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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개할망 본풀이’가 설문대할망 신화의 근거가 될 수 없는 이유
‘당개할망 본풀이’가 설문대할망 신화의 근거가 될 수 없는 이유
  • 미디어제주
  • 승인 2017.07.10 1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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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거짓투성이 설문대할망 신화 <9> 본론(本論) ⑧

구전으로 전해져온 ‘설문대할망’을 제주 창조 신화의 주인공으로 만들려는 움직임이 제주지역 학계를 중심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 글은 이처럼 설문대할망 이야기를 신화로 만들어가는 데 대해 관련 전공자인 장성철씨가 문제를 제기하고자 하는 취지의 반론적 성격의 글이다. 실제 제주대 국어국문학과 현승환 교수도 지난 2012년 ‘설문대할망 설화 재고’라는 제목의 논문에서 이 문제를 지적한 바 있다. 이번 연재 기고를 통해 설문대할망에 대한 활발한 논의가 다시 시작되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편집자 주]​

 

신화론자들이 설문대할망을 신화의 주인공이라고 주장하는 근거로 제시하는 <당개할망 본풀이> 내용을 보면 결코 당개할망을 설문대할망과 동일시할 수 없다는 점을 알 수 있다. ⓒ 미디어제주 자료사진

 

10. 심방[神房]이냐, 설화 연구가냐?

 

신화론자들은 아래의 [본문]을 두고 ‘설문대할망이 신화의 주인공임을 입증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럼, 이제 이 [본문]의 검토를 통해서 그들 주장의 시비(是非)를 가려보자. 한 편의 설화의 정체(正體)를 결정하는 것은 ‘화자(話者) 주장’이 아니라 ‘본문’이니까.

 

<당개할망 본풀이> : [본문] “당개할망은 아들이 일곱 성제우다.(아래의 [검토]에서는 A라 함) / 당개할마님이 저바당한집과 부베간인디,(B라 함) / 옛날옛적 할로영산에서 솟아나 귀신이 아닌 생인으로(C) / 한 가달은 성산면에 걸치고, 한 가달은 한라산 꼭대기에 걸쳐놓아 연서답을 허는디,(D) / 멩지 아흔아홉 동 페와 속옷을 만들었는데 강알을 가릴 한 통이 모자라 물멩주 한 통을 당하면 부산, 목포더레 다릴 노켄허난 그땐 인간에 멩주가 어디십니까. 우리 인간엔 그때 멩주가 개 어시난 우리 죽으믄 죽어도 멩주 한 필 내놓을 수 엇댄허난 부산과 목포 물 막은 섬이 되어비엿주.(E) / 그때는 천지개화기우다.(F) / 아들이 일곱 성젠디 다섯 성제는 할로영산 오백장군 오백선생 거두잡고,(G) / 아들 하나는 할망이 그때 시절에 가매에 물앚젼 죽을 쑤랜 핸 간 오란 보난 작은아덜이 죽을 쑤다가 죽에 빠젼 죽어 부렀어.(H) / 게난 작은아덜은 너무 부정이 만만허다. 너는 애 몰르고 목이 탈 테니 소섬을 차지허라.(I) / 할망이 파처시켜도, 다섯 성제가 할로영산 오백 선생 거두잡으난 수덕이 좋은 겁주. / 여기 표선리 한모살도 설맹디할망이 날라다 쌓은 거.(J) / 아들을 보내고 뒷녁날 아칙은 좌정처를 찾아 산터 보듯이 돌아보난에 그디(당개)가 앚아 좋댄 허난 좌정허여, 나고드는 상선 중선 만민자손 천석궁 만석궁 공자 맹자 다 거두잡고 잠녀들랑 거부케 허는 할머님.(K)” - (『표선리 향토지』, 표선리원로회, 1996, 154-155쪽)

 

[검토] * A에 대해서 : 설문대할망은 전설 본문에 의하면 자식 따위는 없고, 신화론자들에 의하면 아들이 오백 명이다. 그렇다면, 아들 일곱 명의 당개할망은 설문대할망일 수 없다.

 

* B에 대해서 : 설문대할망은 전설 본문에 의하면 남편이 없고, 신화론자들에 의하면 남편이 설문대하르방이다. 그렇다면, 저바당한집이 남편인 당개할망은 설문대할망일 수 없다.

 

한편, 이름 ‘저바당한집’(저 바다의 한집)은 아마도 “궤눼깃한집은 마흔 여덟 상단골, (후략)”(『제주도 신화』, 현용준, 249쪽)에서의 이름 ‘궤눼깃한집’(김녕리 궤눼깃당의 한집)에 착안한 것이리라. 제주 무격사회 중론은 ‘제주(특히 표선·토산·김녕·조천 등지) 굿당의 원류(源流)는 송당(松堂)이다’라 하고, <송당·궤눼깃당 본풀이>(위 책, 239-250쪽)는 ‘(여섯째) 아들 궤눼깃한집은 아버지[소천국(알송당)]·어머니[벡주또(웃송당)]를 능가하는 당신(堂神) 중의 당신이다’라 하니까.

