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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재형 탁구 국가대표 코치 “운동선수는 때를 기다리며 인내할 줄 알아야죠”
안재형 탁구 국가대표 코치 “운동선수는 때를 기다리며 인내할 줄 알아야죠”
  • 미디어제주
  • 승인 2015.07.16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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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재형 탁구 국가대표 코치

지난 5월25일 새벽 유럽에서 낭보가 날아왔다. 안병훈(24)이 유러피언 프로골프투어(EPGA)의 메이저급 대회인 ‘BMW PGA챔피언십’에서 아시아 선수로는 최초로 우승했다는 소식이었다.

그런데 당시 챔피언 안병훈보다는 ‘탁구 스타 커플 안재형(50)-자오즈민(52)의 아들’이라는 수식어가 먼저 나왔다. 적어도 일반인들에게 그 대회 직전까지는 골퍼 안병훈보다는 왕년의 탁구선수 안재형이 더 알려졌었다. 

안재형-자오즈민 커플은 1988년 서울올림픽 때 탁구 선수로 출전해 나란히 메달을 획득했다. 그러고 당시로서는 흔치 않았던, 한국 남자와 중국 여자의 결혼에 골인해 화제가 됐다. 두 사람의 유일한 혈육인 안병훈은 그로부터 20여년이 지난 지금 부모의 뒤를 이어 세계 스포츠계에서 이름을 날리고 있다. 종목은 다르지만…. 

안재형-안병훈 부자(父子)는 그런 까닭에 떨어져 살고 있다. 아버지는 서울에서 살고, 아들은 미국에 근거지를 두고 유럽에서 주로 활동하고 있다. 

안재형씨는 한국 탁구 국가대표 코치를 맡고 있다. 1998년 아시안게임 대표팀 코치, 2001년 세계선수권대회 대표팀 코치에 이어 세 번째로 국가를 위해 봉사하고 있다. 기자와 만난 곳도 이달초 코리아오픈 국제탁구대회가 열린 인천 남동체육관 탁구경기장이었다. 탁구와 골프를 아우른 경험을 듣고 싶어 그를 보자고 했다. 

탁구와 골프를 비교해달라는 질문부터 했다. 

“탁구가 골프보다 어렵다고 봅니다. 탁구는 어려서부터 하지 않으면 성공 가능성이 낮지요. 골프는 좀 나중에 배워도 따라갈 수 있지만 탁구는 그렇지 않습니다. 나중에 시작하면 따라갈 수 없는 것이 탁구입니다. 물론 연습량에서도 탁구가 골프보다 훨씬 많지요. 탁구는 동적이지만, 골프는 다소 정적인 운동입니다. 탁구가 더 격렬한 스포츠입니다. 다만 경쟁은 탁구보다 골프가 더 치열합니다. 탁구에선 정상급 선수들이 우승컵 80∼90%를 가져갑니다. 그러나 골프는 140명 안팎의 선수 가운데 누가 우승할 지 모릅니다. 또 골프는 젊은 선수와 나이든 선수가 함께 기량을 겨루고, 이변이 나올 수 있는 스포츠이지요.” 

한국도 한때는 탁구에서 세계 정상급 선수를 배출했다. 요즘은 뜸한 편이다. 그 반면 요즘 한국 여자골프는 세계를 휩쓴다. 탁구와 골프 중 한국선수들이 세계 정상에 도달할 수 있는 것은 어떤 것일까. 

