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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하면 학교를 즐겁게 다닐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학교를 즐겁게 다닐 수 있을까”
  • 김형훈 기자
  • 승인 2016.04.13 15: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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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훈의 동화속 아이들 <19> 김미희의 「리오는 학교에 가면 절대 안돼」
 

시간은 참 빠르군요. 새 학기를 맞은지 얼마 되지 않은 듯한데, 찬기운은 물러나고 벌써 더위가 스멀스멀 기어오르고 있군요. 시간의 흐름이긴 하지만, 시간은 왜 그리 빨리 가는 걸까요. 그러고 보니 나이를 먹은만큼 속도가 붙는다는 말이 틀린 것 같지는 않네요. 10대는 시속 10㎞, 20대는 20㎞……. 50대는 50㎞이고, 60대는 당연히 60㎞가 되는 거죠. 초·중·고교를 다닐 때가 10대였는데, 그 때는 정말 시간이 느리게만 느껴졌죠. 빨리 어른이 되고 싶다는 생각은 10대면 누구나 하는 것이었잖아요.

이젠 가속도가 붙고 있어요. 시속 50㎞대로 인생을 살고 있어요. 그래요. 글을 쓰는 제가 50대랍니다. 앳된 10대는 가물가물하고, 40대도 어느 순간 훌쩍 흘려보내고 말았어요. 이젠 50대인데, 나이와 시속과의 상관관계를 느낄 정도입니다. 이러다 60대가 되면 정말 순식간에 70, 80세가 될 것만 같아서 걱정이 되기도 하네요. 왜냐고요? 사람이란 수명이 있기 마련이잖아요. 그건 그렇고, 본론으로 들어가 볼게요.

새 학기를 표현하는 단어로는 뭐가 있을까요. 친구? 준비물? 사람마다 새 학기를 표현하라고 하면 저마다 다른 단어를 꺼낼 테죠. 다들 새 학기를 맞은 경험을 하나의 단어로 표현하라면 서슴지 않고 “이거다”라고 말할 수 있겠죠.

21세기에 초등학교를 입학한 이들은 자신들이 컸을 때 8살의 기억을 어떻게 표현할까요. 참 궁금해집니다. 저는 20세기 때 초등학교를 다닌 사람이어서 지금의 애들이 경험하지 못한 것들을 겪어봤어요. 어떨지 궁금하죠? 커다란 차이를 들라면 지금은 자유분방하다면, 예전은 규율이라는 틀에 얽매였죠. 예전엔 줄을 맞춰서 나란히 서야 했죠. “나란히”라는 구령이 떨어지면 자신의 손을 앞 사람을 향해 펼칩니다. 줄을 맞추는 거죠. 요즘은 그런 풍경은 없을 겁니다.

‘나란히’라는 구령만 있으면 섭하죠. 예전엔 정말 충격적인 모습이 있습니다. 입학하는 애들의 왼쪽 가슴엔 하얀 손수건을 달게 합니다. 코흘리개가 즐비한 예전엔, 왼쪽 가슴에 단 손수건으로 코를 닦도록 해둔 겁니다. 더럽다고요? 그 시절은 다 그랬어요. 다들 코흘리개였고, 코 밖으로 나온 이물질을 코 안으로 ‘후루룩’하며 흡입하는 풍경은 예사였습니다. 그러지 못하면 손목으로 코를 훔쳐내죠. 왼쪽 가슴에 단 손수건은 자신도 모르게 몸 밖으로 삐져나오는 콧물을 닦는 용도였어요. 못 먹던 시절엔 다들 건강상태도 좋지 않았다는 걸 왼쪽 가슴에 달린 손수건이 대신하고 있었죠.

하얀 손수건은 추억이지만 그 시절도 다시 돌아가라고 하면 그렇게 하고 싶진 않아요. 그리 좋은 추억이 아니잖아요. 좋은 추억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기억들도 많이 가지고 있으리라 봅니다. 저도 그런 사람의 하나였고, 학교에 가는 것도 썩 반가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낯선 환경에 적응을 해야 하는데, 쉽게 적응하지 못하는 성격 때문이었기도 하죠. 그나마 요즘은 이것저것 취학 프로그램도 있고, 유치원이라는 과정이 잘 되어 있기에 예전처럼 학교에 적응을 하지 못하는 경우는 많지 않죠.

