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필
술필
  • 홍기확
  • 승인 2017.02.27 11:22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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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아빠의 특별한 감동]<136>

 나는 이른바 ‘혼술족’(혼자 술 마시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벽을 보거나 아내를 보며 술 마시는 것이 좋다.(아내와 벽이 동격이라는 말은 결코 아니다!) 요리를 잘 하는 아내가 저녁마다 안주(아내는 항상 반찬이라고 어설프게 주장하는)를 준비해 주는 게 좋고, 아내가 늦게 오는 날에 혼자 꼼지락거리며 안주를 준비하는 게 즐겁다.
 물론 다른 사람과 마시는 것도 가물에 콩 나듯 좋다. 다만 다른 사람은 채용 공고에 나오는 ‘약간 명’만 좋다.

 혼술족은 결코 외롭지 않다. 나에게는 아버지라는 막강한 동포도 있다.
 아버지도 혼술족이다. 아버지가 지금까지 만난 사람보다 마신 소주병수가 더 많을 것이다. 소주병을 일렬로 세워 길을 만들면 제주올레코스 몇 개쯤의 이정표는 만들어질 테다. 혼술족의 원류며 추장(酋長)이다.
 사실 아버지와 둘이 술이 만취될 때까지 같이 마시면 우리는 서로 본인의 이야기를 한다. 나는 이 이야기. 아버지는 저 이야기. 상대가 듣던 안 듣던 생각 않는다. 어머니와 아내는 각자 마주보며 술이 떡이 되어 서로 다른 얘기를 해 대는 우리를 보고 배꼽을 잡으며 웃는다. 얼마나 유쾌한 혼술족 집안인가!

 생떽쥐베리의 소설 『인간의 대지』에는 멋진 글귀가 나온다.

"사랑은 서로 마주 보는 것이 아니라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것이다."

 마주 봐야만 사랑이 아니다. 아버지와 나는 비록 마주 보고 있지만, 술병이 놓인 같은 방향을 보고 있다. 그 뿐이면 충분하다.

 사실 나는 신문에 나오는 사람이나, 세상에 공헌하는 사람들과는 달리 지극히 역사의 중심에서 빗겨 서고 싶다. 드러나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나 관계의 중심에 서는 걸 좋아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나는 전혀 그러고 싶은 생각이 없다. 저는 빼 주세요.
 예전에는 세상 어딘가에 숨어 살면 죽림칠현(竹林七賢)이라고 멋진 이름도 지어주곤 했는데, 지금은 ‘왕따’, ‘폐인’, ‘방콕족’, ‘은둔형 외톨이’등 말도 잘 지어내면서 세상에 기어 나오라 한다.
 소설 『채식주의자』로 세계 3대 문학상 중 하나인 영국의 『맨부커상』을 수상한 작가 한강이, 평소에 가만히 있다가 상을 타니 쏟아지는 주변의 뜨거운 관심에 답변한 말이 좋다. 내 마음과 같다.

 “이런 자리가 모두 끝나면 최대한 빨리 내 방에 숨어들어 소설을 다시 쓰는 게 소란을 극복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일반적이고 표준적인 다른 인류보다 더 많은 관계를 맺고 그 속에 살고 있다. 세상이 나를 끄집어내는 실력이 보통이 아니다. 내가 어디에 있는지 모르게 살고 싶은데, 전 인류가 나만 부려먹으려고 기어코 찾아서는 들볶고 난리다.
 이렇게 세상이 나를 부려먹을 때나 생각이 복잡할 때는, 혼술을 하며 고즈넉함과 여유를 되돌려 받는다.
 그나마 다행히 기특한 세상은 절반의 음식은 생계를 위해 만들고, 나머지 절반의 음식을 안주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김치는 반찬이지만, 누워있는 김치를 프라이팬에서 뒤집으면 안주가 되는 것쯤은 우습다. 실수로 물에 빠뜨린 김치를 끓이면 김치찌개 안주가 되는 놀라운 광경도 펼쳐진다.
 
 혼술이 대세다. 아버지가 혼술을 할 때는 주변에서 알콜중독이라 했다. 내가 20대에 집에서 소주 두 병을 혼자 먹는다 하니, 알콜중독 초기증상이라 했다. 하지만 지금은 혼술족이 엄청 늘어났다. 언론에도 자주 나오고 혼술을 하는 프로그램도 TV에서 방영된다. 혼술 선구자의 일원으로 내심 뿌듯한 마음에 가슴이 벅차다.

 오늘도 고민이다. 한 잔 하긴 해야겠는데, 안주를 무엇으로 해야 할지 말이다. 안주인에게 판단을 의뢰해야겠다. 그래서 이 수필 제목도 알콜 향기 그윽한 ‘술필’로 한다. 이렇게까지 부연 설명했는데 아직도 제목을 이해 못하면 나도 어쩔 수 없다. 할 만큼 했다.

 

<프로필>
2004~2005 : (주)빙그레 근무
2006~2007 : 경기도 파주시 근무
2008~2009 : 경기도 고양시 근무
2010 : 국방부 근무
2010년 8월 : 제주도 정착
2010~현재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근무
수필가(현대문예 등단, 2013년)
서귀포시청 공무원 밴드 『메아리』회장 (악기 : 드럼)
저서 : 『평범한 아빠의 특별한 감동』, 201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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ㅋㅋㅋ 2017-02-28 16:33:43
참, 얖사브리하게 생겼다 ㅋㅋㅋㅋ

iuygo8ugpouih[ 2017-02-27 11:49:38
외지것이구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