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3-28 23:43 (목)
지극히 당연하고도 그런 이야기
지극히 당연하고도 그런 이야기
  • 홍기확
  • 승인 2015.11.23 11: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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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아빠의 특별한 감동] <105>

엄마와의 통화는 한결 같다.
 
 “밥은 먹었니?”

 지구인 전체를 따지면 머리 아파도, 적어도 대한민국에도 밥 못 먹고 다니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다. 게다가 직업 멀쩡하고, 맞벌이다. 밥 못 먹을 리가 없다. 하지만 나는 대답한다.

 “삼시 세끼 잘 먹어. 삼식이야. 집사람이 아직까지는 밥도 해줘.”

 엄마 역시 모르는 바 아닐 것이다. 직장동료가 ‘식사 하셨어요?’, ‘밥 먹었니?’와 같은 인사치레가 아니다. 정겨운 물음이다. 진심으로 자식이 밥을 먹었는지, 밥은 먹고 다니는지 궁금한 것이다. 이렇게 부모와 자식 사이. 물음표가 담긴 말에는 마음이 담겨 있다. 영혼이 담긴 치레다.

 다음 질문도 공식처럼 한결 같다.

 “가족들은 별 일 없고?”

 별 일 있어도 말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송골매의 노래, 『세상만사』의 가사처럼 ‘세상만사 모든 일이 뜻대로야 되겠소만, 그런대로 한 세상 이러구러 살아가오.’라고 대답하고 싶다. 다 큰 자식이다. 나름 산전수전, 공중전, 지하전을 다 겪었는데 그럭저럭 못 살 소냐. 하지만 역시 성의껏 대답한다.

 “별 일 있을 이유가 없지. 무소식이 희소식이라고 별 볼일 없어.”

 엄마의 목소리는 최근 40여 년간 한결 같다.

 내가 정자로 착상 했을 때 엄마 뱃속에서부터 들었던 목소리. 그 목소리 그대로다. 세상에서 가장 많이 들었던 익숙한 사람의 목소리다. 지금은 할머니가 되었어도 그 목소리 그대로다.

 어릴적. 엄마와 누나와 손을 잡고 가던 재래시장. 엄마는 상인과 악다구니를 하며 채소며 과일의 물건 값을 깎고, 물건을 산 후 훔치듯 ‘이거 하나 덤으로 주세요!’라며 비닐봉지에 담곤 했다. 등을 돌리고 나오며 엄마는 눈부시게 웃으며 말한다.

 “기확아, 이거 정말 싸게 샀어!”

 사실 나는 물건 파는 사람들과 흥정을 하는 엄마의 모습이 창피해 주변을 서성이고 있던 터였다. 누나는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도 한결같이 시큰둥하게 엄마 옆에 서있다.
 
 시장에서 엄마의 흥정 전쟁은 계속되고, 나는 끌려 다니며, 누나는 시큰둥하다. 결국 두 시간동안의 도보 여행은 끝나고 우리는 시장의 초입으로 다시 돌아오는 길이다.
 엄마는 오늘 물건을 싸게 샀는지 넉넉한 웃음을 입가에 담고 초입의 떡볶이 집을 가리킨다. 엄마의 손가락과 입모양에 집중하는 내 가슴은 두근대고, 누나는 시큰둥하다. 엄마는 말한다.

 “얘들아, 우리 떡볶이 먹고 갈까?”

 떡볶이를 좋아한다. 밥이 아닌 떡볶이가 주식이 된다 해도 살아짐 직하다.

 흉작으로 야채 값이 올랐을 때. 시장에 같이 갔을 때 엄마의 분위기는 어두웠다. 이때쯤은 상인들과 원수라도 되는 것처럼 더욱 무섭게 흥정을 했다. 시장의 초입을 나올 때까지도 엄마는 떡볶이를 먹자는 얘기를 하지 않았다. 누나는 시큰둥하고, 나는 눈치 빠르게 떡볶이 집 앞에서부터 걸음을 유달리 빨리 했다. 그 쪽으로 얼굴도 돌리지 않았다. 엄마는 말이 없었다. 정겹고 반가운 엄마 목소리를 들을 수 없었다.

 자식의 일상을 궁금해 하는 엄마의 목소리. 자식을 걱정하는 엄마의 목소리. 자식에게 무엇을 사주겠다며 기뻐하는 엄마의 목소리. 말이 없는 엄마의 목소리.

 지극히 당연하고도 그런 이야기다.
 예전에는 목소리였지만 지금은 이야기가 된 엄마의 목소리.
 지극히 당연하고도 그런 이야기가 모여 우리는 자란다.

 

<프로필>
2004~2005 : (주)빙그레 근무
2006~2007 : 경기도 파주시 근무
2008~2009 : 경기도 고양시 근무
2010 : 국방부 근무
2010년 8월 : 제주도 정착
2010~현재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근무
수필가(현대문예 등단, 2013년)
서귀포시청 공무원 밴드 『메아리』회장 (악기 : 드럼)
저서 : 『평범한 아빠의 특별한 감동』, 201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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