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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엔 도끼에 맞아 죽을 각오로 임금에 직언했다는데”
“조선시대엔 도끼에 맞아 죽을 각오로 임금에 직언했다는데”
  • 김형훈 기자
  • 승인 2016.05.24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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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窓] 정부 입맛에 100% 딱 들어맞는 누리과정 감사를 보며
교육부의 누리과정 홍보 동영상 중 일부. 누리과정은 교육감이 전액 편성해야 하는 의무지출 경비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감사원 감사 결과도 이와 다르지 않다.

오늘(24일)은 감사원 얘기를 좀 해야겠다. 감사원은 독립적 지위를 보장받는 기구이다. 감사원법을 들여다보자. 감사원법 제2조엔 ‘감사원은 대통령에 소속하되, 직무에 관하여는 독립의 지위를 가진다’고 돼 있다. 또한 감사원 소속 공무원의 임면이나 조직, 예산 등의 편성 역시 독립성이 최대한 존중돼야 한다고 감사원법은 강조한다. 감사원은 법처럼 진짜 그럴까.

감사원이 24일 누리과정과 관련된 감사 결과를 내놓았다. 17개 시도교육청을 대상으로 한 감사였고, 감사 시작부터 표적 감사라는 지적이 많았다.

표적 감사의 이유는 정부에서 추진하는 누리과정에 항명하는 시도교육청이 많았기 때문이다. 시도교육청은 예산 부족을 이유로 어린이집 누리과정 예산을 전액 반영하지 않거나, 일부 반영하지 않는 등 박근혜 정부가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누리과정 지원에 반기를 든 면이 없지 않았다.

시도교육청은 그뿐만 아니었다. 어린이집 누리과정 예산을 의무적으로 부담하도록 한 ‘영유아보육법 시행령’과 ‘지방재정법 시행령’ 등이 법률에 위배된다며 노골적으로 정부를 겨냥하고 나섰다.

이런 상황에서 감사원 감사는 시작됐다. 제주특별자치도교육청을 비롯, 전국 시도교육청이 감사 대상에 올랐다. 결과는 예상대로였다. 감사원은 결과를 발표하며 법률에 위배된다는 시행령은 전혀 문제가 없다는 결과를 내놓았다. 정부가 지금까지 얘기해오고 있는 것과 다를 게 전혀 없다.

그것까지는 참을만하다. 감사원이 내놓은 시도교육청의 활용가능 재원 현황을 보면 기가 찬다. 어린이집 누리과정을 일부 또는 전액 편성하지 않은 11곳의 교육청 가운데 재원이 부족한 곳은 단 한 곳도 없다는 결론을 도출해냈다.

감사원은 11곳 시도교육청 가운데 어린이집 누리과정 예산을 전액 편성할 수 있는 곳은 9곳이나 된다고 밝혔다. 제주도교육청도 여기에 포함됐음은 물론이다. 감사원이 내놓은 올해 4월 현재 재원에 따르면 제주도교육청은 자체재원과 정부지원, 지자체전입금 등을 포함하면 558억원이 생기고, 여기에서 의무지출 경비를 제외하면 457억원이 남게 된다고 한다. 제주도교육청의 어린이집 누리과정 편성부족액은 올해 4월 기준으로 382억원인데, 457억원에서 382억원을 제외하면 75억원의 여유자금이 생긴다는 결론이다.

앞 단락은 숫자가 많은데 다시 정리를 한다면 이것저것 쓸 수 있는 재원을 다 끌어모아서 어린이집 누리과정에 투입하면 75억원을 남길 수 있다는 말이다.

정말 그럴까. 제주도교육청이 75억원이라는 돈을 남기려면 457억원이라는 돈을 다른 곳에 쓰지 않고 전액 어린이집 누리과정에만 투입했을 경우에만 가능하다. 제주도교육청을 비롯한 시도교육청이 어린이집을 위한 교육청이라면 그럴 수도 있겠다. 그러나 교육청은 초·중·고교 학생들을 위한 기구이다.

결론은 이렇다. 감사원은 정부의 입맛에 맞는 결론을 내줬다고 볼 수밖에 없다. 앞서 감사원은 독립의 지위를 지닌다고 했는데, 이번 누리과정 감사결과를 들여다보면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조선시대엔 감사원의 기능을 하는 곳으로 사헌부와 사간원이 있다. 여기서 활동하는 이들을 대간(臺諫)이라고 불렀다. 그들이 어떤 사람이었는지 <조선왕조실록>을 들여다보자.

“무릇 대간이란 임금을 범하고, 임금의 위엄도 무릅쓰며 곧은 말로 항의를 해야 합니다. 부월(鈇鉞)에 이르더라도 마다하지 않는 건 제 집을 이롭게 하고, 제 한 몸을 이롭게 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국가에 유익하게 하고자 함이옵니다.”(태종실록 3권, 태종 2년 6월 14일 병인)

태종 2년이면 1402년이다. 인용한 내용은 사간원이 태종에게 상소한 글이다. 이 글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임금을 향하여 곧은 말로 항의를 하는 게 대관의 자격이라고 표현돼 있다. 대간은 그런 말에 죽을 각오로 책임을 진다. ‘부월’은 임금의 권위를 뜻하는 도끼로, 임금이 내리는 형벌이라는 말이다. 대간은 그런 형벌을 각오하고서라도 임금을 향해 할 말을 해야 한다고 소리치고 있다. 감사원의 역할도 대간이랑 다를 게 없다. ‘부월’에 맞아 죽을 각오를 하고서라고 제 역할을 해야 하는 곳이 곧 감사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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