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4-16 17:57 (화)
구경거리
구경거리
  • 홍기확
  • 승인 2016.06.08 09: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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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아빠의 특별한 감동] <122>

 일본인 작가 오카노 유이치의 책, 『페코로스, 어머니 만나러 갑니다』와 『페코로스, 어머니의 보물상자』를 읽었다.
 치매에 걸린 어머니를 이혼한 아들 혼자 모시는 감동적인 실화다.

 책 중 돌아가신 아버지의 환영이 말했다는 글귀가 마음을 적신다.

 “네 어머니 너무 구경거리로 만들지 마라.”

 아버지에 이어, 어머니가 병원에 실려 갔다. 너무 아파 스스로 119 구급차를 불러 갔다는 말에 속이 더 상한다.

 길가나 골목길에 보면 지팡이를 짚고 앉아 있는 할머니들을 본다. 사람구경을 하는 것이다. 외로운 것이다. 외로워 사람을 바라보는 것은 반대로 사람들이 그 한 사람을 바라본다는 것이다. 할머니는 구경을 하지만, 반대로 구경거리가 되는 것이다.
 힘들게 살아온 역정에 취미도 특기도 없는 어르신들이다. 놀고 싶어도 놀아본 적이 없는 어르신들이다. 이제는 세월의 무게에 짓눌려 앉아 있는 것이 도리어 편한 분들이다.

 어머니는 아마 구경거리가 되었을 것이다. 병원에 누워 있으면 보통 그렇다. 특히나 인생의 팔 할을 넘게 산 사람들이 병원에 있으면 더욱 구경거리는 심해진다.

 젊음과 늙음의 차이.

 물은 100도에서 끓는다. 젊음은 끓는 점 100도다. 이때는 당당하다. 다른 이들도 손이 델까 무서워 젊음을 건드리지 않는다.
 열을 가하지 않으면 물은 점차 식는다. 중년이다. 이때는 스스로 질문을 하게 된다. ‘나 지금 뜨거운가?’, ‘가열하면 다시 끓을 수 있을까?’ 다른 이들도 의아심을 갖는 건 마찬가지다. 뜨거운지 식었는지 확실치 않아 역시 건드리지 않는다.
 하지만 김이 나지 않는 늙음은 얘기가 아주 다르다. 다시 끓기에는 시간과 노력이 걸린다. 스스로도 포기를 한다. 다른 이들도 식은 것을 확신하기에 무시한다. 결국 다른 이들은 아무렇게나 거리낌 없이 대하거나, 물을 버려 버린다.

 신문에 누가 사망했다는 부고(訃告)란을 유심히 읽는 편이다. 과거에 쟁쟁했던 사람들이었지만 최근 10~20여 년간 족적은 알 길이 없다. 다만 짧은 한 줄의 부고란으로 죽음을 알린다. 아이가 어른이 되기까지 15~20년이 걸리는 게 보통인데, 과연 그들은 죽기 전까지 긴 수 십 년의 세월동안 무엇을 했을까?
 
 나이 60세를 넘기신 부녀회장님과 얘기를 하다가 나도 모르게 이런 말이 생각나 말했다. 《한씨외전(韓氏外傳)》에 나오는 말이다.

 ‘樹欲靜而風不止 子欲養而親不待(수욕정이풍부지, 자욕양이친부대)’

 나무는 고요하고자 하나 바람이 가만히 놔두지 않고, 자식은 봉양하고자 하나 부모는 기다려 주지 않는다는 뜻이다.
 부모님이 늙어가니 고장 나는 곳이 많다. 예전에도 여기저기 고장나 있는 상태였지만 그 강도가 점점 세지는 모양새다. 딱히 봉양을 하려 하는 것은 아니지만, 부모는 존재만으로도 든든한 존재다. 사람이 존재를 만든다. 그리고 그 존재감을 더 빛나게 하는 것은 사람이다.

 세월의 흐름을 막을 수는 없다.
 다만 자식된 도리로써 부모를 구경거리로 만들지는 말아야겠다는 생각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부터 존재를 빛나게 하는 다양한 방법들을 고민해야겠다. 많은 책을 읽고, 보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물어봐야겠다.

 이건 나만의 문제가 아닌, 세상 모든 자식들의 문제니까.
 아버지, 어머니 없는 자식은 없으니까.

 

<프로필>
2004~2005 : (주)빙그레 근무
2006~2007 : 경기도 파주시 근무
2008~2009 : 경기도 고양시 근무
2010 : 국방부 근무
2010년 8월 : 제주도 정착
2010~현재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근무
수필가(현대문예 등단, 2013년)
서귀포시청 공무원 밴드 『메아리』회장 (악기 : 드럼)
저서 : 『평범한 아빠의 특별한 감동』, 201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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