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4-18 10:14 (목)
1만8000 신들의 고향 제주, “그 신들은 다들 안녕하실까요?”
1만8000 신들의 고향 제주, “그 신들은 다들 안녕하실까요?”
  • 홍석준 기자
  • 승인 2016.05.23 10:57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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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窓] 돌담 대신 시멘트 벽으로 둘러싸인 함덕 서물당을 보면서
함덕 서물당이 있던 자리에 빌라가 들어서면서 시멘트 울타리로 바뀐 함덕 서물당의 현재 모습. ⓒ 미디어제주 <홍석준 기자>

제주의 전형적인 바닷가 마을 중 한 곳인 제주시 조천읍 함덕리.

이 마을에 살던 한 노인이 낚시하기에 좋은 ‘서물날’(음력 11일, 26일) 낚시를 하러 갔는데 하루 종일 돌미륵만 낚시에 걸려 올라왔다.

다음 서물날에도 마찬가지. 결국 이 노인은 낚시를 접고 낮잠을 잤는데 꿈에 낚시에 걸렸던 돌미륵이 나타났다. 꿈 속에 나타난 돌미륵은 자신이 ‘용왕국의 무남독녀 아기’라며 “알가름 팽나무 아래 나를 모시면 가는 배 오는 배를 돌봐 낚시를 도와주마”라고 했다는 것이다.

깜짝 놀라 다시 낚시를 던져 돌미륵을 끌어올린 이 노인은 돌미륵이 얘기한대로 알가름 팽나무 아래 묻고 제단을 만들어 서물날마다 제를 올렸다.

진성기 제주민속연구소장이 기록해놓은 함덕 서물당의 유래에 대한 이야기다.

이 서물당이 있던 자리에 최근 빌라가 들어서게 됐다. 신당이 자칫 훼손될 수도 있는 상황이 되자 김성만 함덕리장이 나섰다.

김 이장은 <미디어제주>와 전화 통화에서 “신당이 있던 곳도 사유지에 포함돼 있어서 10평 정도만 기부해줬으면 좋겠다는 얘기가 나왔는데 기부하는 것보다 울타리 보수를 잘해줬으면 좋겠다고 해서 그렇게 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담이 허물어져서 울타리를 보수한 것일 뿐 안에 있던 돌미륵과 비석은 원래 있던 자리 그대로다. 지금도 누군가 와서 제를 지내고 가는 것 같다”고 전했다.

2년 전, 필자는 제주시 죽성마을의 설새밋당 신목 훼손 현장에 대한 제보를 받아 기사를 쓴 적이 있다.

물론 설새밋당의 경우 누군가에 의해 의도적으로 신당을 훼손한 경우였고, 이번 서물당은 신당이 있던 자리에 그대로 두고 울타리만 보수한 것이어서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다.

서물당은 지금도 마을 포제 때마다 이 곳에서 제를 지내고 있고, 집 안에 누군가가 아픈 사람이 있으면 심방이나 침 놓는 할머니를 모시고 와서 비념을 드리곤 했던 곳이라고 한다.

제주는 요즘 해안 지역 마을 뿐만 아니라 중산간까지도 곳곳에 도로가 나고 새로운 건축물이 들어서면서 하루가 다르게 들어서고 있다.

돌담으로 울타리가 돼있었던 함덕 서물당 입구의 원래 모습. ⓒ 미디어제주 자료사진
함덕 서물당에 모셔져 있던 돌미륵의 원래 모습. ⓒ 미디어제주 자료사진

함덕 서물당의 경우도 지난해 이맘때 처음 마주했을 때는 돌담 사이로 궷문이 있고 안에 제단이 모셔져 있었지만, 불과 1년 사이에 시멘트 칸막이가 돌담을 대신하게 됐다.

1만8000여 신들의 고향인 제주. 하지만 문화재로 지정돼 있는 곳은 송당본향당, 새미하로산당, 와흘본향당, 수산본향당, 월평다리굿당 등 5곳 뿐이다.

또 서귀본향당, 예래본향당, 강정본향당 등 3곳이 향토유산으로 지정돼 있지만 다른 신당은 대부분 마을 또는 읍면동 차원에서 관리가 이뤄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쯤에서 다소 생뚱맞은 생각이 든다. 그 1만8000여 신들이 모셔지는 공간은 아직 무사히 남아있을까? 그리고 그 신들도 모두 안녕하실까?

함덕 서물당이 있던 자리에 빌라가 들어서면서 시멘트 칸막이로 바뀐 함덕 서물당의 현재 입구 모습. ⓒ 미디어제주 <홍석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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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는 어디로~~ 2016-05-23 12:39:17
제주의 문화는 이제 어디로 ~~~개발도 좋지만 문화는 보전돼야 하는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