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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의 명소, 도민의 추억 ‘어머니빵집’…새 역사 써야죠”
“제주의 명소, 도민의 추억 ‘어머니빵집’…새 역사 써야죠”
  • 조보영 기자
  • 승인 2016.02.18 09:40
  •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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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도심에서 신도시로 이전, 30년 전통 ‘어머니빵집’ 이병선 대표 인터뷰
1985년 제주시청 맞은 편에서 문을 연 어머니 빵집은 지난해 3월 제주시 연동에서 새둥지를 틀고 30년 전통을 이어오고 있다.

“손님들이 먹고 추억을 떠올리는 빵, 매일 한결같은 맛을 내는 빵을 만들고 싶어요”

시청의 터줏대감이자 만남의 장소로 30년 간 도민들의 사랑을 받아온 ‘어머니빵집’. 이병선(46세) 대표는 지난해 3월 제주시 연동에 새둥지를 틀고, 이곳에서 제주 대표 빵집으로서의 명성을 이어오고 있다.

1985년 제주시청 맞은 편에서 문을 연 어머니빵집과 이병선 대표의 인연은 200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함께 일을 해보고 싶은데 도와주지 않겠냐’는 초기 창업주의 삼고초려 끝에 병선 씨는 서른 한 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책임셰프직을 맡았다. 그야말로 파격인사(?)였다.

“사장님이 세 번을 찾아오셨어요. 워낙 명성이 있는 곳이라 선뜻 대답을 하지 못하고 두 번 거절을 했었죠. 세 번째는 거절을 못하겠더라구요. 어린 나이에 책임셰프가 되다보니 무시도 많이 당했죠. 10년 동안 책임자 생활을 하다가 5년 전에 빵집을 물려받게 됐어요.”

'어머니빵집'의 초창기 창업주였던 박정기 씨는 가장 믿을 만한 책임자였던 이병선 셰프에게 대표직을 넘겨주었다. 그후 15명의 직원이 아침 6시에 출근 도장을 찍고 하루 200여개의 빵을 구워내며 승승장구하던 빵집에 위기가 찾아왔다. 2014년 말, 건물주가 더 이상 재계약을 하지 않겠다고 통보를 해온 것.

물론 시간을 끌면서 법정 싸움까지 갈까도 고민해봤다. 그러나 혼자의 힘으로는 역부족이었다. 같은 건물에 입주해있던 짱구분식이 먼저 손을 들고 나갔다. 2014년 11월, 이병선 대표 역시 30대 청춘과 열정을 모두 쏟아 부었던 시청점의 문을 닫아야했다. 지금은 프랜차이즈 커피숍이 운영 중이다.

2002년 어머니빵집의 책임셰프로 스카웃된 이병선(46세) 대표. 5년 전 창업주로부터 가게를 물려받고 대표직을 맡아 그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미래가 없는 곳에서 일을 하다보니 사람이 무너지더라고요. 몇 개월을 방황했죠. 제주도가 지역사회다 보니 동네 빵집이 다 친구나 후배, 아는 지인이거든요. 그동안 제가 해왔던 말들을 다 무시해버리고 혼자 잘 사는 길을 택할 수도 없었어요. 다행히 좀 외진 곳이기는 하나 신축 건물이 있는 이곳에 빵집을 오픈했어요.”

그 사이 이병선 대표는 국가에서 주는 최고의 자격증인 '대한민국 제과 기능장’이라는 타이틀을 달았다. 오로지 현장의 실력으로만 승부를 봤던 그는 폐업의 아픔을 잊기 위해 빵집을 접자마자 시험에 도전했고 꼬박 한달 안에 목표를 이뤘다. 제과제빵 기능장은 도내에 3~4명 뿐이다.

빵집도 자리를 잡았다. ‘어머니빵집’의 이름을 듣고 모여드는 여행객들, 새로운 메뉴의 빵 맛을 보기 위해 찾아온 신규 고객들, 30년 추억의 맛을 기억하고 꾸준히 빵집 문턱을 넘나드는 단골 고객의 발길까지. 주변인들의 걱정과 달리 1년 새 매출은 꾸준한 상승세를 이어오고 있다.

“어느 날 잠깐 매장에 나와 있다가 한 손님이 ‘시청에서 이리로 옮겨서 걱정을 많이 했는데 손님이 이렇게 많은 것을 보니까 너무 기분이 좋네. 이런 곳이 잘 돼야 돼’라고 하셨어요. 그때 처음으로 ‘내가 헛되이 살진 않았구나’란 생각이 들었죠. 아, 왜 눈물이 나지? 좁은 공간에서 하얀 밀가루를 만지고 있으니까 사람이 좀 단순해지는 것 같아요.”

