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시장, 급조한 정책으로 물의 일으켜... 공개 사죄하라"
"엄마, 우리 집 앞에 안 버리고 왜 여기까지 왔어?"
"시장님한테 '쓰레기 (배출제) 정책이 잘못 됐어요'라고 알리는 거야"
초등학생 딸을 데리고 온 장수영(40·제주시 아라동)씨는 클린하우스 앞에서 아이의 분홍색 책가방을 열었다. 그는 플라스틱 용기가 담긴 비닐봉투를 꺼내 수거함에 넣으며 아이의 투정에 답했다.
13일 제주시청 어린이집 옆 클린하우스에서 '쓰레기 산 만들기' 퍼포먼스가 진행됐다.
'쓰레기 정책에 분노하는 시민들'(이하 시민들)이 '생활쓰레기 요일별 배출제'에 저항하기 위해 마련한 '행동'이었다.
금요일 지정 배출 재활용 쓰레기인 플라스틱류를 클린하우스 수거함에 쌓아 그야말로 '산'을 만들자는 계획이었다. 페이스북을 통해 퍼포먼스 일정을 홍보하고,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를 이끄는 방식으로 진행했다.
'시민들'이 집중 배출시간으로 지정한 오후 6시경부터 '쓰레기 산'이 올라가기 시작했다. 일부 시민은 차량으로 플라스틱 쓰레기를 가져와 쏟아붓기도 했다.
'시민들' 일동은 선언문을 통해 "일반 시민들이 할 수 있는 작은 저항의 몸짓을 통해 마음속에 품은 제주시의 실적주의 전시행정을 향한 큰 분노를 드러내고자 한다"며 행동의 배경을 설명했다.
이어 "우리 시민들은 쓰레기 문제의 심각성에 충분히 공감하며 해결에 동참할 마음을 가지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행정이 상식에서 벗어난 돌팔이 같은 처방으로 분노를 사고 있다"며 제주시와 제주특별자치도를 규탄했다.
일동은 "고경실 제주시장이 요일별 배출제를 시행하는 과정에서 시민들을 의식이 뒤떨어져 행정의 계도를 받아야 할 대상으로 인식하고 시민들에게 모든 책임을 떠안기려 하는 점이 드러났다"며 "오히려 도정과 시정이야 말로 쓰레기 문제를 방치해 온 책임을 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일반 시민들의 자발적 저항 행동을 무시한다면 촛불이 횃불되듯 작은 불씨에 기름을 붓는 격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쓰레기 정책에 분노하는 시민들'은 이날 제주특별자치도와 제주시를 대상으로 요일별 배출제를 당장 철회할 것, 시민 모독 발언과 무리한 정책 추진으로 물의를 일으킨 고경실 시장은 공개 사죄할 것, 제주도는 쓰레기 문제에 대한 근본 원인 분석을 통한 합리적 대책을 수립하고 시민들의 협조를 구할 것을 요구했다.
이날 행사를 지켜본 제주시 한 관계자는 "시민 누구나 자신의 의견을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권리가 있기 때문에 이 퍼포먼스 자체를 부정적으로 생각하진 않는다"면서도 "다만 제주시의 입장도 열린 마음으로 들어줬으면 한다"고 아쉬움을 나타냈다.
한편 시민의 분노로 쌓은 쓰레기 산은 오후 8시가 되기도 전에 사라졌다. 평소에 비해 수거 차량이 일찍 다녀갔기 때문이다. 이 광경을 지켜본 주민 한 모 씨는 "보통 밤 늦게 쓰레기를 수거해가는데 오늘은 좀 일찍 왔더라"며 "아마 (제주)시에서 보기 싫으니까 빨리 치워가라고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시청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이도2동에 위치한 클린하우스는 평소와 다를 바 없이 쓰레기가 넘쳐흐르고 있었다.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은 시청 앞 클린하우스만 깨끗한 이유. 제주시의 전시행정은 여기서도 드러난다.
<조수진 기자 / 저작권자 ⓒ 미디어제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