“탁구와 골프 둘 다 가능성이 있다고 봅니다. 두 종목 모두 어느정도 힘과 기량이 뒷받침돼야 합니다. 물론 파워만 따지면 우리가 서양 선수들에 비해 불리하지요. 그런데 골프는 또 ‘멘탈’ 측면이 있지 않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한국 골퍼들이 세계 정상에 오를 수 있다고 봅니다. 탁구나 골프 모두 선진국들은 투자를 많이 합니다. 중국 탁구선수들은 다섯 살 무렵에 탁구를 시작합니다. 국가적으로 투자도 많이 하고요. 골프 선진국들은 프로골프투어가 잘 발달된 나라들입니다. 미국·유럽·남아공·일본·호주 등이 드런 예지요. 최근엔 중국도 PGA투어차이나를 출범시켜 열심히 따라가고 있습니다. 요컨대 투어 시스템이 잘 갖춰져야 꾸준히 좋은 선수들이 나온다고 봅니다.” 

내친 김에 중국의 탁구와 골프에 대해 한 걸음 더 들어섰다. 중국 탁구는 이미 세계 정상이 된지 오래인데, 중국 골프는 여자골프 세계랭킹 7위 펑샨샨을 제외하면, 아직 세계 수준과는 거리가 있는 것이 현실이다. 

“중국 골프가 세계정상에 되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골프선수 저변이 넓은데다 PGA투어차이나같은 시스템이 있기 때문에 한 두명의 걸출한 스타가 나오는 것은 수년내에 가능하겠지만, 중국골프의 전반적 수준이 세계 정상급이 되는 것은 시기상조라고 봅니다.”

부모가 탁구 선수인데 아들은 왜 골프를 시켰을까. 후회하지는 않을까. 아들은 키 187cm에 몸무게 87㎏의 ‘거구’다. 

“처음엔 탁구를 시켰지요. 그런데 해보니 탁구가 아들의 적성이나 체형에 맞지 않는 듯하더라고요. 탁구는 날렵해야 하고 운동신경이 좋아야 성적을 낼 수 있습니다. 아들의 체형은 탁구라는 종목과 거리가 있는 것같더라고요. 동작도 느렸고요. 그래서 골프를 시켰는데 곧잘 하더라고요. 수많은 스포츠 가운데 골프를 고르고, 지금 어느정도 이름을 날릴 수 있게 된 것은 어찌보면 운이 좋았다고 할수도 있겠네요. 어쨌든 골프는 아들의 적성과 체형에 맞는 스포츠라고 생각합니다. 아들을 골프로 입문시킨 것에 대해 후회하지 않습니다.”

그래도 골프라는 종목의 특성상, 경쟁에서 이겨야 하는 스포츠의 속성상 아들이 힘들어한 때도 있었겠다. 그 때 아버지는 아들에게 어떤 말을 해주었을까.

“인내하라고, 참으라고 했습니다. 어릴 때부터 끊임없이 얘기해왔던 말이지요. 한 선수가 모든 대회에서 우승할 수는 없으니 참고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는 말을 수없이 했습니다. 그 대신 결과에 대해 부정적인 말을 하지 않았고, 꾸짖지 않았습니다. ‘잘했다’고 다독였고, ‘최선을 다하라’고 응원했지요. 그렇게 기다리고 감내하고, 참다보면 언젠가는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주지시켰습니다.” 

자녀를 골프선수로 키우고자 하는 부모들이 적지 않다. 그렇지만 따져봐야 할 것은 많다. 비용, 적성, 성공 가능성…. 아들이 일곱살 때 골프로 인도했고 2007년부터 2014년까지 약 8년동안 아들의 골프백을 메었다면 이런 부모들에게 조언해줄 말도 있지 않을까.

