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3-29 21:53 (금)
아직 채점을 안 했습니다
아직 채점을 안 했습니다
  • 홍기확
  • 승인 2017.08.28 15: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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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아빠의 특별한 감동]<148>

지난 3월부터 한자와 한문, 중국과 한국의 문화, 역사, 철학에 관한 인문학 강의를 진행하고 있다. 매주 목요일 두 시간의 짧은 강의지만 만족도가 높다. 하지만 무엇보다 무료강의임에도 수강생들의 열정이 가득하다. 성과로 지난 7월에 있던 아동한자지도사 자격증 시험에 응시한 수강생 전원이 합격의 영광을 누렸다.

7월 상반기 강의를 마치자 다른 강의를 개설하라는 수강생들의 열화와 같은 성원(?)과 압박, 회유, 협박이 있었다. 이에 하반기에도 한자한문지도사 2급과 한자급수 2급을 동시에 취득할 수 있는 강의를 개설해 강의중이다.

 

수강생의 나이는 40대부터 50대 후반으로, 남녀노소 퍽이나 다양하다. 그들의 삶이 궁금했다. 그래서 첫 수업에 자기소개와 함께 왜 이 강의를 들으러 왔는지 수강생마다 일일이 돌아가며 듣는 시간을 가졌다.

수강생 모두가 나보다 나이가 많은 만큼 수강동기가 멋들어진다. 주로 오롯이 자기만의 시간을 가지고 싶어서라는 동기가 많았다.

다음은 지난 강의에 한자를 공부하고 부수적으로 자격증을 취득한 분들의 한결같은 답변. 나이가 들어 운전면허증 이후로 자격증을 취득하니 공부에 욕심이 생겼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한 분은 조금 독특했다.

 

“저는 다른 분들과 달리 아무 생각 없이 왔습니다.”

 

나는 피식 웃으며, 영국의 비평가 토마스 칼라일의 명언을 얘기해 주었다.

 

‘길을 가다가 돌을 만나면 약자는 걸림돌이라고 하고, 강자는 디딤돌이라고 한다.’

 

그리고 덧붙였다.

 

“2014년 일본의 인구 10명중 7.5명은 40대 이상입니다. 2020년이 되면 40대 이상은 10명중 8명이 됩니다. 이제 일본에서 어른이라고 하면 40대 정도 되도 어른 축에 끼지 못합니다. 한국은 일본보다 고령화가 더 빨리 이루어지고 있다고 하죠? 나이가 실례지만 어떻게 되시나요? 이제 겨우 어른 된지 10년밖에 안 되었고, 앞으로 50년은 더 사셔야겠네요!”

 

아직 채점이 끝나지 않았다.

 

100세 시대다. 은퇴하는 50~60대는 한참의 나이다. 40~50년을 더 살아야 한다. 채점은 눈을 감는 순간 끝난다. 그때까지는 태어나 시험지를 받고, 문제를 열심히 풀고 있을 뿐이다.

나이가 이미 많다고? 앞서 말한 일본, 그리고 미래의 한국을 생각해보자. 아직 답안지 제출시간은 멀었다. 무언가를 하기에 이미 늦었다고? 『배짱으로 삽시다』로 유명한 이시형 박사의 새로운 책, 『인생, 참 멋있다』라는 책의 글귀를 떠올려 보자.

 

‘운명은 출발점이지 결승점이 아니다.’

 

시대상황과 가정형편 때문에 하고 싶은 공부를 못했을지라도, 결승점처럼 끝난 것이 아니다. 단순히 출발이 늦었을 뿐이다.

TV를 보지 않지만, 다큐멘터리는 챙겨보는 편이다. 태국의 오지를 여행하는 다큐멘터리에서, 외국어대 태국어통번역학과 교수님이 멋진 말을 한다.

 

“청바지! 제가 좋아하는 건배사입니다. 청춘은 바로 지금부터!”

 

그리고 덧붙이는 말이 심금을 꽈당 울린다.

 

“오늘은 내게 주어진 인생의 가장 젊은 날입니다.”

 

앞서 ‘아무 생각 없이’ 강의를 수강한 분은 앞의 두 말을 열심히 받아 적었다. 그리고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수업을 나오고, 질문도 가장 많이 한다. 이런 소소한 기쁨에 두 시간을 위한 열 시간의 강의준비에도 기쁨의 수고를 자처한다.

아직 내 인생의 채점은 끝나지 않았다.

새로운 시험은 계속되고, 시험지는 끊임없이 제시된다.

하지만 올 한 해도 주어진 시험지에 풀 수 있는 답들이 늘어 간다.

 

 

평범한 아빠의 특별한 감동

홍기확 칼럼니스트

2004~2005 : (주)빙그레 근무
2006~2007 : 경기도 파주시 근무
2008~2009 : 경기도 고양시 근무
2010 : 국방부 근무
2010년 8월 : 제주도 정착
2010~현재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근무      
수필가(현대문예 등단, 2013년)      
서귀포시청 공무원 밴드 『메아리』회장 (악기 : 드럼)      
저서 : 『평범한 아빠의 특별한 감동』, 201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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