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 위해 재미를 없앴는데, 여전히 위험한 놀이터
안전 위해 재미를 없앴는데, 여전히 위험한 놀이터
  • 김형훈 기자
  • 승인 2017.08.22 08: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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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공간이 우선이다] <3>제주지역 놀이터 살펴보기 -‘안전’의 관점에서

차도와 연결되는 위험천만한 놀이터 출입구

이동 시선 가리는 키 큰 '나무 울타리' 문제

유해물질 내포한 형형색색 시설물 건강 위협

 

택지개발사업을 통해 판박이처럼 만들어진 주변의 놀이터들. 형형색색의 페인트로 외형은 화려하지만, 막상 발을 들여놓으면 ‘만국 공통’의 놀이시설 몇 가지뿐이다. 단조롭고 삭막한 이 놀이터들. 그럼 안전은 어떨까.

 

# 놀이터에 반영된 사회의 시선

 

지난해 국제 놀이터 심포지엄(전남 순천)에서 만난 ‘놀이의 과학’의 저자 수전 G.솔로몬은 “전 세계 놀이터를 찾아가보니 놀이터는 해당 사회의 가치와 태도를 반영하고 있었다”고 회상했다.

 

그의 설명을 참고하면, 제주를 포함한 한국의 놀이터들은 ‘개인주의’형으로 볼 수 있음직하다. ‘집단주의형’으로 분류되는 북유럽 국가들이 놀이터에서 아이들의 다양한 활동을 장려하며 공동체적 경험 속에서의 삶의 기술을 강조한다면, 한국이나 미국과 같은 ‘개인주의형’ 국가들은 각자 알아서 스스로의 안전을 챙기며 소송에 휘말리지 않도록 조심하는 방식이다.

 

이런 개인주의형 국가의 놀이터들은 대개 자기 방어적이고, 지나치게 안전을 강조하느라 정작 놀이터의 목적인 재미와 성장에는 무관심하다고 그녀는 말한다. 그런데, ‘과도하게 안전을 강조하느라 재미의 요소를 없앨 수 밖에 없었던’ 우리 동네의 놀이터에도 위험 요소는 상존하고 있었다.

 

# 입구

 

지난해 문을 연 전남 순천시의 제1호 기적의 놀이터는 놀이터 입구를 S자형으로 설계했다. 아이들이 외부로 나가는 동선을 길게 만들어, 급작스럽게 차도로 뛰어드는 위험을 막기 위해서다.

 

지난해 문 연 전남 순천 제1호 기적의 놀이터 입구. 한 아이가 아빠의 손을 잡고 놀이터 밖으로 뛰어가고 있지만 길을 길게 만들어 위험하지 않다. ©미디어제주
제주지역 어린이놀이터 가운데는 출입구가 도로로 바로 연결되는 위험한 구조를 자주 찾아볼 수 있다. 사진은 제주시 노형동 놀이터의 모습. ©미디어제주

놀이에 심취한 아이들은 흥분한 상태로 뛰어다니는 경우가 많다. 놀이터 전문가들은 이러한 경우를 대비해 놀이터 출입구는 신속한 이동이 어렵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조언한다.

 

그러나 제주지역 주택가에 자리한 놀이터들은 입구가 차도와 바로 연결된 경우가 상당수다. 놀이터를 가로지르려는 어른들에게는 짧은 거리가 편리하겠지만, 정작 주 사용자인 아이들은 울타리를 벗어나자 자동차와 맞닥뜨릴 수 있는 위험한 상황에 항시 노출돼 있다.

 

# 나무 울타리

 

출입구를 길게 만들어야 하는 것과 같은 이유로, 나무 울타리도 아이들의 눈높이보다 낮게 관리돼야 한다. 놀이터 안과 밖에서 상대편의 움직임을 볼 수 있도록 나무 울타리가 막아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놀이터가 만 12세까지를 대상으로 한다고 할 때, 적어도 부모 없이 혼자 놀러다니기 시작하는 유치원 아이들의 키 높이 보다는 낮아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그러나 취재를 위해 찾은 연동과 노형, 외도, 도남 등 시내권 놀이터들에서는 성인 여성의 키보다 웃자란 나무 울타리들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었다.

