 이런 공간은 시민에게 돌려줘야 합니다.”

뮤셈에서 바라본 수변지구. 제주시 탑동과는 달리 상업공간은 없다. 대신 박물관 등 주민들을 위한 공공 공간으로 쓰이고 있다. ©김형훈

그러면서 그는 도시를 재생하려면 사람이 와서 살게 만들어야 한다고 덧붙인다.

“마르세유는 저층은 상업공간이면서 그 위층은 주거공간이 많습니다. 일하는 곳과 사는 공간이 가까우면 도심은 되살아나겠죠. 한가지 더 말씀드린다면 원도심을 재생한다고 마스터플랜을 짜고 하는데, 건물 신축은 최소화해야 하겠죠.”

같은데 다른 풍경. 제주와 마르세유다. 같은데 달라진 이유는 문영하 건축가의 말 속에 녹아있다. 이쯤에서 마르세유의 도시재생인 유로메디테라네가 내건 목표의 일부를 음미해보겠다. 도시재생으로 삶의 질은 나아졌는가, 도시는 정비가 됐을까. 아울러 도시재생으로 경제발전도 됐는지. 제주의 도시재생도 이렇게 진행되고 있는지 곰곰이 생각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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