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4-19 15:24 (금)
관계강요시대유감
관계강요시대유감
  • 홍기확
  • 승인 2017.02.20 10: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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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아빠의 특별한 감동]<135>

 정보화시대다. 빛의 속도로 바뀐다. 이제 무슨 4차 혁명시대라 한다. 1차 농업혁명, 2차 산업혁명, 3차 정보화혁명. 3차 정보화혁명을 아직까지 잘게 씹어 먹지도 못했는데, 벌써 4차 혁명을 준비하라 한다. 체하겠다.

 물론 3차 혁명까지의 결과로 세상이, 사는 게 편해졌다 한다. 15세기경 구텐베르크는 인쇄기를 통해 지식을 폭넓고 빠르게 인류에게 전달했다. 인류 최고의 발명인 세탁기로 인해 빨래에 대한 수고가 해결되었다. 이 뿐 만일까? 인터넷은 정보를 빛의 속도로 전파하고, 이 나라의 사람과 저 나라의 사람을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로 연결시켰다.

 하지만 단점도 있었다. 아낙네들이 모이는 빨래터의 정보공유와 마을공동체는 세탁기로 인해 해체되었다. 여기에 더해 에디슨이라는 악덕업주에 의한 전기의 발명은 인류의 노동시간까지 알차게 연장시켰다. 넘쳐나는 책은 인류에게 더 많은 지식을 요구하였다. 인터넷은 과잉 네트워크를 통해 인맥의 관리를 강요하였다. 사람들은 더 바빠지고, 가족과의 시간은 줄어들었다.

 이런 단점 중 무엇보다 큰 문제는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다. 사람과의 관계가 퍽이나 우스워졌다. ‘친구요청’내지 ‘리트윗’, ‘이웃 맺기’등의 강요는 인간관계를 얄팍하게 비웃으며, 우리에게 빠른 판단만을 강요한다. 친구로서 ‘O’냐 ‘X’를 몇 초 만에 결정하라 압박이다.

 중국 『당서(唐書)』의 ‘선거지(選擧志)’는 등용할 인물을 결정하는 데 필요한 조건을‘신언서판(身言書判)’ 네 가지로 제시한다. 풀어 말하면, 훌륭한 용모와 풍채가 있어야 한다는 ‘신수(身手)’, 정직하고 신실한 ‘신언(愼言)’, 문장과 글씨에 능해야 한다는 ‘문력(文力)’, 시대를 읽고 대처함에 익숙해야 하는 ‘판단력(判斷力)’을 뜻한다.

 신언서판(身言書判)의 중요도는 나열한 순서대로다. 당나라에서도 1차 필기시험은 서판(書判)이었고, 이후 2차로 면접은 신언(愼言)을 실시하였다. 지금의 공무원 및 자격증의 1차, 2차 시험과 크게 다를 바 없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사진 몇 장으로 용모를 판단하고, 말은 들어 본 적도 없고, 문장은 가벼운 블로그나 140자의 틀에 갇혀서 용단(?)이 어렵고,  판단력은 친구의 친구나 엄마친구아들정도의 정보만 제시하니 이것 참!
 세상이 마음에 들지 않고, 관계를 강요하는 각종 장치들이 밉기만 하다.

 인간관계가 가볍지만 빠르고, 또 복잡해지면서 상처받을 일들도 늘어만 간다. 소셜 네트워크의 친구요청을 뿌리치면 생채기가 나고, 올린 글들에 반응을 해주지 않으면 속상하다. 카톡 등 채팅을 빨리 확인하지 않는다고 갑자기 화를 내는 전화가 오고, 문자에 바로 답장을 하지 않았다고 절교를 하자는 둥 난리다.

 교제(交際)의 방식이 바뀐 것은 알겠다. 그런데 방식을 바꿀 의향이 없는 사람은 어떻게 할까? 하지만 알고 있다. 아무래도 4차 혁명시대에 교제방식의 변화는 기대하기 힘듦을 알고 있다. 4차 혁명 자체가 인공지능, 가상현실, 로봇, 사물인터넷 등에 의한 사회를 꿈꾸기 때문이다.

 깊이 사람을 알아가며, 눈빛만 봐도 감동과 교류의 전파가 흐르는 그런 멋진 사람을 몇몇 더 갖고 싶을 뿐이다. 스무 살 청년과 의형제를 맺고, 칠십 세 노인과 세상을 거만하게 비웃으며 세태를 논하는 그런 낭만적인 관계를 얻고 싶을 뿐이다. 슬픈 일이 있을 때 몇 글자 덧 글을 달아주는 십 만대군의 친구가 아니라, 그럭저럭 4인용 탁자에 모여 각자 소주 일병을 까며 한 호흡의 위로를 받을 수 있는 그런 몇몇 친구를 만나고 싶을 뿐이다.

 

<프로필>
2004~2005 : (주)빙그레 근무
2006~2007 : 경기도 파주시 근무
2008~2009 : 경기도 고양시 근무
2010 : 국방부 근무
2010년 8월 : 제주도 정착
2010~현재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근무
수필가(현대문예 등단, 2013년)
서귀포시청 공무원 밴드 『메아리』회장 (악기 : 드럼)
저서 : 『평범한 아빠의 특별한 감동』, 201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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