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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같은 인간인데 ‘틀리다’고 하지 마세요
서로 같은 인간인데 ‘틀리다’고 하지 마세요
  • 김형훈 기자
  • 승인 2016.02.11 15: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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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훈의 동화속 아이들 <17> 강효미의 「오랑우탄 인간의 최후」
 

전혀 모르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을 만났을 때 당신은 무엇으로 그 사람을 판단하시겠습니까. 그 사람에 대한 아무런 정보도 없는 상태라면 판단 기준은 외모 말고는 다른 게 있을까요? 그게 첫인상으로도 부를 수도 있지만 그건 오해의 소지를 가지고 있어요.

동성의 관계에서나, 이성의 관계에서나 그건 마찬가지일 겁니다. 그러다 자주 만나면 외모에 대한 인식은 차츰 누그러들게 마련입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죠. 그걸 ‘사회적 학습’이라고 불러보죠. 특히 편견을 많이 지니는 경우는 백인과 흑인을 대할 때가 아닌가 싶네요. 알게 모르게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도 흑백인종을 구분 짓는 잣대가 형성돼 있습니다. 그건 우리 스스로 만들었다기보다는 백인들로부터 학습을 받았다고 보는 게 맞을 듯해요.

백인 경찰의 총기에 사망한 퍼거슨 사태만 해도 그렇죠. 왜 그럴까요. 백인들이 흑인과는 다르다며 구분을 짓는 건 아닌가 싶은데요. 흑인을 인간으로 취급하지 않은, 즉 노예로서 부렸던 그런 인식은 여전히 백인들의 의식에 잠재돼 있는 것 같아요.

미국 남북전쟁이 끝나고 흑인은 해방됐다고 했으나 실질적인 해방이 왔을까요? 인종간의 갈등을 부르는 건 ‘너와 나는 다른’ 게 아니라 ‘틀리다’고 인식하는 것 때문이겠죠.

키가 작다거나, 못생겼다거나, 장애를 지녔거나 하는 등등의 것에 너무 매몰되다보면 정작 중요한 것은 잊게 됩니다.

요즘 우리 사회는 더욱 그런 것 같죠. 외모 지상주의라는 말이 딱 맞죠. 나의 진정한 행복보다는 남에게 보이기 위해서 안달입니다. 내가 어떻게 생기든 그걸 있는 그대로 봐주지 않고, 삐딱하게 바라보도록 만드는 사회구조가 문제라는 겁니다.

세계 여자 골프 최강인 박인비 선수가 있죠. 한때 스폰서를 구하지 못해서 애를 먹곤 했습니다. 지금이야 당당한 스폰서가 있지만 박인비는 그러지 못해 어려움을 겪었어요. 특별한 이유를 들라면 외모였습니다. 우리나라 기업들은 자사 홍보를 위해 늘씬하고 잘생긴 얼짱을 원하는데, 박인비는 그런 요건을 충족시켜주지 못했거든요.

얼마 전엔 일본여자프로골프투어에서 활약하는 안선주 선수의 인터뷰가 실린 걸 봤어요. 안선주 선수가 이런 말을 했더군요. “여자 골프계에선 성적보다 외모가 훨씬 더 중요했고, 스폰서를 받으려면 일단 얼굴이 예뻐야 후보군에 올랐다. 한국에선 후원을 약속했던 기업이 하루 아침에 약속을 백지화 시킨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성형을 강요한 기업도 있었다”고 말이죠.

강효미의 동화 <오랑우탄 인간의 최후>는 몸에 털이 자라나서 오랑우탄처럼 될 경우 당신은 어떻게 할 것이냐고 묻고 있습니다.

갑자기 털이 나기 시작하는 우찬이. 덜컥 겁이 나기 시작합니다.

이 동화엔 초등학교 4학년 황우찬이 주인공으로 등장합니다. 그런데 우찬이는 고민이 생기기 시작해요. 어느 날 갑자기 턱 밑에 수염이 자라면서 일이 벌어집니다. 자고 일어나면 수염은 더 자라지 뭐예요. 알게 모르게 고민을 지니게 된 우찬이를 더 걱정하게 만든 건 ‘뻥치기’ 오만석이 친구들에게 과장하며 늘어놓는 이야기 때문이었어요.

오만석은 털북숭이처럼 변하는 오랑우탄 인간 이야기를 친구들에게 떠벌리고, 그걸 들은 우찬이는 자꾸 자신이 그런 인간이 아닌가라는 상념에 빠지지 뭐예요. 급기야는 TV에는 오랑우탄 인간이 등장했으니 조심하라는 방송까지 나오는 것 아닌가요.

그런데 말이죠. 우찬이의 걱정은 점차 현실이 됩니다. 이젠 몸에도 털이 불쑥불쑥 솟아납니다. 몸에 자라는 털로 인해 고민은 가득해지고, 우찬이는 결국 가출을 결심합니다. 가출을 한 우찬이는 지하철 끝 지점인 하늘시로 도망치고, 거기서 진짜 오랑우탄 인간을 만나게 됩니다. 오랑우탄 인간은 우찬이더러 지하세계로 들어가야 한다고 하지 뭡니까. 우찬이는 오랑우탄 인간으로 태어났고, 11살이 되면 이 세상과 하직을 하고 오랑우탄 인간들이 있는 지하세계로 가야 한다네요. 지하세계로 떠나면 평생 그곳에서 살아야한다는 오랑우탄 인간의 말에 우찬이는 딱 한 번만 엄마·아빠의 얼굴을 보고 지하세계로 가겠다는 마음을 다집니다.

하늘시를 떠나 자신이 살던 마을에 도착한 우찬이. 오랑우탄 인간이기에 자신을 숨기기에 급급합니다. 그런데 깜짝 놀랄 일이 그 앞에 나타납니다. 담벼락에 다닥다닥 붙어 있는 광고지에 깜짝 놀라고 만 것이죠. 광고지는 얼굴에 털이 잔뜩 난 남자아이의 활짝 웃는 얼굴이 그려져 있어요. 그리고 광고지 아래엔 ‘돌아와, 친구야’라는 글도 써 있어요. 다른 광고지도 우찬이의 눈에 들어왔어요. ‘내 친구 오랑우탄을 찾습니다’라는 문구가 적혀 있는 것도 있고, ‘넌 여전히 우리 친구 황우찬이야’라는 글도 눈에 띄네요.

오랑우탄 인간이 된 우찬이. 그래도 친구들은 그의 다름을 인정해주고, 돌아오라고 하네요.

세상에는 털이 많은 사람도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어요. 세상엔 키 큰 사람도 있고, 키가 너무 작은 사람도 있어요. 세상엔 너무 뚱뚱한 사람도 있고, 너무 바짝 마른 사람도 있어요. 세상엔 너무 못생긴 사람도 많아요. 사람들은 각기 다르게 태어납니다. 그렇다고 해서 사람에게 차별이 있어서는 안되겠죠. 다르게 태어나지만 너와 나는 다들 인간입니다. 어쨌든 같은 인간인데, 너는 나와 틀린 존재라고 하면 안되겠죠.

우리 두 딸은 남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을까요? 남을 구분하거나 달리 보는 것 같지는 않아서 다행입니다. 그런데 유독 아빠에 대해서만 얄궂게 해요.

“아빠는 왜 그렇게 못생겼어.”

“아빠는 왜 그렇게 뚱뚱해.”

두 딸이 내게 툭하면 던지는 말입니다. 제 가슴에 못이 박히냐구요? 전혀 아니죠. 아빠에게 전하는 친근함의 표시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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