토탈 제과제빵점인 '어머니빵집'은 100여종의 품목으로 오랜 단골들과 신규 손님들의 발길을 끌고 있다. 그중 가장 메인은 생크림 단팥빵과 초코방망이.

이병선 대표는 올해로 27년째 빵을 만들고 있다. 전남 해남 기계공고를 나와 19살에 ‘용광로’ 일을 시작한 그는 우연히 서울에서 제과점을 하는 삼촌 가게에 놀러갔다가 제과점에 입문했다.

빵 만드는 일이 덥다, 밀가루 포대를 옮기는 게 무겁다는 사람들의 투정이 선뜻 이해가 되지 않았다. 1200도에 달하는 용광로에서 매일같이 쇳덩이를 옮기는 일을 하던 이병선 대표에게 제빵 일은 일도 아니었다. 그후 1년 간 누구보다 열심히 기술을 배웠다.

“1년 뒤에 우연히 제주도에 놀러왔는데, 서울 대도시에 있다가 시골 풍경을 보니까 너무 마음이 편해지는 거예요. 어릴 때 시골에서 자란 기억도 나고. 제주도를 떠나고 싶지가 않았어요. 바로 도내 제과점에 취직을 했죠.”

바로 제주에 정착을 했고 결혼을 해서 아이 둘을 낳았다. 그제야 현실이 보였다. 1년 동안 배운 제빵 기술로는 아내와 아이 둘을 지켜낼 자신이 없었다. 그 길로 다시 서울행을 결심, 전국 빵집을 돌아다니며 제빵 기술을 쌓았다.

지금도 그는 가족에게 미안한 마음이 크다. 큰 아이, 작은 아이 돌 사진에도 아빠의 얼굴이 없다. 그만큼 결실도 컸다. 이병선 씨는 2012년 전국 대표 제빵사들이 한 자리에 모이는 ‘프로제빵왕대회’에 제주 대표로 참가한 실력자다. 현재까지 도내 프로제빵왕 참가자는 이병선 대표가 유일하다.

“모든 식당에는 메뉴판이란게 있잖아요. 그런데 같은 음식이지만 제과점에는 메뉴판이 없어요. 그만큼 무궁무진하다는 뜻이죠. 메뉴판이 없기 때문에 잠깐이라도 멈추면 나태해지고 밀려나게 돼있어요. 끊임없이 도전을 할 수 있는 직업이어서 힘든만큼 보람도 큽니다.”

이병선 대표는 늘 후배들에게 '기술'보다 '사람'이 먼저라는 철학을 강조해왔다. 5년 전부터 그는 제주 애덕의 집과 장애인 단체에 빵 만들기 재능 기부를 이어왔다. 오는 20일에는 미디어제주와 롯데면세점이 주최하는 ‘아름다운 동행’ 행사에 참여, 아동청소년 보호시설인 예향원 아이들과 사랑의 빵을 만들 계획이다.

빵집은 가장 먼저 문을 열고 가장 늦게 문을 닫는다는 말이 있다. 한결 같은 정성의 마음으로 30년 동안 도민 곁을 지켜온 제주의 명물 ‘어머니빵집’. 그 아름다운 역사의 기록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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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2016-02-18 14:18:06
실망~~ 창업자가 아니세요~~

미디어제주 조보영 기자 2016-02-18 14:41:21
덧붙입니다. 초기창업주는 약4~5년 전에 작고하셨습니다. 아드님도 제과제빵 길을 걷지 않으셨고요. 그래서 가장 믿을만한 책임자인 이병선 대표에게 '어머니빵집'을 물려주신 듯 합니다. 지금도 이병선 대표님과 아드님은 연락을 하고 지낸다고 들었습니다. 참고바랍니다.

도민 2016-02-18 15:08:00
어머니빵집하면 도민들의 기억속에 자리잡고있어요.
만남의 장소 등 브랜드 빵집이 생기기 전부터이니까요
추억이 어린 빵집이
어느날 갑자기 건물주에 의해
옮겨진 것도 가슴이 아픈 사연이 있어요.
종전 주인은 작고하셨어도 누가 한들 문제가 안되죠.
도민들 가슴속에 새겨진 어머니 빵집이란
그 이름이 남아서 다시 맛볼수 있다는
자체로만도 그 맛과 옛 추억이 살아나서 좋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