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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껏 놀고, 웃음 주는 그런 친구랑 놀면 안되나요
마음껏 놀고, 웃음 주는 그런 친구랑 놀면 안되나요
  • 김형훈 기자
  • 승인 2015.12.15 14: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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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훈의 동화속 아이들 <15> 김진완의 「박치기 여왕 곱분이」
 

지난달 치러진 대학수학능력시험. 이름만 들어도 겁이 나네요. ‘지금’이라는 현재를 살아가는 이에겐 반드시 거쳐야 하는 관문이면서도 그 이름만큼 긴장하게 만드는 게 없지 않을까 싶어요. 대학수학능력시험은 이름도 참 많이 바뀌었죠. 예전 대학은 학교별로 시험을 치른 때가 있었답니다. 당시 대학시험을 보는 행위를 본고사라고 했어요. 본고사를 치를 능력이 되는 지를 판단하는 게 예비고사였죠. 예비고사에서 어느 정도 성적이 돼야 대학시험을 볼 수 있었거든요. 그러다 예비고사 시대는 사라지고 학력고사가 도입됩니다. 학력고사 이후에 나온 게 대학수학능력시험이죠. 그런데 우리나라는 대입 제도가 하도 바뀌다보니 적응하기도 쉽지 않아요.

고교생이 있는 가정은 긴장의 연속입니다. 고교 3학년 수험생을 둔 가정은 상전이 따로 없죠. 고교생을 위해 모든 시스템을 맞추는 집안이 많을 겁니다. 그래서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사람들을 겁주는 존재인 것이죠.

대학수학능력시험 얘기가 나왔으니, 제주도의 사정을 얘기해봐야 하겠어요. 제주도교육청이 자랑스레 꺼내는 게 있어요. 바로 대학수학능력시험 4년 연속 전국 1등입니다. 자랑스런 결과인 것은 분명합니다. 서울 강남 지역이 수능에서 강세를 보인다지만 평균적인 성적에서 1위라는 결과는 제주도를 따라갈 곳이 없기 때문입니다.

4년 연속 1등. 좋게 들리지만 마냥 좋지 않다는 게 문제입니다. 물론 제주도 학생들의 능력이 뛰어난 건 분명하지만 그렇데 된 배경을 따져보면 학생들의 아픔이 가득 들어있습니다. 그 이유는 제주도는 다른 지역과 달리 중학교 때부터 입시에 매달리는 현실이 있어서죠. 제주도는 중학교 때부터 열심히 하지 않으면 원하는 고등학교에 들어가기가 쉽지 않아요.

제주시 동지역 중학교를 졸업하는 학생 가운데 40% 가량은 읍면 지역의 학교를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선택당할 수밖에 없답니다. 그걸로 끝나면 좋지만 중학교 연합고사를 치르는 학생 가운데 200명에 달하는 학생들은 고입탈락이라는 고배를 마셔야 해요. 우리나라에서 이런 입시체제를 가진 곳은 제주도 밖에 없다니 한심합니다. 그러다 보니 학생들 정서도 문제가 발생하고 있어요. 초등학생 때까지만 하더라도 제주도 학생들 가운데 주의군에 포함된 학생 비율은 전국 최하위였으나, 중학교에 들어서면 주의군 학생이 전국 1위로 등장합니다. 여기엔 입시라는 부담이 준 결과라는 분석도 있어요.

김진완의 <박치기 여왕 곱분이>는 아이들에게 웃음소리를 전해주고, 친구가 돼 주고, 놀이를 주도하는 경상도 가시나(계집아이의 경상도 방언)인 곱분이가 주인공입니다. 곱분이는 가정환경 때문에 서울에 있는 아빠 친구 집에 얹혀살지만 늘 밝은 모습으로 학교를 다니고, 주위엔 친구로 가득합니다.

그런데 혜지의 엄마는 곱분이를 곱게 보질 않아요. 혜지 엄마는 혜지를 향해 공부를 잘 하는 아이만 사귀라고 하면서 곱분이와 같은 아이들이랑은 놀지 말라고 합니다. 그건 혜지 엄마 뿐아니라 요즘 우리나라 엄마들도 마찬가지이겠죠. 친구의 우선순위가 공부라니요?

혜지 엄마가 곱분이를 받아들이는 장면

그러다 혜지가 학교에서 쓴 글로 인해 혜지 엄마도 마음이 동합니다. 혜지는 글에서 왕따였던 자신을 떠올리며, 진정한 친구로 자신을 받아준 친구가 바로 곱분이라고 고백합니다. 혜지가 어떤 글을 썼냐고요? 다음 글을 읽어 보세요.

“먼 곳에서 친구가 찾아오니 그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라는 한문을 외우다 보면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한다. 찾아올 친구 하나 없는 주제에 공부만 잘하면 다니? 나는 오늘도 열심히 벽을 쌓고 있다. 친구들과 어울리면 성적이 떨어지니까……”

혜지 같은 친구는 우리나라에 너무 많아요. 수능 1등을 한다는 제주도에도 넘쳐납니다. 그런 고달픈 친구들을 위해 웃음이라는 선물을 주는 친구가 바로 곱분이랍니다.

저도 내년이면 고등학교에 입학하는, 그러니까 중학교 3학년인 딸인 미르가 있어요. 늘 활달한 아이죠. 조그마할 때는 이리저리 헤집고 다니는 통에 혼을 빼놓던 아이랍니다. 그런데 훌쩍 커버려 아빠 키를 넘으려 하고 있어요. 그 애를 볼 때마다 “세상은 너무 하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돼요. 맘껏 놀고, 맘껏 생각하는 그런 시간을 주면 좋으련만, 세상은 그런 시간은 하찮다고 여깁니다. 시험만을 향해 달려가는 모습에, 우리 애의 어깨에 놓인 짐을 어떻게 하면 치워줄 수 있을까 고민입니다.

그래서 요즘은 고입 연합고사를 폐지해야 한다는 학부모들의 얘기가 남의 일 같지 않아요. 천방지축(밖에서는 간혹 요조숙녀로 비쳐지기는 하지만)인 우리 큰 애는 학원이다, 공부다 하는 것에 치여 제 힘을 잃을 때가 있답니다. 그런 때는 제가 단박에 알아봐요. 애가 참 순해지거든요. 공부에 진을 다 쓰다 보니 자신이 지닌 본성을 간혹 까먹거든요. 그 애의 본성은 “싫어, 짜증나”라는 말의 연속인데, 공부에 지칠 때는 그 말을 안해요. 그 때는 아빠로서 두 가지 생각이 겹칩니다. ‘애가 참 착하졌네’라고 했다가 ‘아니, 애가 참 힘들구나’.

그런데 그런 아빠의 생각을 다시 원위치 시키는 말. “짜증나~”. 그럴 때 저는 이렇게 생각한답니다. ‘그래, 미르는 살아 있구나’. 그러고 보면 곱분이는 다른 곳에 있는 게 아니라 바로 제 곁에 있는 것 같아요. 곱분이는 바로 제 큰 애 미르를 닮았어요. 세상엔 공부보다 친구를 아끼고 챙겨주는 곱분이가 넘쳐났으면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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