 

* C에 대해서 : 설문대할망은 신화론자들에 의하면 한라산을 만들었다. 그렇다면, 한라산[할로영산←한라영산(漢羅靈山)]에서 용출한 당개할망은 설문대할망일 수 없다. 자신의 창조물로부터의 용출(聳出)이란 있을 수 없는 일이니까. 한편, C(한라산에서의 용출)는 ‘소천국 출처’(알송당 고부니마를, 한라산 동남쪽 기슭)와 ‘삼을나 출처’(모흥혈, 한라산 남쪽 기슭)에 착안한 것이리라.

 

* D에 대해서 : D는 종속절뿐인(즉, 주절 없는) 불완전한 문이다. 이는 문젯거리다. 설화(문학)는 문이 완전해야 하니까. 한편, D는 ‘설문대할망 전설들’ 중 ‘빨래하기’를 본뜬 것이다.

 

* E에 대해서 : E는 ‘설문대할망 전설들’ 중 ‘다리 놓기’를 본뜬 것이다. 그런데 E에는 ‘부산·목포’라는 한반도 특정 지명(地名)이 등장한다. 돌이켜보면, 지난날 탐라인들(탐라 민중)은 주로 곡물을 구하려고 ‘탐진’(오늘날의 ‘강진’)과 탐진강을 통해 나주(羅州)를 드나들었다. 그리고 그 시절 그들은 한반도는 어디를 막론하고 거의 습관적으로 ‘육지’라 불렀다. 그러고 보면, 특정 지명이 설화(민중 공동작)에 등장하는 것은 정상적으로는 있을 수 없는 일인 셈이다. 이는 여기서의 ‘부산·목포’는 위 [본문]이 지난날 탐라 민중에 의해 산출된 설화가 아니라 요즈음 일개인(또는 극소수 집단)에 의해 조작된 것임을 시사(示唆)하는 것일 수도 있다는 말이다. 첨언하면, 탐라에서의 설문대할망 설화 조작은 1950년대 후반부터 음으로 양으로 이루어져 왔다.

 

* F에 대해서 : 천지개화기? 天地開化期? 天地開花期? 도대체 무슨 뜻일까?

 

* G에 대해서 : G는 당개할망 아들 다섯 형제가 오백장군을 휘어잡았다는 말이렷다. 그럼, 당개할망은 설문대할망이 아니다. 신화론자들에 의하면, 오백장군은 설문대할망 아들이니까.

 

* H에 대해서 : ‘가매’(가마솥)는 철기시대 이후 산물이다. 그럼, 위 F의 ‘천지개화기’는 ‘철기시대 이후’란 말일까? 여하튼, 철기시대 이후는 부계중심사회에 속하고, 설문대할망은 신화론자들에 의하면 모계중심사회 소산이다. 이는 당개할망은 설문대할망이 아니라는 말이다.

 

한편, 신화론자 일부는 설문대할망이, 다른 일부는 설문대하르방이, 그리고 또 다른 일부는 아들이 죽 솥에 익사(溺死)했다고 한다. 왜 이렇게 분분할까? 설화 조작의 당연한 결과렷다.

 

* I에 대해서 : I의 ‘소섬 운운’은 <송당·궤눼깃당 본풀이>의 ‘소섬 관련 내용’[(전략) 소섬 진질깍으로 배를 붙였다. 소섬 모살내기로 올라 (하략).”(위 책, 246-247쪽)]에 착안한 것이리라.

 

* J에 대해서 : J는 삽입된 문이다. 이는 이 문을 없애야 문맥이 통한다는 말이다. 그러고 보면, 이 문은 당개할망을 설문대(설맹디)할망으로 위장(조작)하려고 삽입한 것인 셈이다.

 

* K에 대해서 : 뭐, [유림(儒林)과 상극(相剋)인] 본풀이가 ‘공자 맹자’를 휘어잡았다(거느렸다)고? 게다가, [민중의 소산인] 본풀이가 ‘해녀들’을 거부(배척)한다고? 언어도단이다. 물론 본풀이가 ‘해녀’(물질이 한때 이 땅의 생존조건이라 여자는 다 해녀였다) 곧 ‘민중’을 거부하는 것은 자기부정(自己否定)이다. 그러고 보면, K는 ‘위 [본문]은 본풀이가 아니다’라는 자백인 셈이다. 이는 위 [본문]은 기존 굿당에서 분가한 무격, 아니, 박수가 표선리 주민들(주로 남자 노년층)의 환심을 삼으로써 당개 해신당(海神堂)을 점유하려고 <설문대할망 전설들>과 <송당·궤눼깃당 본풀이>에서 몇몇 화소를 따다 생경하게 기워 놓은 ‘일종의 굿용(㖌用) 기도문’이라는 말이다.

 

본풀이는 문학(학문)이지 신앙(종교)이 아니다. 이는 본풀이 연구가는 심방이 아니라는 말이다. 부연 설명하면, 모름지기 맹신을 버리고 이성과 직관을 무기로 삼아야 한다는 말이다.

 

 

<프로필>
- 국어국문학, 신학 전공
- 저서 『耽羅說話理解』, 『모라(毛羅)와 을나(乙那)』(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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