제가 잘 아는 작가 중에 동화와 동시를 쓰는 김미희 작가가 있어요. 제주 출신이죠. 얼마전 초등학교 1학년을 위한 책을 냈어요. <리오는 학교에 가면 절대 안돼!>라는 책인데, ‘강명랑의 좌충우돌 1학년 적응기’라는 부제가 달렸네요.

곧 1학년이 될 강명랑은 사촌들의 얘기를 듣고 그만 학교 가기가 싫어집니다.

책은 명랑이가 주인공이긴 한데, 리오라는 강아지도 주인공으로 이름을 올려뒀어요. 김미희 작가가 집에서 키우는 리오라는 강아지를 주인공으로 꼭 넣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명랑이는 새 학기를 앞두고 설을 맞아요. 설엔 어른도 모이고, 형제자매도 다 모이죠. 명랑이가 설날에 5학년 사촌형을 만나서 학교 얘기를 듣습니다. 그런데 사촌형이 학교에 대해서 좋은 얘기를 해주질 않는군요. 학교의 나쁜 점만 죄다 꺼냅니다. 쉬는 시간도 적고, 툭하면 시험을 치르고, 급식도 맛이 없는 것만 준다고 하네요. 사촌형은 그걸로 그친 게 아니라, 학교에 대한 불만을 더 털어놓습니다. 준비물을 가져오지 않는 친구들은 벌을 세운다고 겁박을 주지 뭐예요. 사촌형만 그런 게 아닙니다. 사촌형의 곁에 있던 사촌 누나도 거들어요. 뭐라는 줄 아세요? “나는 학교 안가도 되는 나라가 있으면 그 나라에 가서 살고 싶어, 명랑이 너도 유치원 때가 정말 좋았다는 걸 알게 될거야.”

사촌들의 얘기를 들은 명랑이는 그만 풀이 죽습니다. 친척들이 명랑이에게 줄 가방도 선물을 해주고 하지만, 명랑이는 이름처럼 명랑하지 않고 기운만 빠집니다. 학교에 들어가는 게 걱정이 되기 시작하지요. 명랑이는 급기야, 입학식 날 늦게 일어납니다. 보다 못한 엄마는 리오에게 학교에 가자고 합니다. 강아지 리오는 신이 나서 책가방을 메고 나섭니다. 나중에 어떻게 됐냐고요? 궁금하면 책을 보면 됩니다. 한가지 얘기해 줄 수 있는 건 명랑이가 이름에 걸맞게 명랑하게 학교에 다닌다는 사실이죠.

명랑이 대신 학교에 간 강아지 리오는 너무 인가가 좋아요.

제 집엔 두 딸이 있어요. 두 딸 가운데 큰애가 명랑한 편입니다. 어떤 때는 너무 시끄럽기도 하고요. 목소리가 커서 그런지 모르지만 하여튼 명랑합니다. 명랑해서 그런지 학교에 가는 게 힘들지는 않은 것 같아요. 큰 딸에겐 친구들이 많아서 그런 모양입니다. 요즘은 정책적으로 아침밥을 챙겨먹도록 하기 위해 학교에 늦게 나오라고하는데 큰 애는 기를 써서라도 빨리 가려고만 해요. 참 이해할 수 없긴 해요.

그 애가 올해 고등학교엘 들어갔어요. 입학식을 마치고 집에 온 그날, 큰애는 모든 게 불만입니다. 친구도 그렇고, 학교도 그렇다면서…. 큰애는 아무리 낯선 곳에 가더라도 친구를 만들어오는 아이인데, 적응이 쉽지 않겠다 싶었죠. 아니, 그렇게 좋아하는 친구를 만들지 못하면 어떻게 학교생활을 할까라는 우려가 생긴 겁니다. 그런데 웬걸? 다음날 제가 물었어요.

“미르야, 친구 사귀지 못해서 어떻게 하지?”

“다 친구 됐어. 말 하지 않는 애도 내가 말을 걸어줬지.”

명랑한 친구인 큰딸 미르는 뭐가 달라도 다르군요. 1970년대 초등학교를 다닌 저와는 다른 세상에 살고 있는 애가 바로 미르인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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