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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을 기증한 게 아니라 식물을 건네줬어요”
“사진을 기증한 게 아니라 식물을 건네줬어요”
  • 김형훈 기자
  • 승인 2017.03.05 13: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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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돌문화공원에서 ‘탐라신화’ 기획전을 여는 김순남 시인
들꽃 사진 1천점 비롯해 모든 작품 기증 약속…“내 생명 담은 것”

세상엔 눈에 잘 띄지 않는 게 많다. 자세하게 들여다봐야 제 모습이 보이는 것들이 넘쳐난다. 그걸 제주어로 옮긴다면 ‘째끌락하다’는 표현이 제격일 듯하다. 특히 오름에 오를 때, 자신의 발아래 무수히 짓밟혀도 언제 그랬냐며 다시 피어오르는 게 있다. 눈에 들어오지 않는 그건 바로 들꽃이라는 이름이다.

들꽃을 좋아하는 김순남 시인(64). 그는 아주 작은 들꽃마냥 작디작으면서도 세상에 큰 것을 던져주곤 한다. 이번엔 1000점에 달하는 자신의 사진을 제주돌문화공원에 기증했다. 모두 들꽃을 담은 사진들이다. 제주돌문화공원은 그 고마움에 오는 4월 16일까지 오백장군갤러리 기획전시설에서 ‘김순남 기증사진전-탐라신화’를 열고 있다.

제주돌문화공원에 들꽃 사진 1000점을 기증, 사진전을 열고 있는 김순남 시인. 그는 사진을 기증한 게 아니라 식물을 건네줬다고 말한다. ©미디어제주

김순남 시인은 들꽃마냥 작다. ‘째끌락하다’는 표현이 잘 어울린다. 또다른 제주어로 표현한다면 곱디고운 들꽃처럼 ‘곱들락하다’는 단어에 제격이다. 째끌락하면서도 곱들락한 시인 김순남. 그는 왜 들꽃일까. 이야기를 하자면 아주 젊은 시절로 올라가야 한다. 그는 철학에 빠져 있었다. 철학자가 되고 싶었다. 고향 경북 영덕에서 홀홀단신 제주로 들어와 이 산 저 산을 훑고 다녔다.

“그땐 백록담에서 야영도 하는 그런 시절이었죠. 빵과 우유만 들고 하루를 머물다가 가기도 했어요. 능선따라 돌다가 궤(동굴)가 보이면 잠도 자고…. 무서운 건 없고 슬펐죠. 감정에 푹 빠져 살던 때라서.”

그러다 그의 눈에 들어온 게 있다. 꽃이었다. 영덕의 산골 출신이어서 꽃은 그에게 무척 친숙했다. 그 꽃이 그에게 말을 건넸다.

“삶이 괴로워 사람들과 단절하며 지내곤 했는데 돌틈에 낀 들꽃이라는 그 생명이 위로를 해주는 겁니다. 꽃은 오로지 자기를 위해 색깔과 모양을 내지만 자유로운 몸은 아니잖아요. 대신 나는 자유로운데 괴롭고 힘들다고 하니, 그랬던 내가 부끄러워졌죠.”

꽃은 말했다. 괴로워말고, 힘들어하지 말라고. 그러다 1980년대 중반쯤 신용만 사진작가의 야생화전시를 보고선 꽃을 통해 삶의 이야기를 써보기로 마음먹는다. 꽃을 통해 글감을 배우고, 꽃을 통해 사진을 배워나갔다.

꽃을 찍은지 수십년이다. 꽃을 이야기 한 것 역시 수십년이다. 대체 들꽃은 몇 개의 이름을 가지고 있을까. 그는 들꽃의 이름을 세어 보려고도, 센 기억도 없다. 그래도 수천가지의 이름은 있지 않을까라고 한다. 수십년 그의 발길에 머물며 친숙해진 들꽃 사진은 왜 돌문화공원으로 갔을까.

“도청의 공보실에서 도정 홍보지를 내면서 돌문화공원을 취재하러 온 때가 있었죠. 자연을 살리면서 하는 공원조성 방법이 너무 좋은 거예요. 좋아하는 공원이기에 여기에 작품을 기증하게 됐고, 시인 스스로도 변화가 필요한 때라고 봐요. 한곳에 머물면 정체되잖아요. 새로운 곳으로 시선을 돌리고 싶은 생각도 있었죠.”

우선 1000점을 기증했다. 그걸로 끝은 아니다. 그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들꽃 사진을 모두 제주돌문화공원에 기증하기로 했다. 남은 작품은 4000점은 족히 넘는다. 그런데 그는 그의 들꽃을 사진작가의 사진으로 보지 말아달란다.

“사진작가들이 봤을 때는 작품이 아니죠. 들꽃 사진은 함께 살아가는 생명체를 담은 ‘나의 벗’이고, 깨우침을 줬기에 지켜내고 싶은 마음을 담은 겁니다. 오로지 삶의 이야기를 쓰고 싶었죠. 내 생명을 담은 것이기에 돌문화공원에 보관해달라고 했어요. 식물이기에 건네드린 거고요.”

매발톱 / 김순남 작.

그래서일까. 이번 김순남 작가의 기증사진전을 소개하는 글을 써준 시인 손세실리아씨도 사진을 향해 ‘시(詩)’라고 써붙였다. 들꽃을 담은 사진으로 바라보지 않고, 들꽃 하나하나에 시를 붙인 것이라고. 시인 손세실리아는 이렇게 말한다.

“시인이니 시로 쓰면 되지 웬 유희일까 심들렁하던 참인데, 사진전 기별이 와 걸음해보니 어디에도 사진은 없고, 아뿔싸! 액자마다 시가 걸려있지 않은가”

‘김순남 기증사진전’은 들꽃사진이지만 손세실리아의 말처럼 시가 읽힌다. 사진 하나하나가 시어를 품고 있고, 들꽃마다 시(詩)가 열려 있다. 들꽃이 담긴 시어를 읽고 싶다면 빨리 돌문화공원 오백장군갤러리에 들러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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