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볍씨 한알에 담긴 교육 철학 "아이가 곧 스승이죠"
볍씨 한알에 담긴 교육 철학 "아이가 곧 스승이죠"
  • 조보영 기자
  • 승인 2016.05.15 12: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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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최초 대안학교 광명 YMCA 볍씨학교 '제주학사'를 가다
‘생명이 자유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한 교사와 학생의 동반성장기
지난달 10일, 선흘리 기억공간 리본에서 진행된 세월호 행사 추모 행사에서 신명나는 풍물 놀이를 선보인 볍씨 학교 아이들.
제주시 조천읍 선흘리에 위치한 국내 최초 대안학교, 광명 YMCA 볍씨학교 제주학사

◇ 강정 마을, 제주4·3 추념, 세월호 추모 현장에서 마주친 ‘볍씨학교 아이들’

볍씨 학교를 처음 알게 된 것은 지난해 10월, ‘평화의 발자국’이라는 주제로 강정 해군기지 공사 현장에서 열린 ‘제주 국제 부토페스티벌’이었다.

‘암흑의 춤, 영혼의 춤’이라고 불리우는 부토의 퍼포먼스가 격정에 다다를 무렵, 그 영혼의 몸부림에 빨려 들어가 버리기라도 할 것 같은 간절한 여학생의 눈빛에 끌려 인터뷰를 진행했다.

볍씨학교 9학년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강희준(당시 16세, 중3) 양은 “멀리에서는 사람들의 움직임으로만 보였지만 가까이에서 보니 몸짓 하나하나가 의미가 있는 것 같고 동작 자체가 너무 아름다워서 넋을 놓고 보게 됐다”는 대답이 나왔다.

대다수의 관람객들이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인 부토의 퍼포먼스에 대해 희준 양은 자신만의 감상법으로 ‘아름답다’는 평을 한 것. 머리로 생각하는 대중들과 달리 마음으로 그들의 동작을 느낀 유일한? 또는 최연소? 관객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 볍씨학교 아이들은 부토 페스티벌의 유기농 장터에 참여, 농악 놀이를 선보이기도 했다.

아이들과의 만남은 그 후로 이어졌다. 지난달 열린 4.3문화예술축전의 ‘역사 맞이 거리굿’에서 아이들은 북촌마을의 주민으로 분해 열연을 펼쳤다. 세월호 추모 문화제에서는 참사의 비극을 몸짓 공연으로 승화시키고, 세월호 진실 규명에 대한 자유 발언으로 언론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볍씨학교 남학생이 손수 밥을 지어먹는 가마솥을 닦고 있다. 볍씨 학교는 '생명이 소중한 세상, 생명이 자유로운 세상'을 목표로 자연속에서 더불어 살아가는 자급자족 생활을 배운다.
볍씨 학교의 안거리는 아이들과 교사가 함께 지었다. 재활용품을 활용해 채광 효과를 높이고, 자연재료로 내부 단열재를 만드는 등 친환경적인 적정 기술을 사용했다.

◇ 최초 대안학교 광명 YMCA 볍씨학교, 제주에 둥지를 틀다

함덕 초등학교 선흘 분교 근처에 위치한 볍씨학교 제주학사에는 교실이 없다. 물론 학교 건물도 없다. 바꿔 말하면 아이들이 살고 있는 집 자체가 학교이고 교실이다. 볍씨 학교 아이들에게는 '집·옷·밥 살림’ 교육이 기초다.

최초 볍씨학교를 창립한 이영이(전 볍씨학교 교장) 제주학사분교장은 “볍씨 학교는 생명이 소중한 세상, 생명이 자유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한 교육"이라면서 “자연과 이웃과 더불어 살아가는 것을 법을 배우는 과정 속에서 ‘공동체’라는 개념이 생겨났다”고 설명했다.

'공동체'의 기초는 스스로의 '자립'이다. 볍씨 학교의 남자 아이들은 바느질을 배운다. 여자 아이들도 밭일을 한다. 밥도 직접 지어 먹는다. 기본 생계 활동을 가장 중심에 두고 인지와 예술 영역을 확장해나간다.

2001년 3월 14일에 개교한 볍씨 학교는 경기도 광명시에 본교가 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초등 대안학교로 유치원 과정인 풀씨 학교와 초‧중등 과정으로 진행된다. 중학교 3학년이 되면 제주 분교에서 1년의 자급자족 생활을 체험하고 졸업을 한다.

