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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 마케팅에 연연하다가는 모든 걸 다 잃어버려”
“장소 마케팅에 연연하다가는 모든 걸 다 잃어버려”
  • 김형훈 기자
  • 승인 2017.03.08 1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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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窓] 서문 복원 하지 않는다는데 도청 직제는 그대로
관련 공무원 “방침이 결정됐으니 조직개편 때 추진할 것”
행정은 도시재생을 하며 '장소 마케팅'에만 열을 올리고 있다. ©미디어제주

도시재생은 새로운 걸 만드는 작업이 아니다. 그럼에도 행정은 새로운 걸 가져다 심으려고 한다. 돈이 생겨서 그런 측면도 있고, 정치를 하는 이들은 하나의 장소를 부각시켜서 그걸 좀 더 돋보이게 하려는 의도도 있다.

제주시 원도심에 투입될 돈이 생긴 모양이다. 그래서 제주특별자치도는 그 돈을 쓰려고 안달이 나 있다. 돈을 쓰지 못할 경우 제주시 원도심 도시재생 구상이 완전히 구겨지기에 돈을 마구 투입하려는 냄새도 난다.

중요한 건 없는 걸 만들어서 있음직하게 보여주는 게 아니다. 로마시대의 아우구스투스라는 인물은 다들 알거다. 그는 공화정 원칙을 위배했다는 곱지 않은 시선을 받자 그걸 없애기 위해 시민들에게 올리브와 소금을 나눠줬다. 시민들에게 뭔가를 주면 시민들의 생각은 바뀌게 돼 있다. 시민들이 아우성을 치면 돈으로 쳐바르면 조용해진다. 그런 걸 ‘빵과 서커스’로 부른다.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시민들을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리게 하는 것이 ‘빵과 서커스’다.

제주시 원도심에 수백억원, 아니 수천억원에 가까운 돈을 투입하는 건 ‘빵과 서커스’에 다름 아니다. 이게 바로 대중들을 휘어잡는 사회통제 기능이다.

행정을 하는 이들은 ‘빵과 서커스’를 적절하게 사용함으로써 권력을 유지하며, 아울러 권력 유지를 더 돋보이게 하는 방법으로 ‘장소 마케팅’을 쓴다. 장소 마케팅의 대표적인 건 도시의 아이콘이 될 건축물이다. 건축물을 만들게 되면 ‘뭔가 했다’는 느낌을 강하게 주게 된다. 그래서 장소 마케팅은 새로운 이미지를 창출하는데 더 없이 좋다. 물론 행정의 입장에서다.

제주특별자치도가 ‘서문 복원’에 애를 쓰는 이유도 ‘빵과 서커스’ 전략의 일환이면서 ‘장소 마케팅’의 대표적 산물이 되기 때문이다. 새로운 건축물을 만들면 행정 입장에서는 자랑거리가 되고, 두고두고 자신의 업적으로 자랑하곤 한다. 제주시가 1990년대에 목관아를 만든거나, 김영삼 정부 시절 일제의 상징인 조선총독부 청사를 철거하고, 경복궁을 복원한 게 대표적이다.

원도심을 바라보면 도시재생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답을 구하고 싶어진다. 행정은 무조건 돈을 쏟아부을 생각만 하는데, 그에 앞서 가장 중요한 건 지역주민들의 생각이다. 지난 2일이다. 삼도2동주민센터에서 열린 ‘관덕정 광장 복원사업 관련 주민 간담회’ 자리에서 주민들은 관덕정 광장 복원 백지화를 제시했다. 행정은 그럴 수 없다고 버텼고, 주민들의 강한 요구에 당시 간담회에 참석했던 제주특별자치도 고운봉 도시건설국장이 두 가지 약속을 했다. 서문복원을 하지 않겠다고 분명히 얘기했고, 차없는 거리도 추진하지 않는다는 약속을 했다.

제주도청의 도시재생 관련 직제. 지난해 9월 주민을 대상으로 한 공청회가 열리기 전에 관련 직제를 만들어서 운용하고 있다. ©미디어제주

그러나 그 약속이 진실된 것인지는 물음표다. 제주도청의 직제를 보면 도시재생과의 업무 가운데 ‘관덕정 광장 및 서문 복원사업에 관한 사항’이 분명하게 적시돼 있다. 이 업무는 원도심에 대한 도시재생 전략계획이 확정되기도 전에 추진했다는 게 더 문제이다. 지난해 7월 제주특별자치도가 직제를 조정하며, 이 업무를 집어넣었다. 당시는 제주시 원도심 도시재생 전략계획이 나오기도 전이다. 관련 계획을 확정지으려면 주민을 대상으로 한 공청회를 여는 절차를 거쳐야 하는데, 그런 절차가 있기 전에 직제를 못박았다는 것도 웃기다. ‘도시재생 활성화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은 계획을 수립하려면 주민의 의견을 먼저 듣도록 하고 있다. 공청회는 지난해 9월 열렸는데, 공청회도 하기 전에 직제를 만들어 운용했다는 점에 의아할 수밖에 없다.

고운봉 국장이 “서문 복원은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주민과 약속을 했다. 도청 직제는 고쳐질까. 기자는 그게 궁금해 관련 공무원에게 물어봤다. 공무원의 답은 “사무분장이 조정돼야 한다. 방침이 결정됐으니 바꿀 것”이라고 답했다. 믿어보겠다.

<김형훈 기자 / 저작권자 ⓒ 미디어제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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