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4-20 10:04 (토)
“소규모 공간이 많이 생겼으면 좋겠어요”
“소규모 공간이 많이 생겼으면 좋겠어요”
  • 김형훈 기자
  • 승인 2017.09.14 10: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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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의 이야기] <2> 원도심의 주인은 누구
원도심 주인이 아닌 이들을 위하려는 순간 파괴 길 걸어
이디아트 양동규 대표 “5년 전보다 거리가 많이 밝아져”

삶이 편해져서일까. 편한 삶을 추구해서일까. 튼튼한 두 발로 이동하기보다는 네 바퀴에 의존하는 경향이 늘었다. 어떻게 하면 네 바퀴를 달고, 건물에 고대로 진입하기만을 원할까. 좀 더 먼 곳에 자동차를 세워놓거나, 아니면 걸어서 갈 수도 있는데 말이다.

 

걷는 일상이 자동차로 바뀐지는 오래지 않다. 네 바퀴에 익숙해진 삶은 길을 바꾸고, 결국은 도심을 바꾸고 있다. 도시계획도 그렇고, 건물 설계도 그렇다. 사람들은 두 발을 대접하기보다는 네 바퀴에 굽실거린다.

 

# 두 발보다 자동차에 압도당하는 도심

 

길 위에서는 수많은 이야기가 있는데, 그걸 제대로 듣지 못하고 스치는 경우가 허다하다. 두 발로 걸으려 하지 않아서다. 갑자기 이 사람이 떠오른다. 도시계획가이면서 사회운동가이기도 한 제인 제이콥스다. 그가 강조했던 말이 있다. 그는 우리가 걸어다니는 거리는 늘 안전하게 이동이 가능해야 한다고 했다. 또한 서로 만나며 소통이 가능하도록 하는 게 거리라고 했다.

 

제주시 원도심의 한짓골. 예전 소라다방이 있던 건물 앞에서 남쪽으로 바라본 모습이다. ©미디어제주

 

우리 거리는 어떤가. 엊그제 제주시 화북동 마을 사람들이 제기한 건 매우 신선했다. 도로를 넓혀주겠다는 걸 하지 말란다. 화북동 사람들은 왜 그럴까. 이유는 명확하다. 주변에 가로·세로 격자형 도로로 넓히는 걸 봐왔고, 그걸 통해 도로 확장의 문제점을 파악했기 때문이다. 화북동 사람들은 당장의 돈 가치가 아닌, 미래를 위해서는 있는 길을 남겨두는 게 상식이라고 느껴서다.

 

원도심. 제주시 중심부에만 있는 건 아니다. 단지 제주시에 있는 원도심이 예전 도심의 ‘핵중의 핵’이어서 다른 원도심에 비해 더 관심을 받고 있다.

 

길 위의 이야기는 걷고 싶은 거리 위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는다. 이쯤에서 원도심은 누구의 것인지를 생각해보자.

 

# 원도심 주인 아닌 이들이 ‘눈독’

 

원도심에 관심을 쏟는 이들은 무척 많다. 우선은 행정이다. 특별법도 있기에 돈을 쏟아붓는다. 새 정부는 더 애착을 갖는다. 사업가들도 원도심에 관심을 들인다. 그들에게는 ‘관심’보다는 ‘눈독’이라는 표현이 낫겠다. 원도심을 매개로 사업을 해서 돈을 왕창 끌어 모으려는 심산을 가진 이들도 있다는 말이다. 그들은 원도심 주인일까? 아니다.

 

원도심 주인은 그 도심에 사는 사람이다. 몇 대에 걸쳐 살고 있는 이들이 원도심 주인이다. 그렇다고 그들만 원도심 주인으로 여겨서는 안된다. 원도심을 회복시키려 세들어 사는 사람들도 원도심 주인이다. 방랑객은? 여행객은? 관광객은? 그들은 원도심 주인이 아니다. 방랑객을 위해, 여행객을 위해, 관광객을 위해 원도심의 그림을 짜는 순간 원도심은 파괴된다. 돈독에 올라 세입자를 내쫓는 일이 발생한다. 흔히 말하는 ‘젠트리피케이션’이 나타난다.

 

어쩌면 제주시 원도심도 그렇게 될지 겁난다. 제발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길 바라며 이 기획은 길 위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원도심을 지키는 청년 이디아트 대표 양동규씨. 원도심에 자신의 갤러리와 같은 소규모 공간이 많이 만들어지길 바라고 있다. ©미디어제주

 

첫 편에 만난 ‘풍류’의 젊은이는 세입자다. 그럼에도 길을 변화시키는 데 일익을 하고 있다. 이번에 만날 사람도 세입자다. 물론 젊다. 1978년생 양동규씨다. 우리 나이로 하면 마흔, 만으로 따지면 30대이다. 그는 ‘이디아트’를 운영한다. 한짓골의 중심에 해당하는 옛 남양문화방송국 주변에 있는 건물에 있다. 혹시 ‘소라다방’이라고 알지 모르겠다. 1970년대 학창시절을 보낸 이들에겐 소라다방에 얽힌 추억이 줄줄이다. 클래식 전문 다방이었던 이곳에 아디아트가 들어서 있다. 사진 전문 갤러리다.

 

# 김택화 부조로 보이는 작품 옛 소라다방에 새겨져

 

“다방이었죠. 임대해서 들어와 있어요. 사진가는 아니지만 사진작업을 하고 싶어서 여기에 임대를 한 겁니다. 갤러리 겸 사무실 용도로도 쓰고요.”

 

세입자다. 그것도 원도심을 택했다. 예전 작업 공간을 뒤로 하고 원도심을 고른 특별한 이유라도 있을까.

 

“집세가 저렴했기도 했죠. 2012년 여름인데 당시 원도심 분위기는 살아나려는 초반이라고 할까요. 이왕할거면 원도심에서 해보자고 해서 여기를 택했죠.”

 

이디아트 내부에 있는 부조 작품. 예전 소라다방이었을 때 서양화가 김택화씨의 부조 작품이라는 얘기도 흘러나온다. ©미디어제주

그런데 그는 예전 다방을 리모델링하면서 고(故) 김택화의 작품으로 보이는 부조를 발견했다고 한다. 김택화는 제주의 대표적인 서양화가다. 이디아트 사무실의 기둥엔 정말이지 부조가 있긴 하다. 서양화가 김택화씨의 부조라면 당연히 가치가 있다. 만일 그의 작품이라면 원도심의 새로운 포인트가 될만도 하다.

 

김택화 부조인지의 여부는 좀 더 연구가 필요하다. 어쨌거나 양동규씨가 터를 닦은지 5년의 세월이다. 양동규 대표는 원도심을 활성화시키자는 이야기가 막 나올 때 입성한 원도심 주인이다. 그 시간만큼이나 원도심은 변했을까.

 

“5년 전은 (밤에는) 깜깜했죠. 많이 밝아졌어요. 좀 더 바란다면 소규모 공간이 많이 생기면 좋죠.”

 

양동규 대표는 서귀포 출신이다. 한라산을 넘어 북쪽에 정착했다. 그것도 원도심이라는 아주 낯선 곳이다. 그의 말처럼 이젠 원도심도 밝아지고 있다. 그와 같은 이들이 더 온다면 원도심은 어떻게 변할까. 원도심의 주인인 그들이 쫓겨나지만 않는다면 좋으련만. 늘 대규모 자본의 탐욕이 호시탐탐 노리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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