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4-19 03:47 (금)
모서리 채우기
모서리 채우기
  • 홍기확
  • 승인 2016.03.22 17: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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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아빠의 특별한 감동] <117>

 어릴 적부터 내가 취직을 하기 전까지 어머니가 일을 하지 않는 모습을 본 적 없다. 부업도 계속 하셨는데 그 중에서 가죽 붙이기가 아직도 생각난다.
 가죽점퍼를 만드는 최초 작업인 듯한 가죽 붙이기.
 방법은 간단하다. 넓은 부직포를 펼쳐놓고 본드를 바른다. 그 후 잽싸게 가죽을 알맞게 오려 붙인다. 완성품은 모자이크처럼 생겨먹은 부직포와 가죽조각의 결합품이다.

 어린 내게 이런 작업은 퍽이나 신기하게 보였다. 그런데 어머니는 내가 가까이 가면 항상 저리가라고 내쫓기 일쑤였다. 본드 냄새 맡으면 머리 나빠진다는 게 그 이유였다. 요즘 일부 학생들은 일부러라도(?) 본드를 부는데, 어머니는 십 년 가까이 그 좋은 본드를 흡입하셨다. 지금도 자주 머리가 깨질 듯 아파하거나, 심하면 병원에 실려 가기도 하시는데 그 때 맡은 본드 때문이 아닐까하는 생각도 든다.

 

 『눈처럼 게으른 것은 없다』   - 윤희상

 할머니 한 분이
 마늘을 높게 쌓아놓은 채 다듬고 있다

 그 옆을 지나가는 낯선 할아버지가
 걱정스런 표정으로 말을 남기고 간다

 “그것을 언제 다 할까”

 그러자 할머니가 혼잣말을 한다.

 “눈처럼 게으른 것은 없다”

 

 어머니는 부직포에 가죽을 성큼성큼 붙이셨다. 그러다가 막판이 되면 급속히 느려졌다. 부직포의 가운데는 다 채워져 있다. 남은 것은 구석의 모서리들뿐 이었다.
 어머니는 매의 눈으로 모서리를 노려보고, 성스러워 보이는 손놀림으로 가위를 잡곤 째각째각 가죽을 잘라냈다. 그리고 자로 잰 것처럼 척하고 모서리를 채웠다. 모서리를 채우고, 모서리를 메우고, 모서리를 마감했다. 그리고는 허리 한 번 펴고 다시금 다른 부직포를 꺼내들었다.

 때론 삶이라는 거센 물결에 휩쓸려 내가 가진 모서리를 잃을 때가 있다. 분명 빠진 게 있고, 모자란 게 있는데 그 모서리를 채우려고 해도 찾지 못할 때가 있다. 또한 모서리를 찾아도 딱 들어맞게 채울 수 없는 경우도 있다. 심지어는 모서리를 잘못 채워 전체 그림이 다른 것으로 바뀌는 상황도 발생한다.

 삶을 살며 네모, 세모, 동그라미, 어떠한 모습을 추가해도 모서리는 기필코 남는다. 아마 모서리들은 아쉬움, 후회, 상실, 슬픔, 이별. 뭐 이런 것들이 아닐까?
 하지만 어차피 생길 모서리라면, 새로운 도형들을 추가해가며 새로운 그림을 그려가는 것도 좋은 듯하다. 남겨진 모서리들은 어머니처럼 고수(高手)가 된 후에는 단 한 번에 채울 수도 있지 않을까?

 다만 운이든 기적이든 노력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모서리를 채우기 위해 어떠한 방식으로든 꼼지락거리고 있다. 눈처럼 게으른 것은 없으니까.

 

<프로필>
2004~2005 : (주)빙그레 근무
2006~2007 : 경기도 파주시 근무
2008~2009 : 경기도 고양시 근무
2010 : 국방부 근무
2010년 8월 : 제주도 정착
2010~현재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근무
수필가(현대문예 등단, 2013년)
서귀포시청 공무원 밴드 『메아리』회장 (악기 : 드럼)
저서 : 『평범한 아빠의 특별한 감동』, 201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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