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4-19 17:38 (금)
멀쩡하지 않은 우리 사회가 만드는 현실이란?
멀쩡하지 않은 우리 사회가 만드는 현실이란?
  • 김형훈 기자
  • 승인 2015.07.14 15: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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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훈의 동화속 아이들 <8> 유은실의 「멀쩡한 이유정」
<멀쩡한 이유정> 표지.

다들 그러죠. 없어도 있어 보이고 싶은 심정. 자신의 부끄러운 점을 드러내 보이려 하지 않는 건 사람이면 다 마찬가지가 아닐까요. 가난해도 가난하다고 말하고 싶지 않고, 집안에 문제가 생겨도 아무런 일이 없는 듯 살고 싶은 게 사람입니다.

특히 연예인들을 보면 항상 잘 사는 듯 ‘거짓’을 꾸밉니다. 속내는 그렇지 않지만 그래야 하거든요. 연예인이라는 직업에 들어선 이상 공인의 자격을 획득하게 됩니다. 그러기에 어떤 불편한 일이 있더라도 그렇지 않다며 거짓을 둘러댑니다. 실상은 사이가 좋지 않은 연예인 부부들인데, TV 화면엔 왜 그리 다정한지 모르겠어요. 그런데 나중엔 결론이 나곤 하죠. 연예인 부부끼리 치고받고 하고, 부인을 폭행했다고 하는 둥…….

왜 그럴까요. 왜 멀쩡하지 않으면서도 멀쩡하다고 둘러댈까요. 그건 사람이기에 그렇습니다. 앞서 얘기했듯이 자신의 부끄러운 점, 한자로 하면 ‘치부’가 되겠지요. 그걸 다른 사람에게 알리고 싶지 않은 것뿐입니다.

연예인들만 그럴까요? 아닙니다. 우리 일반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연예인들은 공인이라는 자격을 얻기에 더더욱 치부를 숨기려 행동을 한다는 점이 다소 차이라면 차이이겠죠.

어릴 때 기억을 더듬으면, 이 글을 쓰는 필자 역시 부끄러움을 드러내지 않으려 애썼던 게 하나 둘이 아니었어요. 남에게 자랑삼아 얘기할 일이 없어 그냥 ‘침묵’으로 흐른 경우가 숱합니다. 어쩌면 부끄러움을 감추는 데는 침묵보다 더 좋은 방책은 없는 것 같기는 해요. 그건 제 경우이지만요.

유은실의 창작동화인 <멀쩡한 이유정>의 주인공인 이유정은 멀쩡하려고 애쓰는 주인공입니다. 유정이가 지닌 최고의 단점이라면 ‘길치’라는 거죠. 음악에 대한 감각이 무디면 ‘음치’라고 하듯, 길에 대한 감각이 무딜 경우를 흔히 ‘길치’라고 부릅니다. 유정이는 가던 길도 잊곤 해요. 일종의 방향감각 상실인 셈이죠.

<멀쩡한 이유정>의 유정이는 4학년입니다. 유정이에겐 유석이라는 2살 아래 남동생이 있어요. 그런데 유정이는 유석이 없이는 학교를 오고가질 못해요. 길치니까요. 유정이 엄마도 동생에게 신신당부합니다. “누나를 잘 데리고 다녀라” 이렇게 말이죠. 유정이와 유석이의 관계맺음이 뭔가 거꾸로 된 것 같지 않나요? 응당 누나가 동생을 챙겨야 할텐데, 동생이 누나를 챙기고 있잖아요.

만일, 유정이에게 유석이가 없다면 어떻게 될까요. 동화 <멀쩡한 이유정>은 유석이가 없는 유정이를 그리고 있답니다. 유정이는 4년째 같은 초등학교에 다니지만 길을 몰라요. 더구나 4학년이 시작하는 3월에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면서 그의 ‘길치 본능’은 더 활활 타오르게 됐어요.

동생의 도움이 있어야 등하교를 할 수 있는 유정이. 그러나 어느날 하교시간에 동생이 사라지면서 혼자서 집을 찾아가야 하는 처지가 됐다. 그림은 학교 운동장에서 아파트단지를 쳐다보고 있는 유정이의 심정을 표현하고 있다.

동화 속으로 들어가 볼게요. 유정이는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가려고 유석이를 찾았으나 어디 있는지 찾을 길이 없네요. 아마도 유석이가 누나를 놔두고 먼저 학교를 나간 모양입니다.

유석이가 없으니 유정이 혼자 집을 찾으러 나설 수밖에 없는 상황이 만들어집니다. 유정이는 ‘길치 본능’을 드러내지 않으려 무척 애를 씁니다. 과외 선생님이 오는 시간에 맞춰서 집에 가기 위해 이 골목 저 골목을 헤집고 다닙니다. 다행히도 유정이가 이사한 아파트 근처까지 오는 데는 성공을 하게 되지요. 그런데 웬걸? 아파트는 보이는데 다들 비슷해 보이니 더욱 답답할 지경입니다.

그러다 유정이는 같은 반 한상규의 엄마와 마주치죠. 같은 아파트에 사는 상규의 어머니가 땀으로 범벅이 된 유정이를 향해 이렇게 말을 건넵니다.

“무거운 책가방은 집에 두고 운동을 하지?”

상규의 엄마는 혀를 끌끌 차며 말하는데, 유정이는 뭐라고 했을까요. 들어보세요.

“아, 아니…… 책가방을 메야 운동이 돼요. 내일 달리기 시험이 있거든요.”

‘길치’를 애써 숨기려는 유정이는 자신의 집도 찾지 못하는 치부를 숨기기 위해 거짓말로 둘러댑니다. 그러지 않고서는 ‘멀쩡한’ 이유정이 아닌 ‘정신 나간’ 이유정으로 볼 게 뻔하니까요.

이리봐도 저리봐도 똑같은 아파트. 어디가 내 집인지를 찾지 못한 유정이. 그야말로 길치이다. 그런 길치는 유정이만의 잘못일까.

유정이는 하나의 큰 파도를 지났는데, 다음엔 더 큰 파도가 등장합니다. 다름 아닌 과외 선생님입니다. 유정이가 과외 선생님과 마주친 겁니다. 과외 선생님은 유정이 집을 찾기 위해 아파트 단지를 10분째 헤매고 있다며 유정이 손을 잡았어요. 그 나머지는 상상에 맡깁니다.

정말 유정이는 ‘길치’일까요?

어쩌면 세상이 길치를 만들고 있지는 아닌가라는 생각이 듭니다. 가로 세로로 반듯하게 만들어진 도로, 그 사이 사이에 사각으로 쑥쑥 올려놓은 빌딩들. 아파트 단지는 번호만 매겨놓았지 어디를 봐도 비슷한 모양새입니다. 몇 백 년 전이 아닌 몇 십 년 전만 하더라도 이런 풍경은 아니었습니다. 구불구불한 골목길, 어딜 가도 같은 모양을 한 집은 보이지 않습니다. 땅의 모양과 높낮이가 다르기에 그 땅에 앉는 건물은 같은 모양이 될 수가 없었죠. 하지만 요즘은 반듯한 도시개발 덕분에 똑같은 집을 만들어내는 구조가 돼버렸네요. 이런 상황에서 유정이에게만 ‘길치’라고 말할 수는 없겠죠. 길치를 만든 건 바로 우리들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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