 

# 바닥재

 

제주지역 거의 모든 놀이터들은 놀이기구 밑바닥 전체에 고무매트를 시공하고 있다. 추락사고시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다.

 

실제 놀이터에서는 추락사고 가장 잦기 때문에, 사고 시 피해를 줄일 수 있는 방안은 충분히 모색될 필요가 있다.

 

그렇다고 충격흡수의 기능을 고무매트만 해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모래, 낙엽, 톱밥, 콩 자갈 등 대안 재료가 있다. 독일 등 유럽에서는 고무매트보다 모래나 낙엽, 일정한 크기의 나무 조각이 더 흔하게 충격흡수재의 역할을 해내고 있다.

 

한국 놀이터의 단조로운 고무매트 바닥과 달리, 독일의 한 유치원 놀이터에 낙엽과 나무조각이 충격완화재의 역할을 하고 있다. ©미디어제주

추락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고무매트를 깔더라도, 모든 놀이터 바닥에 충격흡수재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 모래상자, 놀이 집과 같이 어린이가 놀면서 바닥에 서거나 앉게 되는 놀이기구는 탄력 있는 바닥재를 사용하지 않아도 된다.

 

행정은 모래보다 깨끗하고 안전하며 관리가 용이하다는 이유를 들어 고무매트를 선호한다. 하지만 고무매트 위에서 아이들은 매트를 뒤집을 수도, 분리할 수도 없다. 선을 그려 다른 놀이를 할 수도 없다. 고무매트는 바닥을 덮어버림으로써, 아이들의 중요한 놀이장소 중 하나를 제거해버린다. 모래의 부재는 놀이터를 더 삭막하게 만든다.

 

# 화학적 유해성

 

고무매트는 천연재료 외에도 합성고무 등 화학원료를 사용하기 때문에 환경 유해성 소지가 다분하다. 한여름 기온이 올라가면 직사광선을 받은 고무매트는 과도한 열기를 뿜어내며 온도를 끌어올리고, 불쾌한 냄새를 낸다. 마찰열로 인한 화상의 위험이 있고, 화학물질 방출이 더 커질 우려도 있다.

 

몇 년 전 한 소비자고발 프로그램에서 어린이놀이터 고무바닥재의 안전성을 점검한 결과 이황화탄소, 톨루엔, 에틸벤젠 등 유해물질이 배출됐다. 휘발성 유기화합물질을 방출해 아토피 피부염 등 피부질환을 유발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비슷한 시기 환경부 조사에서는 고무바닥재가 깔린 놀이터 대기에서 추출된 오염물질이 일반 대기에 비해 10배 높았고, 심지어 공단지역과 비슷하거나 공단지역보다 오히려 2~3배 높게 나타나기도 했다.

 

제주시와 서귀포시에 따르면 지난해까지 제주지역 어린이공원(놀이터) 고무매트 중금속 검사에서 불합격 사례는 없었다. 하지만 어린이공원 바닥재 중금속 검사는 학교 우레탄 검사(총함량검사법)보다 더 느슨한 용출시험법을 적용하고 있어 모든 놀이터 바닥재가 4계절 상시 완전 무해하다고 말하기는 어려웠다.

 

놀이기구의 페인트에서도 유해물질이 검출된다. 몇 년 전 환경부 환경정책실 유해물질과에서 전국 10개 지역 64개 실외놀이터를 대상으로 중금속 8종(구리, 크롬, 비소, 납, 카드뮴, 아연, 망간, 수은)의 오염실태 조사를 벌인 결과 방부목 놀이터, 철재 놀이터, 놀이시설 표면 등에서 기준치를 넘는 납과 비소 등이 확인됐다. 철재시설 표면 페인트의 납 농도가 2만7200mg/kg으로 미국 기준치(600mg/kg)보다 45배나 높은 곳도 있었다.

 

놀이터 구조물에서 묻은 유해물질은 입과 손, 호흡기, 피부 등을 통해 아이 몸속으로 흡수된다. 어린이들은 어른보다 물질 흡수율이 높아 같은 양에 노출되더라도 성인보다 더 많은 양을 흡수한다. 아이들은 신진대사가 활발해 소화기를 통한 납 흡수도 성인보다 3~7배 빠른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어린이 시설의 유해물질이 어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아이들에게 더 위험하게 작용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미디어제주 김형훈 기자, 제주매일 문정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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