“조심스럽습니다. 제 경우는 제 스타일로 해서 지금에 이르렀지만, 그것이 정도(正道)는 아니지 않습니까. 각자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일률적으로 이렇다고 말하기 곤란하네요. 정답이 없다는 말입니다. 세계적 선수를 꿈꾸는 경우에도 어느 나라 투어에서 시작하는 것이 좋을 지는 각 개인의 취향이나 선호도에 따라 다르다고 할 수 있겠네요. 이를테면 투어에 가더라도 즐기면서 골프를 하려면 음식·시차·문화·언어 등을 먼저 따져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미국투어가 좋다’ ‘유러피언투어로 가라’ ‘일본투어가 낫다’고 단정적으로 말하기 어렵습니다. 단, 골프에 입문했다가 나중에 세계적 선수로 성공한 케이스는 10%가 채 안된다고 봅니다. 성공확률이 높지 않은만큼 신중하게 생각해야 하겠습니다. 비용도 만만치 않습니다. 자녀를 골프선수로 키우려면 성공하기까지 연간 8000만∼1억원은 투자해야 한다고 봐야겠지요. 물론 욕심을 내다보면 그보다 많이 들 수도 있고, 절약하면 그보다 적게 들 수도 있겠지만요.” 

그 못지않게 아내 자오즈민도 유명 인사다. 탁구 선수로서의 성공 가도를 사업으로 연계해 이름을 날리고 있다. 자오즈민은 1990년대 후반부터 중국에서 식당·의류판매업을 하다가 휴대폰 부가서비스 사업으로 업종전환을 했다. 지금은 상하이나 홍콩 증시에 상장을 준비하고 있을 정도라니 자오즈민은 ‘성공한 비즈니스 우먼’이라고 할 수 있다.

안 코치는 내년 리우올림픽까지 국가대표 코치직을 맡는다. 탁구 대표선수들의 성적을 올리는 것이 급선무다. 그러나 한켠에서는 아들의 성적에도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무엇보다 아들이 현재의 페이스를 유지해 오는 10월 한국에서 열리는 프레지던츠컵에 인터내셔널 대표로 출전할 수 있기를 바라고, 올해 남자골프 메이저(급)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내 내년 미국PGA투어카드를 획득하기를 기원한다. 그가 탁구선수로서, 골프선수의 부모로서 성공한 것처럼 앞으로 1년내에 ‘두 토끼’를 잡을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안재형 코치는 
1980년대 한국을 대표하는 탁구선수였던 안재형은 국제대회에 나갈 때마다 중국 여자대표팀 자오즈민을 주시했다. 둘은 88서울올림픽에서 나란히 메달을 땄다. 안재형은 복식에서 동메달을, 자오즈민은 복식 은메달과 단식 동메달을 획득했다. 둘은 그러고 그 이듬해 결혼에 이른다. 한국과 중국이 공식 수교(1992년)하기 전이어서 ‘국경을 넘은 핑퐁 커플’로 화제가 됐다. 자오즈민의 국제결혼을 당시 중국 최고지도자 덩샤오핑이 허락했다는 말도 있었다.

안 코치는 현역에서 은퇴한 후 지도자의 길을 걸었다. 동아증권·한체대·대한항공 등에서 코치·감독을 했고 국가대표선수들을 맡기도 했다. 그 반면 자오즈민은 탁구 대신 사업가의 길을 택했다. 휴대폰 벨을 이용하는 사업체 옴니텔차이나를 설립해 사업가로서 이름을 날렸고 지금도 휴대폰 부가서비스 업체인 위안톈퉁 유한공사 대표를 맡고 있다.

안 코치가 탁구에서 ‘잠시’ 멀어진 것은 아들 때문이었다. 아들의 골프를 뒷바라지해야 했던 까닭이다. 직접 골프백을 메고 이곳저곳 대회장을 누볐다. 아버지의 기대에 부응한 것일까. 아들은 2009년 아마추어골프대회로는 세계 최고권위를 지닌 US아마추어골프선수권대회에서 우승컵을 안았다. 그 뒤로 몇 년 더 아들의 백을 메다가 아들이 프로무대에 정착할 즈음 ‘본업’으로 돌아왔다. 골프클럽을 잡지 않은 지는 8년정도 됐다. 베스트 스코어는 82타이며 ‘보기 플레이’ 수준의 골프 기량을 지니고 있다. 가족이 다 모이면 한국말과 중국말을 섞어서 한다고 한다.

아주경제 김경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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