왜 하필 제주도였을까. 이영이 분교장은 “원래는 강원도 오지마을에 분교가 있었지만 화재가 발생해서 소실되고 말았다. 마침 요양차 우연히 제주도 동백 숲을 오게 됐는데 그때만난 주민들과의 인연으로 2013년에 이곳 선흘리에서 둥지를 틀게 됐다”고 말했다.

현재 제주 분교에는 중학교 3학년 과정 5명과 올해 졸업생 8명의 아이들이 함께 생활하고 있다.

아침 6시 30분 기상과 함께 아침 달리기, 저녁 시간 글쓰기와 나누기, 취침 전 108배 세가지 프로그램을 기본으로 하고, 나머지 시간은 공부와 각종 행사준비, 밭일, 아르바이트 등에 쏟는다. 핸드폰이나 인터넷 사용도 하지 않는다. 보고 들은 모든 정보를 공유하는 것이 원칙이다.

올해 초 볍씨학교를 졸업한 박진희(17세) 양은 “제주도에는 작년에 왔고 올해초 졸업을 했다. 원래는 졸업을 하면 끝이지만 여러분들 덕분에 잘 컸다는 것을  보여주고, 좀더 성장하고 싶은 마음으로 1년 더 남게 됐다”면서 "남은 기간 동안 진로 활동에 전념할 계획"이라고 당찬 각오를 전했다.

동네 삼촌과 이영이 제주학사분교장이 텃밭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모습. 볍씨 학교 아이들과 선흘리 주민들은 서로 크고 작은 도움을 주고 받으며 가족처럼 어울려 지내고 있다.
볍씨 학교 내 텃밭. 볍씨학교 졸업생 최해찬( 17세) 군은 밭일을 하면서 생명에 대한 소중함을 느끼고 자신과의 경계에 부딪치면서 성장해 나가는 훈련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 교육은 함께 학생과 교사가 함께 성장해나가는 것

개교 이래 교육 과정에서 변화가 있었다. 지식 기반의 공교육과 달리 ‘살림 수업’이라는 대안적 교육을 내세웠지만 교사 중심의 수업 방식을 그대로 유지하는 한 아이들의 자치성과 자발성을 키워내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2012년, 볍씨학교는 파격적인 실험을 강행했다. 교과 체계를 전면 폐지하고 한 학기 동안 아이들이 스스로 배움의 주제를 정하고, 커리큘럼을 직접 짜는 ‘큰 모임’ 과정을 만든 것.

일반학교를 다니다가 초등학교 3학년 때 전학을 왔다는 볍씨학교 9학년 오선영(16세) 양은 “1,2학년 때에는 공부에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볍씨학교를 다니면서 선생님들과 진실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시간적 여유를 갖다보니 이해의 폭이 넓어졌다”고 밝은 얼굴로 전했다.

그러면서 오선영 양은 “제주도에 온지 2개월밖에 되지 않았지만 지금까지 나를 꾸미고 있던 껍질이 많이 벗겨지고 있는 느낌이다. 생각보다 내가 훨씬 소박한 사람이었다는 것을 알게 됐다”면서 “또한 모든 활동들이 선생님의 강요가 아닌 내 선택이다보니 더 적극적으로 기회를 즐기게 된다”고 말했다.

볍씨학교 9학년인 오선영(16세) 양이 학교 마당에서 친구와 즐거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선영 양은 마지막 졸업 학년 동안 제주도에서 많은 체험을 즐길 수 있어 감사한 마음이라고 전했다.
볍씨 학교에서는 교사와 아이들의 경계가 없다. 함께 배우고 성장하는 교육의 주체이자 공동체의 일원으로 소통하며 살아가고 있다.

2009년부터 8년차 임현주 교사는 “처음에는 아이들을 가르쳐야 한다는 부담 때문에 미리 아이들의 커리큘럼을 예측해서 프로그래밍 해보기도 했지만 이제는 그조차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됐다. 어차피 그 예측대로 결과물이 나오지 않는다”며 환하게 웃었다.

임현주 교사는 “아이들과 일상 생활을 함께 하면서 나의 경계를 조금씩 넓히는 훈련을 하고 있다. 학생 뿐 아니라 교사도 함께 성장해야 한다”면서 “아이들이야말로 대단한 스승”이라는 말로 학생들에 대한 강한 애착을 드러냈다.

자연 속에서 자신의 몸과 마음을 키워내는 아이들과 그런 아이들을 통해 자신을 성장시키는 교사까지. 볍씨 한 알에 담긴 생명의 의미를 찾기 위해 서로의 눈과 귀가 되어주는 아이들과 교사들은, 이곳 제주에서 더 자유로운 배움의 싹을 틔워갈 것이다.

<조보영 기자 / 저작권자 ⓒ 미디어제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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